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상은 넓어진 것 같은데 그들은 자꾸 사라진다
갑자기 기억난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았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자꾸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사람이 있었다. 어디서든 가장 첫 번째로 뜨는 그 사람은, 알고 싶지도 않은데 뭘 입고 생활하고 어떤 사람이랑 결혼했는지까지 구구절절 나온다.
내가 가장 알고 싶었던 친구의 소식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연락이 끊긴걸 수도 있다. 생활 반경이 멀어지고, 공통점이 사라지고, 그저 시간이 흘러서 그런 걸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어떤 사회생활을 하느냐에 따라 기가 막히게 숨겨지고 드러나는 사람들이 갈린다.
SNS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거나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알게 됐던 많은 사람들이 어느새부턴가 내 타임라인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 가정을 꾸리거나 일을 하며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도 음식 사진을 찍고, 가족들 사진을 찍고, 그날의 하늘 사진을 찍을 텐데 내 타임라인에는 좀체 보이지 않는다. 소식이 닿지 않는다. 아마 아예 일체의 SNS를 안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탈퇴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비슷한 것 같다.
거리에서
한국은 경사가 많다. 도시 내에 산도 많고 고저가 높아서 그런가, 골목 한 귀퉁이만 돌아도, 강 하나만 건너도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지리학적으로 그렇게 설계된 것도 있지만 이런 구분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많다. 유리벽 하나만 두고도 공간의 구분을 할 수 있으니 계단, 담장, 울타리 등등 경계를 나눌 수단은 많다. 철거민을 쫓아내고 재개발된 많은 지역이 그러하듯 고층 직사각형 건물들 사이로 들어간 돈이 갈리고, 드나드는 사람의 계층이 갈린다.
기억 속에서
보이지 않고, 만난 적 없으니 사라지는 사람들도 아닌데, 마치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철저하게 벽을 지어 놓고 서로 모른 채 살아간다. 분명 내가 어릴 적에는 다 존재했던 사람들인데, 이제 보이지 않는다. 좋은 동네로 갈수록, 좋은 직장을 얻을수록, 경력으로 연결되는 사람이 쌓이고 인맥이 늘어갈수록, 내가 어릴 적에 알던 부류의 사람들은 마치 내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 작은 것들로 장난치던 어린 시절 친구들이 지금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기록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삶이 오늘도 수없이 사라지고 있을 것이다.
사라진 게 아니라 감춰진 사람들
아파트 단지로, 엘리베이터로, 지역이란 이름으로, 가부장제라는 굴레로, 도움 되고 좋아할 만한 것들만 보여주겠다는 IT기업의 목표로, 알고리즘으로, 누군가의 의지로, 내가 알던 많은 사람들이 감춰지고 외롭게 사라져 가는 것만 같다.
"나는 왜 이렇게 친구 사귀는 게 어려울까?"
친구야 그건 네 잘못은 아닐 거야. 많은 사람들이 나랑 취향이 같거나 대화가 즐겁다고 해서 나랑 친구가 되어주진 않았어. 그냥 내가 어느 학교/회사/조직 출신의, 비싸 보이는 동네에서 사는, 팔로워도 많아 보이고 유명해 보이는, 그런 시시껄렁한 이유로 친구가 되는 게 대부분일 테니까. 한국은 그게 참 심해. 그런 사람끼리 모일 수 있도록 아파트라는 기가 막힌 시스템을 설계해뒀거든. 그리고 팔로워를 갖지 못해 안달 내는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과시하기 위해 소비를 하니까.
너의 친구들은 참 폭이 넓었다. 환경미화원도 너의 친구고, 만년 대학생인 30대 후반의 사람도 친구가 되고, 비트코인으로 억만장자가 된 저 사람도 너의 친구고, 옷가게 종업원으로 평생을 보낸 저 사람도 너의 친구로 남아있다. 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도 너의 친구이고, 그저 음악을 하다 만난 사람들도 너의 친구다. 유치원부터 안 친구들도 있고, 그들의 부모님도 너의 부모님과 여전히 친구로 지내고 있다. 처음엔 그저 너의 성격이 부러웠는데, 어느 순간부턴 그저 너의 성격뿐 아니라 환경의 탓도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개발된다고 집을 뺏기지도 않았고, 몸 쓰는 직업 갖는 다고 사람들한테 무시당하지도 않으며, 싱글맘이라고 갑자기 손가락질을 받고 고된 노동과 육아로 몸이 상하지도 않았다. 암에 걸렸다고 간병인이 필요하다고 고액의 치료비를 부담하다가 순식간에 빚더미에 앉거나,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가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하지도 않았다. 부당한 노동으로 산업재해를 받은 사람도 없고, 자식들에게 버려져 빈곤에 허덕이는 조부모님도 없을 것이다. 너의 사람들은 고만고만한 벌이를 가졌다지만, 모두가 따뜻한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구나. 일터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갑자기 큰 병에 걸리기도 하지만, 그게 그들의 인생을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만들지는 않았구나. 학벌과 직업으로 갈리는 격차 같은 건 너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는 주제일 것이다. 너는 여전히 음악과 영화, 게임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이 있고, 함께 정치에 대해 토론해도 즐거울 어른들이 있다. 조금 가난할 수 있지만 죽는 것만이 길인 처참한 바닥은 없다. 이웃들에게 서슴없이 인사를 하고, 즐겁게 보냈던 성탄절 사진을 서슴없이 인터넷에 올릴 수 있는 사람들. 너의 오래된 인연들은 감춰진 것 없이 행복해 보인다. 숨겨야 할 치부도, 느껴야 할 격차도 훨씬 적은 것 같아서, 그 속에 있는 나도 마음이 편하고, 사라진 나의 많은 인연들이 그리워진다. 다들 잘 살고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