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 지났다

어쩌다 보니

by 선사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다. 내가 한국을 왜 떠나고 싶었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선뜻 말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이유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록의 필요를 느낀 다양한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계기는 할아버지의 피난일기를 보고 나서다. 할아버지의 회고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추억을 더듬어 하나하나 기억해본다. 때는 단기 4283년 (서기 1950)년도부터 기억을 더듬어보면 추억 속에는 당황, 슬픔, 허무, 애석, 불효 등 모두가 뒤범벅이 되어 갈피를 잡을 길이 없다. 사변 직후에는 집에 머물러있다가 여러 가지로 곤란한 점이 너무도 많았기에 9.28 수복 후 다시 후퇴 시에는 허둥지둥 얼떨결에 그리운 부모형제와 고향 산천을 뒤로하고 피난길이 시작되었다.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정처 없는 미지의 세상으로 피난민 인파 속에 휩싸여 버렸다. 생각해보면 추억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닌 몇몇 날의 회상일 뿐인데 왜 이리 복잡하고 어수선할까? 머리말은 이만 줄이고 추억을 회상해 보기로 한다.





사실 내 일상이나 생각을 굳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난 할아버지의 일기를 보고 많은 생각을 했고, 무언가 내 속에서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냥 한 사람의 기록이 이런 힘을 가질 수도 있구나 싶었다. 묘사된 풍경을 상상하고 한 사람의 감상을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위안이 되는 기분이었다. 나만 이렇게 살고 있진 않겠구나. 그래서 한국 밖에서 사는 동안 느낀 소소한 것이라도 공유하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유는 이게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해서다. 몸의 감각이 생생하고 기억력이 조금이라도 또렷할 때에 흘려보내고 있는 시간을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제한된 환경에서 특별한 일 없이 3년을 보낸 거 아닌가 싶다가도, 이 3년이 내 인생에서 많은 것을 변화시킨 것도 사실이기에 어떤 하루들이 나의 궤도를 완전히 틀게 만든 것인지, 그게 얼마나 소소하고도 하찮지만 또 감사한 것이었는지 기록하고 싶었다. 훗날 이때를 추억할 미래의 나를 위해서라도.


사람은 안 변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 한 사람으로서, 나 자신 또한 시간과 사건에 따라 굉장히 자주 생각을 바꾸곤 하기에, 몇몇 글의 솔직함은 지금 내게도 불편할 수도 있고, 이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나 더 이상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중에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으니 일단 기록하기로 했다.


나고 자란 곳을 떠나 서울로, 그다음엔 아예 다른 나라로, 그리고 또 국경을 넘을 준비를 하고 있는 이 와중에 그동안 내가 느낀 것들, 그저 3년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더 오래전 한국에서의 기억들이 다시 어떻게 내 세상을 다시 보게 했는지. 시간의 순서와 상관없이 기억나는 대로 일단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