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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라임 Oct 13. 2022

포르투갈 - 리스본 5박 후기

타도시 기행 - 10

 리스본은 18년 전 방문한 이후 두 번째다. 여비가 넉넉지 않아 춥고 배고팠던 여행에서의 한 줄기 빛과 같았던 곳. 배우자에게 "정말 좋아."라고 수십 번은 이야기했던 바로 그곳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포르투를 먼저 둘러봐서인지 리스본은 매우 큰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리엔테 인근은 현대식 건물들이 올라가서 분양이 한창이었고, 모든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절대적인 도시의 규모도 커서 이곳에서는 대중교통 패스가 필요하다. 우리는 투어에 참여한 첫날엔 리스보아 카드 24시간권으로 교통과 수도원 입장료 등을 대체했고, 그 외에는 비바 비아젱 카드로 모든 대중교통을 회당 1.5유로에 이용하였다. 특히 구시가지에 숙소를 잡는다면 꼭 한 번은 가봐야 할 벨렝 지구까지 가기 위해서라도 비바 비아젱 카드는 미리 구매하여 충전해두면 편할 것 같다.


 우리에게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도시지만, 사실 포르투갈이란 나라의 시작은 북부의 코임브라였다. 13세기경 남쪽으로 영토를 넓혀가며 이곳으로 천도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서울 놈'이라는 말이 있듯이, 포르투갈에서도 리스본 사람들은 대도시 특유의 물질적인 모습으로 많이 비친다고 한다. 하지만 여행자로써 포르투갈을 겉핥기엔 최고의 도시이다. 포르투갈의 역사와 현재를 모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벨렝 지구에는 대항해 시대의 유산인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있고, 바로 옆 PASTÉIS DE BELÉM에서 에그타르트의 근본을 맛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에그타르트는 현지어로 Pastéis de Nata라 하고, 포어를 배우며 가장 열심히 외웠던 단어이다. 브라질식으로 '빠스테우 지 나따'라고 하지만, 그냥 '에그타르트' 또는 '나따'라고만 해도 주문에 문제는 없다. 달달한 나따는 개당 칼로리가 270kcal이고, 개인적으로는 에스프레소에 곁들여서 딱 하나 먹는 게 가장 좋았다. 이것 때문에 포르투갈에 간다는 분들도 있는데, 우리에겐 그만큼 특별하지는 않았다.



 벨렝 지구와 구시가지 사이에는 타임아웃 마켓이 있다. 사실 장소 자체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은데, 우리가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동안 가장 맛있게 먹은 생선구이를 접한 곳이다. TimeOut이라는 유명 매거진 주도로 만들어진 곳이고, 유명 식당들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다. 각 식당에 주문을 넣고 음식을 받아서 중앙의 홀에서 먹는 시스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이름 모를 생선구이에서 적절한 불향이 식감을 자극했고, 곁들여 나온 쌀밥은 버터와 마늘이 섞여 너무 맛있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식당이 있어서 골라먹을 수 있는 재미는 있겠지만, 자리 잡기가 만만치 않고 좌석도 편하지는 않았다. 벨렝 지구 가는 길에 한 번쯤 들러볼 만하다.


 리스본은 기본적으로 언덕이다. 그냥 어디 좀 가려하면 언덕 투성이. 그만큼 전망대가 많다. 우리는 여러 전망대를 찾아다니지는 않았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알칸타라 전망대(Miradouro São Pedro de Alcântara)에 두 번 찾았다. 리스본에 도착해서 야경을 즐기며 그린 와인 한 병을 깠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날 다시 찾아 현지 맥주를 마셨다. 워낙 언덕이 많은 곳이라 꼭 전망대가 아니라도, 높은 곳에 오르면 비슷한 전망을 즐길 수 있다.



 리스본의 명물 중 하나는 트램이다. '저게 지금도 다닌다고?' 할만한 외관이지만, 여전히 여행객뿐 아니라 현지인의 이동수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여행자들에게 가장 유명한 노선은 28번 트램이고, 우리 숙소 앞에 정류장이 있어서 종점까지 가볼 수 있었다. 구시가지 곳곳을 돌고 리스본 대성당을 통과하기 때문에 가볍게 리스본을 둘러보기엔 제격이다. 트램은 일반 차량과 같은 도로를 달리고, 앞 차가 멈추면 트램도 멈춘다. 실제 어느 트럭에서 짐을 내리는 걸 기다렸는데, 10분가량을 별다른 트러블 없이 마냥 기다렸다. 운전석을 포함해 내외부에서는 올드한 향기가 가득하다. 어떤 구간에서는 기관사가 내려 꼬챙이 같은걸로 직접 궤도를 변경하기도 한다. 내리면서 보니 28번 트램을 타기 위해 대기 중인 관광객이 족히 백여 명은 돼 보였다. 종점부터 앉아서 편안히 둘러보고자 한다면, 그들이 잠들어있을 아침 시간에 시도해보길 바란다.


 우리는 리스본 역시 정처 없이 골목을 누볐다. 그 가운데 알파마 지구를 걸을 때가 가장 포르투갈스럽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아마 대지진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대성당을 끼고 들어간 알파마 지구에는 포르투갈 특유의 소박한 식당들이 즐비한데, 우리는 일부러 관광객은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만 같은 곳을 찾아봤다. 가볍게 맥주 한 잔 했고 가격은 매우 저렴했다. 스포르팅 축구 봤다는 한 마디가 트리거가 되어, 주인장과 한 청년으로부터 장황한 축구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구글 후기에는 주인장이 사진 찍는 관광객을 나무랐다는 글도 있었지만, 그렇게 쌀쌀맞기만 한 분은 아니었다. 리스본은 워낙에 관광지화 된 곳이 많아서인지 이런 식당을 더 많이 찾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우리의 여행은 포르투에서 5박을 한 후, 리스본에서 5박을 하는 일정이었다. 사실은 포르투가 너무 좋아서 리스본은 다소 번잡하다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부산이 아무리 좋아도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은 분명히 있기 마련. 리스본에는 포르투갈 역사의 최전성기의 유산을 그대로 느껴볼 수 있었고, 골목골목에서 느껴지는 감성도 포르투에 뒤질 것이 없었다. 지난 여행에서는 파리에서 리스본에 넘어오니 그렇게 소박해 보이던 것들이니, 일정에 따라 인상도 달라질 수 있겠지.


 떠나오기 전엔 근교 여행도 안 하고 두 도시에서 5박씩 하는 일정이 조금 과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알칸타라 전망대에서 야경을 보고 있자니 아쉽기만 했다. 이 여행이 끝난다니. 또 언제 포르투갈에 올 수 있을지. 그만큼 훌륭한 여행지였다. 우리가 언젠가 한 달 살기를 할 기회가 있다면, 무조건 포르투갈에 가기로 했다. 잘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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