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던 주무관님이 갑자기 말했다.
사무관님은 바보천재 같아요.
네? 무슨 의미인가요?
평소엔 똑똑해 보이는데, 가끔 바보 같을 때가 있어요.
그땐 이해하지 못했는데, 내 와이프도 종종 그런 말을 한다. 나보고 바보 같다고. 나는 혼자 살 땐 잘 몰랐는데, 와이프랑 함께 살다 보니 이런 점은 좀 특이하다고 지적해 준다. 그런 사례들만 모아봤다.
#1
목욕탕에 있었던 일이다. 평소에 목욕탕 가는 걸 싫어해서 몇 년 만에 가게 되었을 때다. 씻고 나와서 머리를 말리며 면봉으로 귀를 후볐다. 누렇게 된 면봉을 버리려고 봤더니 버리는 곳에 있는 면봉들이 다 깨끗해 보였다. 심지어 가지런히 정리도 되어 있었다. 놀라서 내가 꺼낸 곳의 면봉들을 살펴보니 많이 어질러져 있었다. 우웩. 집 밖에선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평소에 엄청 깔끔을 떠는 사람이 이런 실수를 하다니.
#2
얼마 전에 서울 출장을 갔다. 고속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고, 마을버스까지 타야 했다. 몇 번을 지도를 보고 마음속으로 시뮬레이션도 했는데, 결국 마을버스를 잘못 타버렸다. 길 건너편에서 탔어야 했었다. 변명을 하자면,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는 중에 버스가 오는 걸 보고선 무작정 달려가 탔던 것이었다. 잘못 탄 줄도 몰랐다. 한참 지났는데 버스가 주택가를 빙빙 돌고 있길래 이상함을 느껴 지도를 확인하고서야 깨달았다. 반대편에서 탔다는 것을. 다행히 일찍 출발해서 늦지 않았다. 가끔 이런 일이 있어서 한두 시간 일찍 출발한다.
#3
배달 음식을 시킬 때도 가끔 잘못시킬 때가 있다. 푸라닭에 고추마요 치킨을 좋아하는데, 가끔 잘못시켜서 엉뚱한 치킨이 올 때가 있다. 비슷한 것도 아니고 후라이드에 가루 뿌려져 있는 완전 다른 치킨이 왔었다. 와이프는 어떻게 잘못시킬 수가 있냐고 신기해하는데, 사실 나도 신기하다. 그때로 되돌아가 리플레이를 보고 싶을 정도이다. 주문 직전에 시킨 걸 다시 확인해 보면 되는데, 그게 왜 그렇게 귀찮을까. 맞게 주문했겠지 하면서 탁탁탁 누르다 실수하는 경우가 있나 보다.
#4
아침에 옷을 입을 땐 원칙이 있다. 어제 입은 옷은 입지 않는다. 줄무늬 셔츠를 입으면 민무늬의 가디건을 입는다. 단색 셔츠를 입으면 반팔 조끼를 입는다. 겉옷은 현재 기온에 따라 입을 옷이 정해져 있다. 영하 10도 이하일 때 입는 패딩, 영하 10도부터 0도까지 입는 코트, 0도부터 10도까지 입는 재킷, 10도부터 입는 재킷. 그러다 보니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거나 더워지는 경우에는 1년 동안 몇 번 못 입는 재킷도 있다. 와이프는 나보고 옷을 입을 때 색상이나 디자인을 좀 맞춰 입어라고 하지만 잘 안된다.
사실 위 글은 예전에 썼던 거다. 써놓고도 내가 무슨 천재? 이러면서 발행하지 않고 지금까지 존재도 잊고 있었던 글이다. 그런데 최근에 정말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바람에 이 글이 떠올랐다.
최근 몇 년 동안 겨울마다 귀마개를 샀다. 귀마개를 사놓고 잃어버리기도 하고, 귀마개가 있다는 걸 잊어버리기도 한다. 새로 귀마개를 사고 나면 구석에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귀마개가 튀어나온다. 덕분에 지금은 비슷하게 생긴 귀마개가 3개 있다.
엊그제 귀마개를 또 잃어버렸다. 아침에 그 귀마개를 찾다가 포기하고 결국 다른 귀마개를 끼고 출근을 했다. 퇴근할 때는 그리 춥지 않아 귀마개를 점퍼 팔에 끼우려고 봤더니 이런. 이미 하나가 꼽혀 있었다. 전날에 점퍼에 끼워놓고 어디 있는지 몰라서 다른 귀마개를 쓰고 갔던 것이었다. 출근길에 나를 본 사람들은 귀마개를 하나는 팔에 끼고 하나는 귀에 끼고 다니는 모지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싶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