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나의 연애설에 대해서 다각도의 접근이 나오는데 꽤나 흥미로워서 덧붙이는 글이다. 3월달에 완독한 영화편집, 매니악과 개봉할 가여운 것들 덕분에 좋았던 기분이 바르셀로나의 아작난 경기력(차비 죽어라 ㅗㅗ) 오타니의 결혼으로 박살나있었다. 카리나 연애는 다음날 이어진 오타니 결혼의 충격에 (나에게는)완전히 묻힌 느낌이다.
설왕설래가 오가는 걸 보니 그래도 클래식과 라디오헤드, 비요크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한 블루칼라 힙찔이로서 의견을 첨부하고 싶어졌다. 이러나저러나 대중음악의 한 단면을 엿볼수 있는 사태지 않은가. (물론 계속 쓰고 싶었던 영화글들은 반도 못 쓰고 있지만. . )
도대체 카리나는 무엇이 문제였는가.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하는 지점은 이것이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비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그럴 깜냥이 아니고 이 사안은 그런 사항이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직업적 특성에서 비롯된 프로의식의 문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가수의 부족한 앨범완성도를 지적하거나 소설의 잘못된 구조를 언급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연애하는 게 뭐가 잘못되었냐라는 식의 에스파 팬들에 대한 힐난은 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해서 라고 생각한다. 카리나에 대한 팬들의 분노는 궁극적으로 에스파라는 하나의 상품의 가치를 하락시켰기 때문이다. 마치 축구팬들이 형편없는 선수의퍼포먼스에 진노하는 이유와 유사하다.
아이돌과 아티스트의 이분법은 이제는 너무나 독단적이고 촌스럽지만 이런 사항에서는 유효한 분석틀이다. 나의 우상인 프랭크 오션과 비교를 하자면, 나와 나의 너드친우들이 사랑하는 프랭크 오션은 본질적으로 그라는 사람이 아닌 그의 음악과 그것이 선물한 감흥, 감정,감동이다. 물론 그라는 인간이 가진 면모와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술가 프랭크 오션에 투과된 모습이며 결과적으로 프랭크 오션의 음악에 귀속되어있다. 아티스트가 받는 것은 신뢰와 존경이며 아이돌이 받는 것은 사랑이다. 아티스트가 파는 것은 그들의 생산물이며 아이돌이 파는 것은 그들의 매력이다. 음악으로 말하자면 예술가의 이미지는 음악의 일부지만 아이돌에게 음악은 역으로 아이돌이미지의 일부이다.
직접적으로 이야기해 폴 토마스 앤더슨과 박찬욱의 팬들은 영화를 존경하고 수프얀 스티븐스의 팬은 음악을 사랑하고 레이먼드 카버의 팬은 문학을 존중한다. 예술가들의 팬은 예술가 그 자체도 좋아하지만 그들이 창조해내는 작품의 매체를 더 사랑한다. 아이돌은 반대다. 아이돌 팬들이 갈구하고 소비하는 상품은 노래하는 아이돌, 춤추는 아이돌, 예능하는 아이돌이다. (물론 이런 구분은 예술가에게 본인의 이미지는 중요치 않고 아이돌에게 춤과 음악의 완성도는 별 의미는 없다는 뜻으로 오인될 수 있다. 당연히 아이돌에게도 춤과 음악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로서의 중요도이다. 결코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여기서 '아티스트' 모지스 섬니의 트윗을 되돌아보자.
'왜 누구도 로맨스를 필수요소로 생각하는 전통에 도전하지 않는 거지?' 그가 발매했던 걸출한 앨범의 제목과 어울리는.이 트윗은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래 왜 다들 사랑노래야?
사랑이 보편적인 감정이여서? 맞는 말이지만 멜로영화가 차트를 정복하지 않고 연애소설이 베스트셀러가 아니며, 클림트의 키스가 미술경매최고액을 갱신하지 않는 이 현상을 완벽히설명하지 못한다. 결국 모든 사랑노래는 (특히 아이돌에게) 팬송이다. OMG는 뉴진스가 버니즈에게 부르는 노래이며 spicy는 에스파가 그들의 팬에게 전하는 말이다. 예컨데 bts의 dna는 이 특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곡이다. 이 아이돌-팬과의 감정을 무엇이라 정의할 지는 쉽지 않다. 유사연애, 연대감,래포 등등, (하지만 이것이 좋아하는 작가를 존경하고 응원하는 팬의 마음, 스포츠 선수를 동경하는 팬의 심정보다 열등하거나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나는 이를 일종의 몰입감과 연대의식이라고 본다. 드라마를 보는 듯한 몰입감, 혹은 그들과 같이 나아간다는 동료의식.
그렇다면 문제는 명확하다. 카리나의 연애인정은 이 연대감을, 동료의식을 무너지게 했다. 이제 thirsty의 가사는 팬들을 위한 러브레터가 아닌 이재욱을 위한 고백이 되었다. 그런 의도는 아니였겠지만 적어도 누군가들에게는 그렇게 들릴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어긋난 쇼트, 이탈한 음정, 잘못된 문장처럼 에스파라는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의 완성도에 흠집을 내버린다. 예로 세상과 맞서싸우는 당당한 소녀들 컨셉을 가진 르세라핌에게 이 몰입감의 핵심은 주체성이다. 그런데 그들이 이 주체성이라는 환상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당연히 타격이 클 것이다. 이것이 카리나의 행동이 에스파 팬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두번째는 에스파의 특수성이다. 에스파는 넥스트레벨로 곧장 탑스타의 위치에 올랐지만 그 후 이수만의 끝없는 이육사 시인에 대한 오마주, 기괴한 컨셉, 대중적인 흡인력이 부족한 트랙으로 그 위치를 수성하기조차 버거웠다. 그 사이에 뉴진스는 힙한 대중성으로 역대 최고라 봐도 무방한 업적을 kpop사에 아로새겼고(심지어 진행형이다. 팜하니 만세) 아이브, 르세라핌이 자리를 잡고 그들을 추월했다. 이런 난국을 타개할 역량을 적어도 곡에서 sm과 에스파는 아직까지 보여주지 못했다. 에스파가 그럼에도 지금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었던 저력은 카리나라는 파급력 강한 스타에게서 왔다. 아마 장원영과 더불어 개인적인 인기로는 현세대 아이돌들 앞단에 있을 스타인 카리나는 본인의 출중한 외모로 소위 유사연애감정을 유발해왔다. (카리나는 노래도 나쁘지 않게 하는 편인 듯하다. 장원영의 가창력은 그의 외모의 절댓값만큼 별로다) 그랬던 스타가 지금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당연히 가치가 떨어진다. 솔직히 말해 스타에게 개인적인 면모는 독이다. 존 업다이크가 테드 윌리엄스에게 쓴 말을 떠올려보자. 신은 편지에 답장하지 말아야한다. 더군다나 에스파를 지탱해온 힘은 코어팬들의앨범소비량과 같은 충성도를 드러내는 지표였다. sm의 지대한 삽질에도 에스파가 위치를 최소한이라도 사수할 수 있었던팔할은 팬들의 화력 덕이였다. 그런데 카리나의 이 사태에 보여준 일련의 대응들은 팬들을 염두에 두지 않은 듯 하다. 당장팬들의 행동이 아이돌의 위상과 성공에 결정적인 시장에서 이는 치명적이다.
이제 덕분에 에스파의 상업적 한계는 결정지어졌다.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hype boy에 80은 되어야할 히트곡이 필수인데 과연 sm이 그런 역량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