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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Apr 16. 2022

배우면 제일 먼저 나 준다

대체 직업이 뭐길래? - ‘직업상담사’ 공부로 알게 된 것들

<커버 이미지-2022년 1회 직업상담사 2급 필기 시험지>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글쓰기와 함께 혼자   있을만한 공부를 찾아보았다. 그러다 ‘직업상담사라는 국가기술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책을 사서 독학을 시작했다.    눈을 뜨면 책을 고 감을 때 덮는 생활을 하곤 3 , 1 필기시험을 치렀다.

딱히 명확한 목적을 갖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지금 이렇게 된 나에게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되는 공부였다.

공부해서 남 주냐는 말, - 뭐든 공부하면 먼저 스스로에게 줄 수 있고, 나아가 남도 나눠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직업이 뭐길래, 내가 이렇게 되었나


산재가 승인되고, 회사가 나에게 1년의 유급 병가를 주는 것으로 결정을 한 후 내 인생의 ‘강제 하프타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에게 좋은 방향으로, 그리고 당장 먹고사는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는데도 여전히 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걱정도 크게 덜어지지 않았고, 계속 불안했다. 가만히 있으면 한 번씩 누가 나를 마구 쫓아오고, 난 도망을 가야 할 것 같은 그런 불안감이 하루에도 몇 번씩 엄습했다.


그런 마음을 달래려고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글쓰기이고, 그다음이 공부다. 글을 ‘쓰고’, 공부를 ‘한다’라기보다는 글과 공부에라도 ‘매달려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정말 뇌 한 구석 어딘가가 타들어 간 건 아닌가 의심했던 것도 한몫했다. 내가 정말로 원래의 나로 잘 돌아오고 있는 것인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직업이 도대체 뭐길래, 벌어먹고 사는 일이 어떤 의미이길래 그 직업의 현장에서 내가 이렇게 되어버렸나… 한탄하고 있던 때 우연히 ‘직업상담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다 회사에서 넘어진 나에게 직업상담사라는 단어는 유난히 남다르게 다가왔다.


직업상담사;

구인ㆍ구직ㆍ취업알선 상담ㆍ진학상담ㆍ직업적응 상담 등 노동법규 관련 상담 노동시장ㆍ직업세계 등과 관련된 직업정보의 수집, 분석하여 상담자에게 이들 정보를 제공 직업적성 검사, 흥미검사 실시 및 해석을 수행하는 업무.

(한국산업인력공단)


그런 한탄 섞인 의문으로 나는 직업상담사 공부를 시작했다.






직업상담사 공부가 가르쳐 준 것들


직업상담사 2급은 국가기술자격 중 응시자격에 제한이 없는 시험이다. 즉 누구나 준비해서 시험을 볼 수 있다.

1차 필기를 위해 직업상담학, 직업심리학, 직업정보론, 노동시장론, 노동관계법규 총 5가지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 심리학, 경제이론 등에 대한 이해와 최신 노동관계법규들의 세부사항을 숙지해야 해서 생각보다 공부할 내용이 방대했다. 그럼에도 내가 겪은 상황과 노동자로서의 삶에 직접 연결되는 내용이 많아서 그런지 그 공부가 지루하지 않았다.


특히 심리학, 상담학과 관련된 부분은 직업을 떠나 인간에 대한 탐구를 다루는 내용이라 흥미로웠다. 그리고, 노동관계법규를 공부하면서는 긴 시간 노동자로 살면서도 내가 다 모르고 있던-그러나 꼭 알아야 하는 내용들을 배울 수 있었다. 이를테면 노동 기본법, 고용정책/보험 관련법, 국민 평생 직업능력 개발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기간제/단시간/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 등등 대충 알았거나 아예 이름도 모르는 법규들이었다. 노동자로서,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할 내용들인데 까마득 모르는 것들이 수두룩 했다.



회사의 선심 그리고 법


내 동생이 처음 회사를 찾아가 내 상황을 알렸을 때, 회사는 ERP(Early Retirement Program)를 언급한 바 있었다. 조심스럽게,라고는 했으나 최대 3년의 연봉을 보상해 주는 최선의 조건이고, 그것도 아픈 나에게는 해당이 안 되지만 특별히 본사 승인을 받아보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당시 고장 난 나 혼자 마음 한 켠에는 그런 회사의 제안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땐 산재 심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했을 시점이었고, 내 상태는 도무지 앞으로 어떻게 얼마나 회복될지 오리무중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동생은 ‘산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리고 본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까지는 어느 결론도 보류’라고 회사의 제안에 선을 그었다.

결과적으로 그건 신의 한 수에 가까웠다.


‘근로기준법’은 노동관계법규의 기초가 되는 법으로, 임금-근로시간-휴일/휴가-보상 등에 대해 명시한다.

나는 그중 ‘재해보상’이라는 부분에서 ‘요양 보상’에 대한 내용을 공부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사는 나에게 최선의 제안을 한 것이 아니었고, 선심을 쓰려했던 건 더욱 아니라는 것을.



요양 보상;

1. 근로자가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에 걸리면 사용자는 그 비용으로 필요한 요양을 행하거나 필요한 요양비를 부담해야 한다.
2. 요양 보상을 받는 근로자가 요양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나도 보상 또는 질병이 완치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사용자는 그 근로자에게 평균임금 1,340일분의 일시보상을 하여 그 후의 이 법에 따른 모든 보상책임을 면할 수 있다.


이 법규 내용을 보고 나니, 회사가 산재를 신청한 근로자에게 결과를 알기도 전에 조기퇴직을 언급한 건, 어쩐지 소송을 시작한 사건이 종결되기도 전에 뒤에서 합의해 보려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수순대로 요양 승인 여부를 기다리는 게 먼저고, 만일 승인이 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며 2년 동안 경과를 지켜봐야 옳은 것이었다. 그런 이후에도 근로자의 질병이 완치되지 않은 경우, 회사가 책임을 완전히 면하려면 3년이 아니라 3년 6개월 이상의 급여 보상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회사가 내게 보인 호의와 선심이 진심이 아니었을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나 보았다.



가족들이 그런 내용을 알고 조치를 취한 건 아니었지만, 산재 요양 승인이 된 후 내게 말했다.


“연봉 3년어치 받고 그냥 맥없이 회사 생활을 끝내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야?!”


그래, 일단은 다행이었다. 회사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고, 병가 중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줬으면… 그렇게 십수 년의 회사 생활을 마감했으면… 나중에 더욱더 억울할 뻔했다.






직업상담사 1차 필기 합격, 그 후


3월 중순 1차 시험 합격자 발표가 났다.

벼락치기를 했지만 매일매일 밤낮없이 ‘매달린’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스스로의 기능을 의심할 정도로 아팠던 나는 그만큼 호전되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닌 듯 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더욱 부담스러운 2차 실기시험이 남아있지만, 다시금 같은 마음으로 책에 또 매달려보려고 한다.



꼭 직업상담사가 되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공부는 아니었지만, 어쩌다 접하게 된 공부를 통해 나는 많은 새로운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또 배울 수 있었다.


‘배워서 남 주냐?!’ - 이건 둘째고,

배우면 제일 먼저 나에게 준다.

그리고, 뭐든지 아는 게 힘이 맞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


다시 한번,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 생각한 내가 이 세상에서 모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므로 언제나 늘 깨어있어 새로운 것들을 배우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배움은 진정 끝이 없으며,

이 생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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