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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Nov 16. 2023

품위 있는 '갑질'을 위하여

서서히 일상에 스며들어, 익숙하게 사용되고 있는 ‘갑질’이라는 말이 있다.



2014년, 항공 회사 회장의 딸이자 부회장인 그녀는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에 탑승했다. 그녀는 간식으로 제공되는 땅콩(마카다미아)을 접시에 주지 않고 봉지째 주었다는 이유로, 승무원의 무릎을 꿇게 하고 매뉴얼 파일을 가슴팍에 던지며 고함을 질렀다. 그녀의 횡포는 쉽게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 비행기를 이륙하지 못하게 하고 40여 분이나 지연시켜, 탑승객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안전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사상 초유의 갑질’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재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IT업계의 거물이라는 회장의 기이한 행각도 폭로되었다. 직원을 향한 욕설과 폭행은 일상이고, 강제로 사원 머리카락 염색시키기, 도청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직원에게 석궁으로 살아있는 닭을 잡게 하기, BB탄 총으로 직원 쏘기, 여직원의 신체에 립스틱으로 자신의 이름을 쓰고 사진 찍기 등. 그의 수많은 만행은 하나같이 가학적이고 엽기적이어서 우리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직원들에 의하면 회사는 ‘그의 왕국’이었고, 그는 ‘갑질 폭군’, ‘악마 회장’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2023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젊은 초등학교 교사의 이야기가 또다시 ‘갑질’이라는 논의의 중심 과제로 떠올랐다. 발령된 첫 학교에서 초임 교사를 죽음으로 몬 것은 각종 민원과 무리한 요구, ‘학부모 갑질’이 원인이었다. 이 사건을 발단으로 많은 교사들의 학부모 갑질 피해 사례들이 폭로되었고, 교권 회복을 위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나열된 사건과 사건 사이에도 수많은 ‘갑질’ 사건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일상에서 크고 작은 갑질의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제 ‘갑질’이라는 말과 행위는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서로의 등급을 매기고 ‘갑’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을 일상화시키고 있다. 


본래 ‘갑’과 ‘을’이라는 지칭은 계약서에 등장하는 용어로 우리에게 더 친숙하다. ‘갑을병정’의 글자 순서상 가장 앞에 나오는 ‘갑’이 편의상 계약의 발주자에 적용되다 보니, 권력을 쥐고 있는 이가 자신보다 지위나 신분이 낮은 사람을 홀대할 때 ‘갑질한다’라는 표현으로 변질한 것이다. 그러나 계약의 발주자가 ‘어떤 무례함을 행해도 마땅히 견뎌라.’라는 조건의 계약서를 들고 온다면, 거기에 도장을 찍을 ‘을’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모름지기 계약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갑, 을 양쪽 모두의 양보와 협의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발주자가 갑질의 주인공으로 바뀌는 것이 이토록 쉬운 일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갑’의 친절이 사라지고, 진정 인간다움을 포기하는 이들의 행동을 접할 때면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깝다. 사람이 사람에게 무자비한 강탈을 하며 얻고 싶은 건 무엇일까? ‘갑’이 되기 위해 누군가를 ‘을’로 만들고. 그렇게 상대를 파괴하며 얻은 권력으로, 과연 ‘갑’은 어디에 도달하고 싶은 걸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배려가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 누군가를 모욕하며 얻어내는 것이 ‘갑’의 우월한 능력으로 둔갑되고, 그 왜곡된 전지전능함이 삶에 물들어 쉽게 용서될까 무섭다. 이렇게 갑질 횡포가 만연되고 진화하는 사회는 회복 불가능해질지 모른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조금 더 힘이 있는 이들의 선행과 친절을 자주 만나고 싶다. 팍팍한 세상이지만, 기업의 선행과 기부는 사회 분위기를 따뜻하게 불러일으켜 준다. 심장병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토스트를 기부하던 이에게 토스트에 들어가는 소스를 무려 10년 넘게 무료로 제공한 기업의 이야기가 있다. 개인의 선행을 돕는 기업의 선행이야말로 나눔이 연결되고 커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한 유명인이 청소년을 위한 기부를 오랫동안 해 온 소식도 접할 수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청소년을 돕고, 청소년 센터의 환경개선을 위해 기꺼이 기부를 해온 유명인의 이야기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꿈이 되고 목표가 되는 파급력으로 빛을 발휘한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선 ‘갑’이 아닌, 손을 잡고 함께 올라가는 방법을 찾는 진정한 ‘갑’을 원한다. 그런 ‘갑’만이 할 수 있는 베풂의 아우라를 느끼고 싶다. 

그리고 그들의 품위 있는 ‘갑질’이 사회에 순환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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