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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Oct 25. 2023

햇살이 준 초록의 인테리어

<Good morning> 21x30cm_ sharppencil & watercolor on paper_ 2019_ 윤미내


아침 햇살을 받아 거실 창에 걸려있는 버티컬이 소파와 테이블, 거실 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사물을 그대로 거실에 그려놓은 그림자는 마치 인상파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나는 인상주의 그림을 좋아한다. 빛과 함께 변화하는 색채와 질감에 관해 연구하고, 그 빛의 변화 속에 움직이는 자연현상들을 직관적으로 표현했던 작품은 나를 매료시킨다. 그런 빛이 우리 집에 스며들어 곳곳에 작품을 만들어 내다니.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거실창은 남향을 바라보고 있다.






코로나 이후 변화된 점이 있다면, 집을 가꾸는 것에 관심이 커졌다는 거다. 바깥 활동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취미생활, 요리, 인테리어 등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나도 집을 온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더욱이 나이가 들면서, 쉴 때는 제대로 건강하게 쉬어야 한다는 생각도 깊어졌다. 요즘은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일과 개인적인 삶의 균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집’이라는 공간은 더욱 중요해지고, 개인의 취향과 욕구에 따라 다양하게 연출되고 있다.


솔직히, 인테리어 잡지에 실리는 집이나, SNS에 엄청난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집처럼, 나도 유명한 디자인의 가구를 들여 집을 꾸미고 싶다. 그런 가구는 비싼 만큼 디자인과 색감, 실용적인 부분에서도 뛰어나고, 존재만으로 이미 인테리어가 완성됐다고 볼 수도 있다. 어디에 놓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고, 무심한 듯 아무 곳에나 툭 놓아도, 명품 가구만이 주는 특별함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비싸도 너무 비싸다. 유명 디자인의 의자 하나가 일반 4인용 테이블+의자 세트 가격을 뛰어넘으니, 그 의자 하나를 위해 가족의 안락한 다이닝룸을 위한 비용을 포기할 엄두가 안 난다. 꼭 좋은 가구가 아니더라도 집을 편안하게 꾸밀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러던 중, 김진애 작가의 [집놀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제약된 공간에 불평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소중한 것들에서부터 생각의 전환을 하면, 집을 쉼의 기능만이 아닌 치유와 놀이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며 가장 반가운 것 중의 하나는, 아침 햇살이 잘 들어오는 남향의 집이라는 것이다. 전에 살던 집은 해가 잘 들지 않는 2층의 집이었다. 화분을 사다 놓아도 쉽게 죽고, 오전에도 거실 불을 켜두어야 했다. 그러니 식물을 키우는 일에는 관심이 생길 리 없었다. 집의 크기로 보면 예전 집이 더 넓다. 그러나 아침에 거실로 스며드는 햇살 덕분에. 크기 따위의 단점은 눈이 부셔 보이지 않는다.


이 햇살을 혼자 즐기기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분을 한두 개씩 구매하여 어울리는 곳이 어딜까, 고민하며 배치하기 시작했다. 거실 창 앞에는 물론이고 책장에도 놓고, 피아노 위에도 올려놓았다. 매달아 주기도 했다. 햇살을 가득 받은 식물은 줄기 사이로 어린잎을 내고, 그 잎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조금 더 큰 화분으로 옮기기도 했다. 전에 느낄 수 없던 초록의 성장에 하루하루가 놀라웠다. 자연이 준 빛의 인테리어는 그 어떤 유명한 디자인의 가구보다, 우리 집 고가의 소품이 되었다.


나는 아침의 햇살이 좋고, 식물에게 햇빛은 무엇보다 소중했다. 그렇게 나와 함께 살게 된 식물화분은 크고 작은 것을 포함하여 현재 28개가 있다. 우리 집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종종 내게 식물을 잘 키운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을 때면 자식이 잘 크고 있다는 칭찬을 받은 부모 마음처럼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이제 나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게 되더라도, 꼭 남향집으로 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늦은 오후에 집 안으로 길게 들어와, 오렌지빛의 노을을 안겨주는 서향집도 감성적이고 분위기 있다.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감과 순간은 볼 때마다 아름다울 뿐이다.


그러나 아침에 해가 들어와 온종일 집에 머물며, 식물의 광합성을 돕고 하루의 시작을 함께하는 남향의 조건을 포기할 수가 없다. 빛이 주는 포근함과 그걸 통해 변화하는 집 안 곳곳의 생명들은, 언제나 내가 필요하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햇살이 준 초록의 공간에서 언제나 편하고 건강하게 집을 감상하고 싶다.



‘고요한 아침에 거실로 스며드는 햇살이 좋다.

그 빛과 같은

은은하고 따뜻한 마음을 갖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유로움을 닮고 싶다.

편견 없이 품어주는 빛의 너그러움처럼

여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침 햇살을 보고 있으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작업 노트 중에서]




※모든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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