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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채파파 Sep 20. 2022

[50 홍정욱 에세이] _ 배

[50 홍정욱 에세이] _ 배


주위를 두리번거려보니 모두가 대단하다.

나만 뒤쳐져있고, 모두가 나와의 간극을 더 벌리면서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도대체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이 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 거리고만 있는지.

화가나고 짜증이 난다.

저만치 달려가고있는 사람의 꽁무니만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계속 달려본다.

하지만 달리면 달릴수록 차이는 더 벌어지고, 나는 서서히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만다.

도저히 움직여지지 않는 나의 다리를 만져보니 무언가 잔뜩 달려있다.

'욕심', '비교', '부정', '불안', '우울' 이라는 이름의 모래주머니가 잔뜩.

이 많은 무게들을 짊어지고 달렸던 나는 속력을 내기는 커녕 자리에 주저 앉아버릴 수 밖에 없었다.


살아가면서 나는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내가 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믿음이 있다.

나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세상의 잘못이고, 세상의 탓이며, 세상이 부정하기 때문이다.

나는 옳은 길을 가는데, 세상이 자꾸 딴지를 두는 것이다.

절대로 나는 잘못된 길을 가지 않는다.


사실 살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각과 신념, 자신감은 무척이나 필요한 부분이다.

적어도 내 안에 담겨있는 소신으로 나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믿고 치켜세워주는 의식과 행동들로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있음이 마땅하다.

하지만 순간순간 "탓"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

내가 거히고 있는 위치에서의 삶이 생각만큼 실행되거나 진행되지 않으면 그것은 누구의 문제일까.

아니, 누가 그것을 해결해야 할 것인가.

세상이 나를 위해? 아니다.

내가 나를 위해서 해야하는 것이다.


隨處作主



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다.

주인은 주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을 탓하고 주위를 탓하고 눈치보며 자격지심을 반복하는 사람에게 어찌 주인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릴까.

배 안에 거하며 침몰하는 순간을 바라보면서 언제까지 배 밖의 물을 탓할 것인가.

양동이로 배안에 차오르는 물을 내보내는 행위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애초에 탓하는 자세를 버리고 내가 거하는 곳에 주인이 되었다면 배안에 물이 차는 순간도 바로 즉시 확인하고 대응했을 것이다.



나로인해 나의 세상은 움직인다.

남으로인해서 좌지우지 되는 삶은 내 삶이 아니다.

나의 항해가 옳게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가 움직여야한다.


항해도 침몰도 모두 내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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