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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을 그립니다 미내 Nov 02. 2024

여름과 가을 사이

<여름과 가을 사이> 17.9x25.8cm_sharppencil & watercolor on paper_2024 윤미내


 10월은,

옷장을 열어 손이 쉽게 닿는 곳의 여름옷들을 모두 꺼내 깊은 곳으로 넣고, 두껍고 따뜻한 옷가지들을 꺼내기에는 애매한 계절이다. 우리의 면역력을 시험하기에 적합한 이 날씨는, 얇은 옷을 입어야 할지 포근한 옷을 둘러야 할지, 아침마다 오늘의 날씨를 검색하고 입을 옷을 여러 번 생각하게 하는데 시간을 쓰게 한다.


 10월의 캠핑장 모습도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 푸른 옷을 정리하고 붉은 옷으로 갈아입을지 갈등하는 나뭇잎들은 얼룩덜룩한 옷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텐트를 치는 낮에는 더워서 땀이 나고, 밤에는 모닥불에 모일 수밖에 없는 추위가 찾아온다. 뭔가 분명하지 못한 계절이지만, 캠핑하기에는 분명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캠핑장에는 모기향이 등장한다. 한 여름에 극성이었던 모기가 요즘은 무더위에 움직이기가 힘든 건지, 여름과 가을 사이의 이 활동하기 좋은 계절에 활발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체로 전원을 연결하여 매트의 살충성분이 모기를 쫓게 하는 타입이나 액상형으로 된 스프레이 살충제를 많이 사용하지만, 밀폐된 공간을 벗어난 야외에서는 모기향이 효과적이다. 모기향이 냄새가 강하고 연소과정으로 인한 연기가 인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 하여 꺼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캠핑장 같은 야외에서는 모닥불의 불멍과 함께 은은한 모기향의 냄새가 참 정겹다. 의자에 앉아 모기향이 연소하며 타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하늘하늘하고 가냘픈 이 연기를 보려고 캠핑을 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잠시 든다.




 우리의 인생을 사계절과 비교한다면 지금 나는 10월, 이 계절에 와 있는 듯하다. 뜨겁고 정열적인 청춘 ‘여름’이라 하기에도, 노랗고 붉게 곡식과 단풍이 익는 중년의 모습 ‘가을’이라 하기에도, 분명하지 못한 그 희미한 시기에 서있다. 젊음이 주는 대가 없는 아름다움과 에너지에 오만했었다면 용서를 빌고, 서툴고 불안했던 마음들을 추스르며 좀 더 단단해질 가을과 겨울을 간구한다.


 제 몸을 태워 모기를 쫓는 캠핑장의 모기향에서 인생의 가을을 앞둔 나를 본다. 곧고 길게 뻗은 모양이 아닌 빙글빙글 회전하는 모기향의 생김을 보며 우리의 인생을 느낀다. 평생을 한 방향으로만 전진할 수 없는 인생은 결국 ‘나’라는 축을 중심으로 방향을 바꾸며 돌고 돌아가는 것이다.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모기향을 바라보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내 인생의 여름과 가을 사이를 태워본다.


그림 과정

※모든 이미지에는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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