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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라임 Oct 06. 2022

포르투갈 - 뜻밖의 환대

타도시 기행 05


 이번 여행을 앞두고 짧은 시간이지만 포르투갈어를 배웠다. 젊은 시절 어쭙잖게 스리랑카의 싱할라어를 익힌 게 지난 여행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기억 때문이다. 우린 리스본, 포르투 같은 대도시만 다닐 테지만, 현지어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알면 분명히 긍정적인 에피소드가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사실 이 나이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게 쉽지는 않았다. 몇 없는 포르투갈 온라인 강의 중 그나마 접근성이 나아 보이는 시원스쿨의 왕초보 탈출 강의를 신청했고, 알파벳 발음부터 다르고 형용사까지 남성형/여성형으로 구분하는 새 언어는 매우 어려웠다. 한 달여간 틈나는 대로 강의를 듣고, 노트에 정리도 해보았지만, 여행에서 써먹을 수나 있을까 싶은 수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고. 배우자에겐 “아무래도 몇 마디 하지도 못할 것 같아.”라며 미리 기대치를 낮춰놓기도 했다.


 우리는 결국 포르투갈에 도착했고, 리스본의 오리엔테 버스 터미널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게 됐다. ‘에스프레소 한 잔이랑 코카콜라 하나요.”정도는 너무 쉬운 거라 시험 삼아 포르투갈어로 주문해보았다. “Um 에스프레쏘 e um 꼬까꼴라, por favor.”라고. 내 말을 들은 점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웃었고, “uma 꼬까꼴라”라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주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그냥 친절한 가게 하나 들른 줄 알았으나…


 이후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포르투의 A Grade 식당에서 그린 와인 한 병, 해물밥, 대구 애피타이저 등을 주문했다. “uma garrafa de vinho verde e um arroz de…” 대강 이런 식으로 시원스쿨에서 배운 거의 모든 것을 총동원했다. 한국인을 꽤나 상대해봤을 식당 직원의 표정이 환해지며, 걸음마 수준의 포르투갈어를 하는 한국 아재를 귀여워했다. 급기야 너 포르투갈어 어디서 배웠냐는 둥, 어떤 선생님에게 배운 건지를 물었고, ’참 잘했어요.’ 눈빛까지 보내주었다.


 이번에 포르투갈어를 배우면서 알게 된 건 브라질과 포르투갈의 발음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의 목적지는 유럽의 포르투갈 본국이기 때문에 오리지널 포르투갈어를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현재 경제적으로나 인구수로 봤을 때 브라질이 포르투갈을 압도하는지라, 한국에서는 브라질 식 포르투갈어 밖에 배울 수 없었다. 오프라인은 모르겠고, 온라인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대표적으로 of, from 등의 뜻으로 자주 쓰이는 de라는 단어를 브라질에선 '지'라 하고, 포르투갈에서는 '데,드'라고 한다. 단어의 마지막에 l이 오면 '브라지우'와 '브라질'과 같은 식으로 나뉘는 등 꽤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포르투갈은 알파벳 그대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브라질은 거기에서 일부 변형이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왕초보 탈출 강의 몇 개 들어본 초보자의 의견이다.


 시원스쿨의 왕초보 탈출 선생님 쥴리는 브라질에서 포어를 배운 분이고, 나는 그런 브라질 식 포어를 어쭙잖게 구사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너 브라질에서 배웠냐?”는 질문도 받았고, 몇몇 단어는 그새 입에 익어서 포르투갈 식으로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내 어휘와 발음이 이렇게 보잘것없음에도 포르투갈 사람들이 매우 반가워해 준다는 것이다. 경험상 스페인에서 “그라시아스”라고 하거나 이탈리아에서 “그라치에” 한다고 특별한 반응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그 정도는 다 한다.’는 식으로 심드렁한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포르투갈은 그렇지 않다. Good morning. 에 해당하는 "Bom dia." 정도만 해도 점원이 방긋하고, 옆에 있던 할아버지도 웃음 짓는다.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세계사에 나름의 큰 족적을 남긴 국가이고, 본토와 브라질 외에도 몇몇 국가에서 여전히 포르투갈어를 쓰고 있다. 그래서 포르투갈어 좀 하는 관광객은. 흔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지에 와보니 조금은 잘 못 생각한 것 같다. 아무래도 포르투갈이나 브라질 사람 일리 없는 동양인이 떠듬떠듬 말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더 좋아했을 수도 있겠다.


 포르투갈어를 지난 한 달간 정말 겉핥기로 배웠다.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고, 온라인 강의만 듣다 보니 어디 시험해볼 데도 없어서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그래서 내 포어 실력은 왕초보 중의 왕초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실력도 감탄하고 반겨주는 곳이 있으니 바로 여기 포르투갈이다. ’더 쓸 일도 없는데 배워서 뭐하냐?’하며 아예 닫아버리지는 말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도전해보길 바란다. 한국 사람이 스리랑카에서 싱할라어 하는 만큼이나 반가워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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