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로그 EP 13
아마 길거리에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분들이 심심찮게 출몰하기 시작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요가복의 샤넬'이라고 불리는 브랜드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느 분야든 '끝판왕'이라던가 '종결자'라는 말이 있기 마련이라, 나는 '돈지랄하는 게 하나 더 생겼네.' 정도로 받아들였다.(TMI: 나의 필명은 여기서 따온 것이다.)
작년 말 배우자와 백화점을 돌다 그 룰루레몬 매장을 마주했다. 우리는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입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여성용 레깅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운동복뿐 아니라 가방 등의 액세서리류와 일상복 라인까지 꽤나 다양한 것들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뭐든 사주면 잘 입는다고 믿는 배우자는 나에게 상하의 각 하나씩 고를 기회를 줬고,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룰루레몬 예찬이.
룰루레몬 옷들은 이 분야의 공룡인 나이키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조금은 벗어난다. 디자인이 꽤 단순하다. 북미 특유의 조금은 투박한 모습이 보인다. 로고도 가슴팍이 아닌 뒷면 아래에 조그맣게 박혀있고, 그 마저도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다만 기능 면에서는 확실히 값을 한다. 내가 처음 산게 '인텐트 조거'라는 바지인데, 그냥 대놓고 쭉쭉 늘어난다. 거기다 웬만큼 입어서는 무릎이 나오지도 않았다. 훗날 몇 벌 더 입어보고 놀란 건. 다른 바지는 더 편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써지 조거' 모델은 너무나 가벼워서 착용감이 좋고, 운동할 때 이보다 더 좋은 바지가 있을까 싶은 수준이다.
셔츠도 당연히 기능이 좋다. 땀 흡수가 좋고 움직임에는 불편함이 없다. 특히 '메탈 밴트 테크'의 원단은 아직 땀 냄새가 나는 걸 못 봤다. 나는 땀이 많아 매운 걸 먹을 때도 헤어밴드를 쓰는데, 동일한 악취 억제 기술이 적용된 헤어밴드를 타 브랜드 것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차이가 난다. 땀에 절은 걸 반나절 방치하면 그 스멜이 확실히 다르다. 룰루레몬 것은 뭔 짓을 해도 땀냄새가 안 난다. 다만 바지의 그 놀라움에 비해 셔츠는 타 브랜드 대비 이점이 크지는 않다. 다 좋은데 독보적이지는 않다. 가성비를 고려하면 최고의 선택은 아닐 것 같다.
룰루레몬에 어느 정도 길들여지면, 다른 액세서리도 구매하고 싶어 진다. 난 운동 갈 때 가볍게 들 수 있는 가방과 헤어밴드, 양말, 트레이닝 장갑 등을 샀다. 기타 제품 중 으뜸은 양말이다. 양말이 좌우로 구분되어 있어서 발가락부터 잡아주고, 종아리 중간까지 올라오는 크루 삭스는 최고로 만족하는 제품 중 하나다. 반대로 트레이닝 장갑은 데드리프트 할 때 손바닥이 아파서 샀는데, 생각보다 그립감이 좋지 않고, 내구성도 좋아 보이진 않는다. 만약 이게 다 떨어질 때까지 운동을 한다면, 나이키나 언더아머 것으로 구매할 생각이다.
최근에도 간혹 백화점에 갈 일이 있으면 방앗간 마냥 들러서 한두 개씩 사 모으고 있다. 가끔은 내가 선수도 아닌데, 이 비싼 운동복 그만 살까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운동에 재미를 붙인 계기 중의 하나가 이 룰루레몬이라 시원하게 뱃살 다 날리는 그 순간까지는 함께하고 싶다. 운동을 지속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방구석 백수가 누릴 수 있는 작은 사치다. 거기다 새로 산 반바지 입어보겠다고 운동을 지속한다면, 가성비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됐다. 나이 든 자들에게 운동은 장비빨이라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