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민

혹은 이민 N세대

by 선사

못 사는 나라와 잘 사는 나라

EU와 Non-EU

시민권자와 이민자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네 편 내편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뒤로 나에게 굉장히 이상한 관점이 생겨났다. 국가가 하나의 회사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무구한 역사와 문화를 제외하고 한 국가를 그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을 갖춘 조직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훌륭한 CEO(?)와 좋은 문화, 높은 생산력과 성장 가능성을 갖춘 어떤 회사를 찾아 서류를 내고 면접을 보고 뽑히고 일을 하는 것. 어떤 회사는 인재를 놓치기 일수고, 어떤 회사는 시스템을 지속하기 위해 큰 지출을 감내하고 있고, 어떤 회사는 CEO의 독재 때문에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고, 어떤 회사는 자연환경을 너무 파괴해서 사람들한테 배척받고 있고...


내가 한국을 떠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내 뿌리를 잊지 말라고 말했다. 교수님도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친구도 지인도... 가면 애국자가 될 거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이제 한국에서보다 더 많이 한국 노래를 듣고 한국 TV 프로그램을 보고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한국 사회가 나에게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한다.


이 단계를 지나니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 지구인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역사적 이유로 모든 일본인을 미워할 수도 없으며, 정치적 이슈로 모든 중국인을 미워할 수 없다. 겉모습으로 모든 흑인을 무서워할 수 없으며, 테러가 있었다고 모든 종교인들을 멀리하지도 않는다. 외국인 같아 보인다고 가타부타 국적부터 물어보지도 않으며, 한국인처럼 생겼다고 한국인일 거라 가정하지도 않는다. 지구 반대편에서 지진이 나면 그 나라 사람들이 걱정되고, 기후 변화로 빙하가 녹는다기에 무언가 작은 실천이라도 해야 할 것 같고,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나면 반전시위를 나가는 것도, 흑인들의 시위를 지지하는 것도, 아시안 혐오 범죄 시위에 연대하는 것도 나에게 무관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오로지 한국의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같은 목표와 가치를 추구한다면 다른 나라의 사람과도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말이지 어느 특정 나라를 어디보다 좋다고, 여기가 내 편이고 내 소속이라고, 이곳이 진짜 세계의 중심이자 강대국이라고, 자랑하고 싶지도 그를 대변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두 발을 디딘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나의 국적과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아프리카 저 편의 기아를 도울 게 아니라 한국의 불우한 어린이들부터 도우라는 말은, 우리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내 주변의 이웃부터 돌보라는 말이고 독립투쟁의 역사를 잊지 말라는 말은, 자유와 평등을 위해 앞으로도 투쟁할 것을 선언하는 것이지, 한때 제국주의를 외쳤던 그 국가들에게 복수하자는 말이 되어선 안 된다. 테러범들의 출신을 핍박할 것이 아니라 폭력에 맞서야 하는 것이며, 나라를 위해가 아니라 인류를 위해 살아야한다. 국수주의와 애국은 다르다.


나는 한국인이고, 이민 1세대이며, 세계시민이다.


18033209-19D5-406C-8AE1-AEEB4D866D15-7582-0000041EDFD1A91F.JPG Olafur Eliasson: The Weather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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