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3박 4일 일정으로 국립국어원 교육을 다녀왔다.
주변에 이런 교육을 받았단 말을 하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교육이 있었냐고. 아마도 며칠 동안 업무를 빠져야 한다는 부담, 굳이 한글이나 맞춤법을 교육까지 받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 등에 교육을 받은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하긴 수강생들을 봐도 지자체 공무원, 퇴직을 앞둔 공무원, 경찰서나 소방서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 등이 대다수였고, 중앙행정기관에서 온 공무원은 손에 꼽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시간을 내 다녀온 이유는 이렇다. 몇 년 전에 함께 일하던 주무관님이 다녀왔었는데 교육이 좋아서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며 극찬을 했었다. 거기다 내 주된 업무가 법 문장을 교정, 교열하는 건데, 단순한 느낌만으로 문장을 다듬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전문가의 교육을 한번 받아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계속 바쁜 자리에 있다 보니 일주일간 교육을 받으러 가는 게 부담스러웠는데, 마침 업무에 여유가 생기는 바람에 다녀올 기회를 붙잡게 되었다.
지금까지 공무원 생활 약 10년을 하면서 이런저런 교육을 많이 받았는데, 강사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공무원을 상대로 하는 강의가 가장 어렵다고. 공무원들 특유의 보수적인 태도 때문에 그런지, 강의 중에 별로 웃지도 않고 호응도 없다고 한다. 다들 강의는 듣고 있는 거 같은데 반응이 없다는 거다. 강사로서는 힘이 빠질 수 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들은 대부분의 강의는 그렇지 않았다. 재미있었고, 내용도 알찼다. 교육생들의 참여도 활발했다. 이런 교육이라면 며칠 업무를 비워서라도 받을만한 가치가 있었다. 아니 이렇게 일주일만 투자하면 앞으로 남은 수십 년의 공직 기간 동안 바른 글을 쓸 수 있다? 엄청 효율적이지 않나 생각했다.
(다들 별로 관심 없겠지만) 업무에 도움이 되었던 점 하나를 들어보자면, 법령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인 '및'이 and의 의미인지 or의 의미인지에 대한 것이다. 사전적으로는 and의 의미이지만, 법령에서는 or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신고 및 변경신고를 하려는 자는'이라는 규정은 신고와 변경신고를 동시에 하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신고를 하려거나 변경신고를 하려는 자를 말한다. 그래서 '및'을 무조건 and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번 교육에서도 바로 이런 점을 집어주면서 공무원들의 '및'의 남용에 대해 따끔한 지적이 있었는데,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외에도 국어사전 활용법, 외래어 표기법, 바르게 발음하는 법 등 대충 알고는 있어서 제대로 공부할 생각이 없던 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짚어보게 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교육에 대한 상사의 인식이다. 자기 할 일 하느라 바쁜 와중에 교육받으러 간다는 것을 마치 쉬러 가는 것으로 여기는 분들이 많다. 말은 직원들의 자기 계발이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막상 부하 직원이 일주일 동안 교육받으러 가겠다고 한다면, 밝은 표정으로 업무는 전혀 걱정하지 말고 얼른 다녀와라고 할 상사가 얼마나 있을까. (물론 우리 과장님은 달랐다) 아직까지 교육은 한가한 사람들이나 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공직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 중에 하나로 교육을 꼽는다. (교육을 받는 것도 엄연한 업무이다) 우리 부처만 하더라도 소위 전문가라 하는 사람들이 일일이 잘못된 문장을 찾아 수정하는 건 인력과 시간 상 한계가 있다. 각 부처 또는 지방 공무원들에게 관련된 내용의 교육을 제공하여 이들의 역량을 향상하도록 돕는 게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조직과 예산을 담당하는 부처에서 이런 교육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적극적인 지원이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