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내가 타고 가는 구간은 자살사고가 참 많았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을 저번 한국에서의 휴가 때 사상사고로 열차가 지연되는 것을 보고 떠올리게 되었다. 그런 일들을 겪은 게 벌써 10년 전인데, 그 구간은 여전히 사상사고가 있구나.
학교 과제를 운 좋게 일찍 끝내게 되면 막차를 타고 집에 갈 수 있었다. 막차를 타지 못 하면 중간에서 택시 기사들이 담합한 비싼 요금으로 다른 승객들 몫까지 돌고 돌아 집에 갈 수 있으니, 반드시 타야만 하는 열차다. 거의 호선의 끝에서 끝을 가던 나의 긴 여정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밤은 그 사상사고가 있던 밤이다. 그 구간은 지상철이 기차역에 앞서 선로를 바꾸는 구간으로, 드물게도 아직 스크린도어가 없으며, 나들목까지 있는 구간이니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구조뿐만 아니라, 사실 그 동네 자체가 서울에 몇 없는 달동네가 남아 있던, 월세가 굉장히 싸고 치안이 안 좋았던 동네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 중 몇몇은 위험한 그 구간에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거겠지.
열차 플랫폼에서 내가 있던 바로 전 역에서 사상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열차는 지체되었고 오랜 시간 기다려야만 했다. 내가 꼭 타야만 했던 막차는 30여분 정도 지나서야 다시 재개되었다. 그 열차가 들어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마치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 뿌옇게 흐려지는 헤드라이트를 보는 것처럼, 그 열차가 경고 소리를 내며 들어올 때, 그 열차가 마치 전역에서 사람을 죽였던 그 열차 같이 느껴졌다. 평소처럼 열차 문이 열리고 타야만 했던 그 열차를 오르며 생각했다. 한국의 지하철 열차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했을까? 왜 그 사람은 죽음을 선택했을까? 나는 과연 이런 환경에서 얼마나 멀어질 수 있을까? 나는 이런 광경을 얼마나 더 봐야 할까?
똑같은 구간에서 사상사고를 냈던 그 열차는 이번에도 몇십여분 지연되었고, 그 사이 지친 나는 택시를 타려고 택시 앱을 켜봤지만, 아무래도 피크 타임인 듯 택시를 잡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돌아와 기다린 열차에 몸을 싣고 그때의 막차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역시 한국에서의 휴가는 트라우마 재생 밖에 안 되는 건가 하고 투덜거렸다. 바뀐 줄 알았는데, 바뀐 게 없었다.
한국에서의 휴가 기간. 오랜만에 아침에 강남을 가게 되었다가 잊고 있던 또 다른 사실을 기억해냈다. 출근길 지하철은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늘 연착이 되었기 때문에... 최악의 1호선과 2호선을 몇 년씩 타고 출근했던 나는 그 매 아침마다 연착되던 열차들을 많이도 보았다. 그저 사람이 많이 타고 내리기 때문에 평소보다 1-2분씩 각 구간에서 지연되는 것이 주 이유였지만, 다른 이유는 일주일에 1-2번은 응급환자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실신을 자주 해본 편이었기 때문에 열차에서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질 때마다 마음속으로 쓰러진 그 사람이 무사하길 빌었다. 잠을 잘 못 잔날, 아침을 못 먹은 날, 날이 더운 날, 운이 나쁘면 나도 어지러움증에 열차에서 뛰쳐나와 바닥에 주저앉곤 했는데, 이렇게까지 하면서 일하러 가야 하나 의자에 누워 생각하곤 했다.
강남으로 가는 그 길에 다행히 응급환자는 없었다. 애초에 출근 시간대도 아니긴 했지만. 여전히 출근시간대 만원 열차에는 응급 환자가 많을까?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리고 애초에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출근 시간대에 그 구간에 몸을 실은 일은 없다. 이제 지하철 30분만 타도 너무 피곤하다면서, 서울에서 강만 건너도 구만 옮겨도 피곤하다고 투덜거린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대학교부터 직장까지 십 년 동안 그 생활을 매일 3시간씩 한 걸까?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지?
수도라지만 서울에 비하면 너무도 작은 동네인 이곳은 아무리 멀리 가도 지하철을 30분 이상 탈 일이 잘 없다. 나의 출근 소요시간은 약 35분. 지하철을 타는 시간은 20분 남짓. 아무리 붐비는 시간에 타도 앉아서 못 가는 날은 없었다. 신의 장난인지 이곳에서도 나는 가장 악명 높은 호선을 탄다. 마약 장수(!)도 많고, 미친 사람도 많이 탄다는 그 호선은 내겐 너무도 쾌적했을 뿐이었지만. 아직까진 한 번도 이상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드물게 지상철 구간을 가진 이 호선은 아침 출근길에 내가 예쁜 하늘도 보고 단풍나무도 보고 고풍스러운 교회 건물도 보는 등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 주었기에, 지긋지긋한 길이었지만 어느새 약간의 추억이 되어 있었다.
유럽의 지하철을 처음 경험했던 곳은 파리였다. 정말 경악스럽게 더럽고 찌든 내 나는 곳이었는데 사실 유럽의 모든 지하철이 이렇지는 않다. 북유럽만 가도 굉장히 쾌적했다. 엄청 비쌌지만... 여행을 하며 참 많이도 지하철을 타보았는데, 지금 내가 사는 곳이 쾌적함으로는 상위 5위 안에 들 것 같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1970년대 지하철 모습이 현재 보이는 모습과 똑같은 걸 보고 경악했었는데, 그만큼 오래된 지하철이지만 보존도 잘 되어있고 깨끗한 편이다. 한국의 희번덕한 전등처럼 여기도 낯빛 누렇게 만드는 전등이 있지만, 사람들의 모습도 피곤해 보이기는 매한가지지만, 적어도 서로에게 실려 갈 만큼 밀도가 빽빽하진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2-30분 뒤면 내릴 테니까. 적지 않은 유모차가 타고 내리고, 심지어 대형견도 자주 본다. 그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자리를 조심스럽게 내어준다. 우리나라라면 양보는커녕 그 누구도 시도 조차 안 할 것 같은데... 캐리어를 낑낑대며 옮겼던 지하철에서 택시를 타지 않은 나를 얼마나 탓했던가...
직주근접이야 자주 듣는 조언 중 하나였지만 이게 그렇게 큰 차이를 가져올 줄 몰랐다. 심지어 아예 출근길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도로 위에서 낭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제 다시는 고통스러운 대중교통 출근길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운전도 마찬가지. 도로 위에 끝도 없이 이어지는 차 행렬에 터널에서만 30분 보내고 다리 건너는데 1시간이 걸리는 그런 교통 체증은 정말이지 신물이 난다. 아마도 가능한 계속해서 직주근접을 실현하거나 재택근무를 하며 살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운전보다는 대중교통 이용이 맘 편하기도 해서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은 미주 도시들은 앞으로도 고려하지 않을 것 같고.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골목들이 존재하는 이런 도시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