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경(居敬)과 궁리(窮理)를 중심으로
이 논문은 이정(二程) 형제 가운데 동생인 정이(程頤, 1033 ~ 1108)의 수양론을 중심으로 고찰하여 현대인에게 적용 가능한 수양방법을 고안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현대 사회는 수양(修養)보다는 수학(修學)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교육 환경은 한 주체의 성립에 영향을 미치는데, 학문적 수학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정신적 경지를 높이고, 절제(節制)와 함양(涵養)을 할 수 있는 수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정이는 특히 수양방법론에 있어서 의미 있는 학설을 정립한 학자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하여 진래(陳來, 1952~)의 『송명성리학』을 주요 문헌으로 삼고, 송봉구, 김연재 교수의 논문을 참고하였다. 이에 그 내용으로 2장에서 정이의 수양론을 논하고, 3장은 거경(居敬), 4장은 궁리(窮理)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5장은 위의 내용을 종합한 결론을 도출하고, 6장에서 논자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정이 수양론의 현대적 의의를 간명하게 정리하고자 한다.
‘경(敬)’은 유가철학에서 매우 중시하는 수양방법이다. 『주역』에는 “경으로 안을 곧게 하고, 의로움으로 밖을 바르게 한다”(敬以直內, 義以方外)라고 하였다(1). 송대 유학자인 정호(程顥, 1032 ~ 1085)는 수양방법으로 ‘성(誠)’과 ‘경’을 함께 제시하여 성(誠)과 더불어 경(敬)의 의미를 중요하게 보았다. 그런데 정이(程頤)는 성(誠)보다 온 힘을 다해 실천해야 할 덕목으로 ‘경(敬)’을 더욱 강조하였다. 그는 ‘주경(主敬)’을 실천덕목으로 제시하고,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주경이란 ‘정제엄숙(整齊嚴肅)’과 ‘주일무적(主一無適)’이다. 정제엄숙은 외적인 용모와 행동거지뿐만 아니라 내재적인 사려와 감정까지의 두 측면을 통틀어서 동시에 자신을 제어함을 의미한다. 또한 전일(專一)한 마음으로 집중하여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는 것을 말한다.
정이는 경(敬)을 통해서 심성(心性)의 수양을 할 수 있다고 보았고, 격물궁리(格物窮理)를 통해서는 지식의 끊임없는 확충(擴充)과 이성적인 자각을 고양시켜 나갈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정이는 이처럼 자신의 내면을 수양대상으로 삼고, 격물궁리를 통해서 자신의 이성까지 꾸준히 단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마음을 기르는 데는 경(敬)을 사용하고, 배움에 나아가는 것은 앎을 다하는데 있다.”고 하였다(2). 이러한 정이의 인식은 ‘경(敬)’을 진리를 인식하는 공부 방법이자 일상을 살아가는 행동의 표준으로 보았음을 잘 나타낸다(3).
이를 둘로 나누어 살펴보면, 하나는 자신이 직접 마음을 기르는 주관적인 방법이고, 또 하나는 배움을 통해서 객관적인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근원을 확인하는 것이다. 전자가 ‘거경(居敬)’이고, 후자가 ‘격물치지(格物致知)’ 혹은 ‘궁리(窮理)’이다. 거경(居敬) 공부로써 마음을 안정시키고, 세상 살아가는 이치와 배움은 궁리의 공부로서 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정이는 세상 살아갈 이치와 지혜의 끊임없는 공부와 실천적 의지의 함양을 무척 강조한 유학자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스스로 수양과 공부방법을 찾지 못하거나 실천적 태도가 지속적이지 못한 경우에는 더욱 거경공부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4).
정이(程頤)가 젊었을 때 당시의 저명한 학자였던 호원(胡瑗, 993~1059)이 태학의 주교(主敎)를 맡고 있었다. 호원은 “안연이 좋아한 것은 어떤 배움이었는지를 논하라(顔子所好何學論)”는 제목으로 학생들에게 시험 문제를 제출했다. 이에 정이는 답안을 작성하였는데, 호원은 그 답안을 보고 깜짝 놀랐으며, 바로 그를 학관(學官)으로 임명하였다(5). 이때 이천이 작성한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6).
배우는 것은 성인의 진리에 이르기 위한 것이다. 배움의 길은 무엇인가? 천지가 정기를 쌓아 만물을 낳는데 오행의 빼어난 정기를 얻은 것이 사람이니 그 근본은 참되고 고요하다. 이것이 미발했을 때는 오성(五性)이 구비되어 있으니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고 형체가 이미 생기고 나면 외물이 그 형체에 접촉되어 마음이 움직인다. 마음이 움직여 칠정이 나오니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이다. 정(情)이 이미 성해져 더욱 방탕해지면 성(性)이 해롭게 된다. 이 때문에 배우는 사람은 정(情)을 단속하여 알맞음(中)에 맞게 해서 마음을 바르게 해서 성(性)을 기를 뿐이다. 그러므로 그 감정을 본성에 맞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감정을 단속할 줄 몰라 정(情)을 놓아버려 사특함에 이르게 된다. 성(性)을 질곡시켜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그 본성을 감정과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버린다고 한다(7).
위의 내용은 인간이 공부하는 이유가 성인(聖人)의 진리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함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배워야 성인이 될 수 있는지 그 배움의 대상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정이는 인간은 하늘에게서 오행의 빼어난 것을 받아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근본은 고요하다고 했다. 그 참되고 고요한 근본은 아직 바깥 사물과 접촉하지 않고 밖으로 표현되지 않은 오성(五性)이고, 그것이 바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고 했다. 이 오성(五性)은 사람의 기질(氣質)과 함께 몸 안에 깃들이게 된다. 이것을 정이는 형체가 이미 생겨났다고 표현하였다. 사람의 몸이 이미 만들어지면 이미 몸 안에 본성과 기질이 함께 자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맑은 기질을 받고 태어난 사람은 그 안의 내용인 본성도 우수하기 때문에 감정의 표현도 적절하게 잘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배움을 통해서만 실천의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 이 때문에 도덕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배움이 필요한 사람은 맑은 기질을 받지 못하여 탁한 기운을 품부 받은 사람에 한정될 것이다(8).
하늘로부터 우수한 기를 받은 사람은 정(情)을 적절하게 조절한다. 그러나 열등한 기를 받은 사람은 정(情)을 알맞게 표현하지 못하여 도리에 어긋나게 된다. 그러므로 정(情)을 알맞게 조절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를 하늘로부터 잘 받아야 하지만 이것은 사람이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하늘로부터 받은 기질을 어떻게 조화롭게 변형시켜야 하는 방법과 그에 따른 수양이며, 그 인간의 노력에 달린 것이다. 이로써 악(惡)으로 흐르는 인간의 기질과 정감을 회복할 수 있다.
그 기질을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정이는 본성이 감정으로 드러날 때 정(情)을 잘 단속해서 지나친 정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결국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고 본성(本性)을 기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인간의 성(性)과 정(情)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마음은 드러나고 있는 정(情)을 잘 단속해서 선(善)한 본성(本性)을 함양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정이는 “상(想)으로 말미암아 리(理)를 밝힌다.”는 역학의 원칙으로부터 ‘격물궁리’의 논지를 추론하였다(9). 격물치지(格物致知)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있어야 가능한 공부방법이다. 하나는 내 마음이 신령스러워 본래 완전한 앎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10), 둘은 천하의 모든 사물은 이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11). 인간의 마음이 완전한 앎을 가지고 있는데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이치를 깊이 연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물이 가지고 있는 이치를 깊이 연구하기 위해서 마음의 기능을 활용해야 한다(12). 정이는 “심(心)은 사물을 판단하고 분석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바로 이 기능을 이용해서 내 마음을 완전히 선(善)하게 하고 현실에서 실천력을 갖추기 위해서 바깥 외물이 가지고 있는 이치를 연구하는 것이 격물치지(格物致知)이다.
격(格)은 연구하는 것과 같고 물(物)은 이치(理)와 같다. 그 이치를 연구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치를 연구한 뒤에 앎을 이룰 수 있지 연구하지 않으면 앎을 이룰 수 없다(13).
정이는 격(格)을 “사물에 나아가다”라고 하고, 물(物)을 리(理)라고 하였다. 즉 사물에 나아가 사물의 리(理)를 연구하는 것이다(14). 그렇다면 사물에 있는 리(理)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눈앞에 사물 아닌 것이 없고 모든 사물은 저마다 리(理)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불이 뜨거운 까닭이나 물이 차가운 까닭에서부터 군신·부자 사이까지 모두 리(理)가 있다(15).
정이는 사물은 모두 리(理)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자연물이 가지고 있는 리(理)는 각 사물의 특성이자 그 까닭으로 설명하였다. 예를 들면, 리(理)는 불이 뜨거운 까닭이나 물이 차가운 까닭과 같다. 물과 불이 뜨거운 성질이나 차가운 성질을 가지게 된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물이 차고, 불이 뜨거운 원인을 정이는 리(理)라고 하였다(16). 더불어 그는 인사(人事)에도 리(理)가 있다고 하였다. 구체적인 예로 군신(君臣) 사이에는 의(義)와 충(忠)이 있고 부자(夫子) 사이에는 자(慈)와 효(孝)가 있다. 이와 같이 인사(人事)의 리(理)는 다양한데 이 다양한 인사(人事)의 리(理)를 정이는 인(仁)이라 했다(17). 따라서 정이는 인(仁)의 다양한 모습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과정으로 보고, 격물치지를 공부의 한 방법으로 삼았던 것이다.
정이의 수양론을 보면, 그 공부방법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이 직접 마음을 기르는 주관적인 방법이고, 또 하나는 배움을 통해서 객관적인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을 거쳐서 자신의 근원을 확인하는 것이다. 정이는 전자를 거경(居敬), 후자를 궁리(窮理)라고 개념화하였다.
거경(居敬)에 대한 정이의 사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사람의 몸이 이미 만들어지면 이미 몸 안에 본성과 기질이 함께 자리한다. 우수한 기질을 받고 태어난 사람은 본성도 우수하기 때문에 감정의 표현도 적절하게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감정의 표현을 도리에 맞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감정[情]을 알맞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기질을 조화롭게 변형시켜야 하는 방법과 수양이 필요하다. 여기에 바로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며, 끊임없는 수양으로 본연지성(本然之性)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이치를 깊이 연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이는 궁리(窮理)를 강조했다. 그래서 정이는 사물이 가지고 있는 이치를 깊이 연구하기 위해서 마음의 기능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마음을 완전히 선(善)하게 하고 현실에서 실천력을 갖추기 위해서 바깥 외물이 가지고 있는 이치를 연구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말함으로써 마음 바깥의 연구까지 강조했다.
정이의 수양론은 현대 사회인들에게도 적용이 가능해 보인다. 정이는 거경(居敬)을 통해서 개인의 선험적인 기질의 한계에 대해 논하고, 그에 대한 개인의 조화와 수양에 대해 강조한다. 이는 타인과의 비교로 인한 피로에 물든 현대 사회인에게도 충분히 유효해 보인다. 비교는 타자와 자신의 차이를 인지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때 비교의 대상인 본인이 열등하다면 그 개인은 허탈감, 무력감과 같은 피로를 느끼게 된다. 따라서 비교로 인한 피로를 통해 개인은 우월한 타자의 능력이나 지위가 본인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선험적 차이는 정이의 거경(居敬) 수양방법을 통해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또 개인의 비관적인 가치관을 보다 현실에 조화롭게 바꿀 수 있다고 논자는 생각한다. 우월한 개인이란 결국 그 자신의 노력으로 만들어졌으며, 자신의 상황과 현실의 조화로 인해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현대인이 사회에서 거경(居敬)의 방법을 통해서 개인의 능력과 정신을 수양한다면 보다 더 나은 개인이 될 수 있으며, 행복에 더욱 가깝게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본론에서 언급했듯이 거경(居敬)은 내적인 수양 방법이다. 따라서 궁리(窮理)의 수양도 균형적으로 이루어져야 개인의 수양이 완성될 수 있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정이의 방법으로 수양을 해내기 위해선 궁리(窮理)가 수반되어야 한다. “伊川이 제시하고 있는 격물궁리의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독서이다. 책을 본다는 것은 성현의 가르침을 비록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만, 당시로서는 성현들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도 하다(18).” 과거에는 이처럼 궁리는 소수의 한정된 방법으로만 가능했지만, 정보의 보급성이 확장된 현대 사회에서 궁리(窮理)란 숨 쉬듯이 용이하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정이의 수양론을 접하게 된다면 더 나은 개인이 되고, 그러한 개인들이 사회를 이룬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1) 진래, 안재호 역, 『송명성리학』, 예문서원, 2011, 160쪽.
(2) 『遺書』 卷18. “涵養須用敬, 進學則在致知.”
(3) 송봉구, 「程伊川의 修養論 硏究」, 『東洋文化硏究』 第1권, 2007, 85쪽.
(4) 송봉구, 같은 논문, 85쪽.
(5) 진래, 안재호 역, 『송명성리학』, 예문서원, 2011, 141~142쪽.
(6) 송봉구, 「程伊川의 修養論 硏究」, 『東洋文化硏究』 第1권, 2007, 86쪽.
(7) 『二程集』 “程子曰 學以至乎聖人之道也 學之道 奈何 曰天地儲精 得五行之秀者爲人 其本也眞而靜 其未發也 五性具焉 曰仁義禮智信 形旣生矣 外物 觸其形而動于中矣 其中動而七情出焉 曰喜怒哀樂愛惡欲 情旣熾而益蕩 其性鑿矣 是故 學者約其情 使合于中 正其心養其性而已 故曰性其情 愚者則不知制之 縱其情而至于邪 梏其性而亡之 故曰情其性.”
(8) 송봉구, 「程伊川의 修養論 硏究」, 『東洋文化硏究』 第1권, 2007, 87쪽.
(9) 김연재, 「義理學的 해석에서 본 程伊川의 道學 및 그 易學的 범주」, 『東洋哲學硏究』 제46집, 2006, 162쪽.
(10) 『遺書』 卷11. “人心莫不有知 惟蔽于人欲則亡天德也.”
(11) 『遺書』 卷11. “天下之物 莫不有理.”
(12) 송봉구, 「程伊川의 修養論 硏究」, 『東洋文化硏究』 第1권, 2007, 100~101쪽.
(13) “格猶窮也 物猶理也 猶曰窮其理而已也 窮其理然後 足以致之 不窮則不能也.”
(14) 『遺書』 卷18, “凡一物上有一理 須是窮致其理.”
(15) 『遺書』 卷19, “凡眼前無非是物 物物皆有理 如火之所以熱 水之所以寒 至於君 臣夫子閒皆是理.”
(16) 송봉구, 「程伊川의 修養論 硏究」, 『東洋文化硏究』 第1권, 2007, 102쪽.
(17) 송봉구, 같은 논문, 102쪽.
(18) 이천일, 「東方學 第21輯」, 『程伊川 敎育論에 관한 考察』 第21집, 2011, 318쪽.
진래, 안재호 역, 『송명성리학』, 예문서원, 2011.
김연재, 「義理學的 해석에서 본 程伊川의 道學 및 그 易學的 범주」, 『東洋哲學硏究』 第46집. 2006.
송봉구, 「程伊川의 修養論 硏究」, 『東洋文化硏究』 第1권, 2007.
이천일, 「程伊川 敎育論에 관한 考察」, 『東方學』 第21집,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