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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희 May 04. 2024

그녀의 밥

06. 파가 빠지면 섭섭한 닭꼬치와 맥주 





오후 6시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시간이 온다. 

나는 항상 이 시간이 싫었다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시간 모두가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는 때에 나는 집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마음을 편히 두고 쉴 곳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유년 시절에도 집이 없었고 직장을 구해 서울에 올라와 사는 동안에도 집이 없었다 

내 지친 몸과 마음을 편히 두고 쉴 곳이 없었다.

내가 가진 돈은 턱없이 부족했고 처음 몇 달을 창문이 없는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노을 지는 저녁이 되어 고단한 몸을 한평 남짓한 아무것도 없는 고시원에 몸을 눕히면 알 수 없는 감정이 몰려와 눈물이 흘렀다 쓸쓸함 외로움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울컥함이 몰려와 눈물이 났다 이렇게 나약한 내가 부끄러워서 눈물을 삼킨 적도 많았다. 

그때의 감정이 진하게 남아서인지 지금도 불편한 감정이 든다

.      

일주일 만에 만나 지숙은 나에게 노을 보러 가자고 말했다. 

가기 싫다는 이유를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데 그녀는 

돈 안 들이고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고 말하면서 맥주 두 캔과 닭꼬치를 들어 보였다 .

또 음식을 준비해 왔구나라고 생각하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우리 동네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에는 언덕이 있었다. 

그 언덕에 가보자고 한 것이다.      

30분 정도를 걸어 올라 그녀와 언덕 위에 앉았다.      

하늘이 노랗게 아니 보랏빛으로 아니 주홍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

해는 구름 뒤에 숨어서 내려앉고 있었다.

지숙이 말했다.

 

“예전에는 말이야 노을 지는 시간이 싫었어 

초등학교 때 동네에서 같이 놀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는데 

나는 집에 가기 싫었거든 나를 애타게 하는 할머니와 무서운 아빠만 있어서 

집에 가기 싫었어. 갑자기 즐거웠던 시간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가는 신호탄 같은 거였거든 

그게 각인이 되었는지 이상하게 오후 시간만 되면 우울하더라고

근데 신기하게 결혼하고 살면서 그런 게 말끔히 없어졌지 뭐야” 

    

지숙은 결혼을 했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도 나처럼 이 시간을 싫어했다니

그런 사람이 또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노을이 예뻐 보이더라고 노을이 지는 저녁이 기다려졌어 

그때 알았지 노을이 문제가 아니라 노을이 진다음 내가 편안하게 쉴 곳이 없어서 라는 걸 ”     

나도 아마 그런 게 아니었나 싶었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왜 그러는지 모른 채 나는 그냥 이 시간이 싫다고만 생각했었다  

    

“노을을 즐기면서 편히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게 내가 행복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해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영화라고 생각해 노을은...”

     

그녀의 말을 들으니 석양이 지는 그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나의 오래 묵은 감정들이 희석되어 묽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닭꼬치와 맥주 한 캔을 나에게 건넸다 


“내가 만든 닭꼬치야 나는 사실 닭보다 닭꼬치에 껴져 있는 파를 좋아해 

둘이 궁합이 잘 맞아 같이 먹으면 조연인 대파도 빛이 나고 닭도 더 맛있어져~

거기에 시원하게 맥주 한 목음을 마시면 그 순간이 참행복해 

지영 씨도 먹어봐!"

  

"네 잘 먹을게요 "   


나는 닭꼬치에 닭과 파를 같이 입에 넣었다 

달큼하고 향긋한 대파가 닭고기에 잘 어울렸다 

지숙이 말했다

 

"나는 사실 술이라면 지긋지긋해 

그래서 술을 아주 싫어했거든 내 주변에 술 마시는 사람들은 술에 취해서 나를 항상 괴롭히는 사람들뿐이어서 나는 절대 술은 입에도 대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었어 

그런데 딱 한 캔은 좋더라고 긴장도 풀리고 그리고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며 먹는 술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


나는 대답했다 

"저도 술 싫어해요 술자리도 불편하고요 취하는 기분도 싫어요 

하지만 오늘은 편안하네요 노을도 맥주도"


“그지 괜찮지? 

나도 술자리는 별로야 사람들은 술 마시면서 친해진다고 하는데 나는 아니거든 

분위기가 무르익어갈수록 더 낯설어져 같이 있는 사람들이... 술 취한 모습이 싫더라고

예전에는 그래도 맞춰 보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그런 사람들도 있고 나 같은 사람도 있고라고 생각해 사람들은 다 제각각 행복을 느끼는 방법이 다양하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숙과 같이 마시는 맥주는, 이 자리는 좋았다 편안했다 

점점 더 진해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해를 품고 찬란한 빛을 낼 때 어쩐지 가슴한구석이 벅차올랐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을 그동안 나는 왜 누리지 못했을까 

지난 시간의 느꼈던  감정들이 나를 땅만 보게 한 것 같았다 나는 쉴 곳이 없는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었다 이제는 나도 노을을 바라보리라 

하늘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빛깔의 노을 하늘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이 아름다운 풍경이 너에게 건네는 위로야 내가 사라지는 밤이 찾아오면 달빛 아래서 평안한 쉼을 찾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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