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중동사에 관심이 많아서 책을 보다 보면, 고대 역사는 구약성서에 많이 의존하게 됩니다.
지난번 노아의 대홍수 관련 글도 구약성서를 중심으로 진행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대홍수 관련된 신화는 어느 지역에나 있습니다. 알아보니 한국에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주요 지역별 대홍수 신화를 간략히 소개드리고, 그중 가장 기원이 되는 수메르 지역의 대홍수 신화를 설명드리면서, 수메르에서 발굴된 토판들로 인한 성경과의 논쟁에 대한 글을 올리려 합니다.
최근 들어 몇 년 전 작고하신 김산해 작가님의 수메르 관련 서적들을 보고 있는데, 중동 지역에서 발굴된 토판들과 판독 관련된 고고학적 역사가 잘 정리되어 있어서 관련 내용도 참고해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금일 포스팅 글의 구성은 하기와 같습니다.
1. 주요 지역별 대 홍수 신화
2. 수메르의 대홍수 신화 발굴 및 판독에 따른 논쟁
3. 구약 성서와 수메르 대홍수와의 유사점
태초 또는 옛날에 신이 노해서 인류 문명을 대홍수로 파괴하려 했고, 선한 몇몇의 사람들이 생존해서
다시 인류를 번성하게 한다는 것이 대홍수 신화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대홍수 신화는 구약성서의 노아의 방주 일 것입니다. 대홍수 신화는 성경의 노아의 방주 외에도 많은 지역에서 유사하게 전승되고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500여 개가 넘는 홍수 전설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 그리스 신화의 데우칼리온
대홍수 관련 그리스 신화가 있는데, 데우칼리온과 그 아내 피라의 이야기가 이에 속합니다.
데우칼리온은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와 여신 클리메네의 아들로,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의 딸인 피라와 부부가 됩니다.
인간의 사악한 본성에 분개한 제우스가 인류를 대홍수로 멸망시키려 했을 때, 아버지인 프로메테우스의 조언을 들은 데우칼리온은 방주를 만들어 아내와 생필품을 싣고 9일 밤낮을 떠돌다 포키스의 파르나소스 산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부는 살아남은 것에 감사하며 제우스 신에게 감사의 제사를 지내면서 앞으로 생존의 방법을 신에게 물어보니, "어머니의 뼈를 등 뒤로 던져라" 라는 답이 왔습니다. 여신인 어머니를 죽이라는 의미로 알고 어리둥절하는 아내 피라를 보면서, 데우칼리온은 어머니는 "대지"를 뜻하고, 뼈는 "바위"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을 합니다. 이윽고 근처에 있던 바위들을 등 뒤로 던지자 돌들이 인간이 되면서 인류가 다시 번성하게 되었다는 신화입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여러 가지로 유사한 신화로 볼 수 있겠습니다.
2) 아즈텍의 대홍수 신화
아즈텍에서는 매년 물의 진노를 위로하기 위해 물에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태초에 아즈텍 사람들은 옥수수를 먹고 키가 거인같이 컸다고 합니다. 그러나 큰 키에도 대홍수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대홍수의 물이 하늘의 해까지 삼켜버리면서 모든 사람은 죽어 물고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두 사람이 살아남아서 다시 인류를 번성시켰다고 합니다. 이후 4천 년이 지나 이번에는 바람이 불어 해와 사람을 모두 날려 죽여버렸고, 이번에도 두 명이 살아 다시 인류를 번성시켰다고 합니다. 그런 뒤 또 4천 년 후 각각 불과 피와 불의 비에 의해 망하고, 현 세상이 다섯 번째 세상이라고 합니다.
하기 그림은 1500년도 경의 그림으로 추정되며, 물에 제사 지내는 아즈텍 사람들을 묘사했다고 합니다. 알려진 대로 아즈텍의 인신공양이 이때도 자행되었음이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한국의 목도령과 대홍수
한국에도 대홍수 관련 신화가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목도령과 대홍수입니다.
옛날 선녀가 땅으로 내려와 나무신의 정기를 받아 아들을 낳았고, 그를 사람들이 "목도령" 이라 불렀습니다. 이후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고 나서, 큰 비가 내려 세상이 물에 잠기게 되었다. 이때 아버지 나무가 목도령을 싣고 물에 떠내려가는데, 떠내려가는 개미 떼와 모기떼를 발견하고 구해주게 됩니다.
이윽고 목도령 일행은 산의 정상에 도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한 노파와 수양딸을 만나는데, 목도령은 그 수양딸과 결혼하기를 청했습니다. 이에 노파가 그를 몇 가지로 시험하게 되는데, 모래밭에서 곡식을 가려내는 시험을 개미 떼가 도와주어 통과하고, 여러 방에 딸을 숨기고 찾아내는 과제는 모기떼의 도움을 받아 통과하여 결국 수양딸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 두 쌍이 자식을 낳아 인류의 새로운 시조가 된다는 신화입니다.
여러 지역의 주요 대홍수 신화에 대해 알아봤는데, 대부분 유사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가장 오래되었다는 수메르 지역의 대홍수 신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역사는 사실보다는 역사적 자료에 의존하는 경향이 큽니다. 한정된 역사적 자료로 인해 중동의 문명사는 헤르도토스의 히스토리아와 구약성경에 많이 의존하는 상황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150년 이전만 해도 인류 역사의 4000년 전 (즉 BC2000년) 이전은 원시 시대로 취급받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대표적인 대홍수 신화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였습니다.
※. 150년전. (즉 1850년경)에는 히브리어가 인류 최초의 언어라 주장하는 학자도 있었고, 수메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고 합니다. (수메르라는 단어 자체가 1869년 이후 등장했습니다.)
그러다 아래와 같이 수메르 지역의 대홍수 신화 관련 토판이 발굴 및 판독되면서 큰 이슈가 됩니다.
- 1852년 앗시리아의 고대 수도 니느웨의 앗슈르바니팔 도서관에서 2만 4천여 개 점토판 발굴
※앗슈르바니팔: BC685~BC631 사르곤왕조 4대왕
- 1857년경 부터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악카드어가 해독 가능해졌습니다.
※ 1621년경 고대 페르시아 설형문자가 유럽 사람에게 알려진 후 230년이 걸린 것입니다.
- 1872년 영국박물관 연구원 조지 스미스(George Smith)가 점토판에서 성서의 대홍수 내용을 발견하였습니다.
※ 그는 영국 박물관의 수장고에 쌓인 앗시리아 점토판을 들추다가 대홍수 내용을 발견했고, 런던 성서 고고 학회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토판 내용이 불완전한 것이긴 했지만, 성서에만 나오는 것으로 알았던 대홍수 내용이 앗시리아 점토판에서 나왔다는 사실로 큰 충격을 주었고, 발견한 "칼데아의 홍수설화"는 조지 스미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주었습니다.
※ 길가메쉬 서사시로도 알려진 칼데아의 홍수설화의 내용은, 반신반인 (정확히 2/3는 신, 1/3은 인간)인 길가메쉬 대왕이 영생을 찾아 떠나고, 대홍수에서 살아남아 신들에게 영생은 부여받은 우트나피쉬팀 부부를(성경의 노아) 만나면서 대홍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불로초를 얻게 되어 돌아오는 길에 뱀한테 도둑맞게 되어 결국 영생을 얻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서사시입니다. 즉, 길가메쉬 서사시안에 대홍수 설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길가메쉬 서사시의 내용은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루겠습니다. )
- 1873년 조지 스미스는 런던 The Daily Telegraph지의 지원을 받아, 대홍수 토판에 누락된 17행을 찾아 발굴 여행을 떠났고, 불과 한 달 동안 잃어버린 대홍수뿐 아니라 바빌로니아 왕조들 관련 토판을 384개나 발굴을 하게 됩니다. 이후 1876년 영국박물관의 지원으로 한차례 더 발굴 여행을 떠났으나, 북시리아 알레포에서 장염으로 젊은 나이에 죽게 됩니다. (36세)
당초 기독교 측에서는 성서의 대홍수 내용을 뒤받쳐줄 증거로서의 발굴을 기대했지만, 발굴 및 판독된 대홍수의 내용은 성서의 기록보다 최소 수백 년 전의 내용 있었고, 이것만으로도 이들을 큰 혼란에 빠뜨리게 됩니다.
-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 출생한 때가 BC2100년인데, 토판에 나오는 "길가메쉬"가 수메르 거대한 도시국가 우르크의 5대 왕에 BC2800년 등극하니 아브라함보다 700여 년 전의 인물이었습니다.
- 히브리족의 창세기인 "베레쉬트"가 쓰인 시점이 600여 년 경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바빌로니아로 끌려갔을 때였는데 (바빌론 유수), 칼데아의 홍수설화 (=길가메쉬 서사시)가 쓰여 지시 시작한 시점은 이보다 2천여 년이 빠른 BC2600년대로 추정되었습니다. 두 신화의 내용의 유사성이 큰 걸 감안할 때, 성서의 내용이 수메르의 홍수설화를 표절(카피) 했을 가능성이 대두되었고, 많은 혼란을 주게 됩니다.
수메르 대홍수 설화에 대한 구약 성서와의 논란이 커지자, 주 세력이었던 기독교에 의해 자연스럽게 토판에 대한 발굴 및 판독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게 되고, 흥미가 사라지면서 2차대전 이후 판독 작업이 지지부진하게 됩니다.
상기에서 언급한 구약성서와 수메르 대홍수 신화의 유사점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성서의 노아의 방주는 지난 포스팅에서 설명이 되었으므로, 수메르 대홍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수메르 대홍수 이야기 (길가메쉬 서사시 내용중)
길가메쉬 대왕은 친구이자 의동생인 엔키두가 신들의 결정으로 죽게 되자, 이후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빠지게 되고 영생을 찾아 길을 떠나게 됩니다. 대홍수에서 생존해서 영생을 얻은 우트나피쉬팀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마슈산에서 전갈부부를 만나고, 죽음의 바다 앞 여인숙의 씨두리를 만나고, 뱃사공 우르샤나비의 도움을 받아 죽음의 바다를 건너 드디어 우트나피쉬팀과 조우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대홍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위대한 신들이 사람에게 홍수로 벌을 주기로 했고, 신들의 아버지 아누가 이를 비밀로 하라고 명했습니다. 신들의 적장자 엔릴과 인간을 창조한 엔키, 농사의신 닌우르타가 이를 맹세했습니다.
이중 인간을 창조한 신 엔키는 인간이 몰살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인간의 종인 우트나피쉬팀의 꿈에 나타나 대홍수가 날 것이고, 방주를 만들어 가지고 있는 모든 생명을 태울 것을 알려줍니다.
우트나피쉬팀은 엔키의 말에 따라 방주를 만들고, 가지고 있는 모든 생명, 가족, 들판의 짐승들과 장인을. 태웁니다.이후 6일낮 7일 밤 동안 바람과 홍수가 몰아쳤고, 이후 7째날 폭풍 후가 멎자 비둘기, 제비 그리고 까마귀를 순차적으로 날렸는데, 비둘기, 제비는 땅을 발견 못하고 돌아왔으나, 까마귀는 땅을 발견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엔릴이 불같이 화를 내고, 엔키에게 왜 맹세를 어겼는지를 추궁하게 됩니다. 엔키는 사실을 발설한 적이 없고 다만 꿈을 보여줬을 뿐이라 해명했고, 인간을 몰살시키려 한 것은 현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음에 가책을 느낀 엔릴은 방주 안으로 올라가서 우트나피쉬팀과 그의 아내의 손을 잡고 영생의 축복을 주었다는 내용입니다.
※ 이해를 돕기 위해 하기와 같이 수메르 신들의 계보를 붙였습니다. 신의 아버지 아누(안) 밑으로 적자. 엔릴과 서자 엔키가 보입니다. 아울러 우측에 루갈반다왕과 닌순 여신사이에 태에난 길가메쉬도 박스로 표기했습니다. 결국 이신들이 나중에 그리스/로마 신화, 이집트 신화의 원형이 되게 됩니다. 다음에 포스팅할 길가메쉬 서사시에 등장하는 신들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수메르 대홍수 신화를 보면 구약성경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하기와 같은 많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물론 성경의 40일낮 40일밤 → 7일낮 7일 밤으로 일부 상이한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동일한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성경이 수메르 신화를 표절했다는 주장이 대두되었고, 아직도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2000여 년간 믿어온 진실의 혼돈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 수메르 신화와 성경의 유사점
이번 수메르 대홍수 신화 발굴 관련 내용을 접하면서 다빈치코드 책과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종교 세력과 진실을 밝히려는 세력 간의 다툼이, 이곳에서도 볼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메르 토판 분석을 하다 지구연대기 5부작을 저술하고 작고한 "제카리아 시친"이 종교단체로부터 이단으로 몰리고 연구도 중단된 사례가 있습니다. 제가 이 내용을 포스팅 준비하다 블로그 권태기에 빠졌습니다. 결국 서두르지 말자는 교훈을 얻었고, 시간 날 때마다 글을 올리고져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더운 날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