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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경수 Aug 27. 2024

붕괴된 미학에서의 주체

하이데거 미학『예술 작품의 샘』을 중심으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 <신발 한 켤레>(1887)

예술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의사소통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을 통해서 정신적 정보를 발신하고, 관람자는 예술을 통해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수신한다. 따라서 예술은 정보 소통의 과정이다(AO2,58). 그러므로 작품을 감상하는 건 일종의 해독이다. 이럭저럭 여기에 성공할 경우 예술가의 머리에서 떠난 정보는 마침내 목표인 수신자의 머리에 도달하고, 이로써 예술적 소통은 완수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수신자가 예술언어를 알고 있어야 한다. 말하는 하는 주체와 같이 예술을 통해서 표현하는 개인 또한 미학에서 주체라고 볼 수 있다. 예술가의 주체성은 최초로 미학을 다룬 학자인 플라톤 이래로 늘 자명한 것이었다. 마치 데카르트가 코기토 명제―Cogito ergo sum―과 같이 예술가가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주체라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는 지식의 토대였다. 얼떨결에 하고 싶지 않은 말을 뱉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나의 발화와 동시에 상대방은 내 표현을 인식한다. 그래서 대본 없는 대화란 예행연습이 없는 improvization이다.            

예술이 정보전달의 매체였던 황금기는 다름 아닌 중세다. 중세의 조형 예술은 독자적인 의의를 갖지 못하고 성당 건물에 종속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풀어 설명하는데 주목적이 있었다. 당시에 성직자 말고는 라틴어 성경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므로, 조형 예술은 글을 모르는 민중에게 성경의 가르침을 전달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다(AO1, 150). 따라서 예술은 취미로 관조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존재다.


그렇다면 그 소통의 매체인 예술 작품의 샘은 무엇인가? 이 물음예술 작품의 샘에 대한 물음은 예술 작품의 본재가 새어 나오는 곳에 대한 물음이다. 작품은 예술 작가의 활동으로부터 그리고 그 활동을 통해 샘솟아 나온다. 그런데 예술 작가는 무엇을 통해서 그리고 무엇으로부터 샘솟아 예술 작가 그것 자체로 있게 되는가? 그것은 작품을 통해서이다. 작품이 그 거장을 칭찬한다는 독일 속담은 작품이 비로소 예술 작가를 예술의 거장으로서 출현하게 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UK, 14). 예술 작가는 작품의 샘이다―예술 작가에게서 작품이 샘솟는다. 작품은 예술 작가의 샘이다. 어느 쪽도 다른 한쪽 없이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둘 중 한쪽이 다른 한쪽을 낳는 유일한 것도 아니다. 예술 작가와 작품이 각각 그 자체로 그리고 상호 관계하며 존재하게 되는 것은 제삼의 것을 통해서다. 이 제삼의 것은 제일의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예술 작가와 예술 작품이 각각의 이름을 얻는다. 이 제일이자 제삼의 것은 바로 예술이다(UK, 14).


작가가 사물을 작품으로 만들고, 작품이 한 개인을 작가로 만든다. 그리고 이 순환논리는 예술이라는 고리로 연결되며, 예술이라는 지평 혹은 세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 밖에서는 그 순환논리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예술 작품의 근원은 예술 그 자체다. 예술가는 그저 그 우물 속에서 물을 퍼올리는 한 나그네와도 같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의 경우 예술 작가는 작품보다 중요하지 않은 무엇인가로 있다. 마치 작품이 분출하는 통로와도 같은 예술 작가는 창작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지워버리는 것과 같다(UK, 56). 예술작품이란 “존재자의 진리가 자신을 작품 속에 정립하는 것”이다. 여기서 진리는 재귀대명사의 사용을 통해 자신을 정립하는 주체가 된다. 진리를 정립하는 주체는 예술가가 아니다. 진리 자신이 “정립의 주체이자 객체이다”. … 예술의 진리는 예술가의 진리가 아니다. 이로써 미적 주체성은 해체된다. 그리고 요즘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주체의 죽음’, ‘저자의 죽음’이 시작된다(AL, 82).


하이데거의 예술철학에서 예술가는 머릿속 생각을 통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어떤 알 수 없는 근원에서 그저 퍼올린 것일 뿐이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예술가의 주체성을 해체하기에 이른다. 그에 따르면 예술가는 영매(통로)와 같은 존재이며, 그 영감은 자신의 것이 아닌 알 수 없는 근원의 것이다. 


Reference

마르틴 하이데거, 『예술 작품의 샘』, 한충수 역, 이학사, 2022. (UK)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1』, 휴머니스트, 2015. (AO1)

_____, 『미학 오디세이2』, 휴머니스트, 2022. (AO2)

_____, 『현대미학 강의』, 아트북스, 2003.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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