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나도 가족이라네
결혼한 적은 없으나 아이는 있다.
내 전전 파트너의 사촌이지만 나랑은 여전히 친구다.
할머니가 둘이다.
그가 내 생물학적 아버지는 아니지만, 나에겐 아버지나 다름없다.
내가 낳은 자식은 하나지만, 내 딸이라고 생각하는 아이 둘이 있다.
나와 누나는 아버지가 다르다.
나와 동생은 어머니가 다르다.
Stepfamily. 번역어를 검색해보면 복합 가족이라고 뜬다. 유럽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의 형태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도 아이를 가지거나 재혼/이혼 후 새롭게 꾸려진 가족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사람이 보면 의아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회사 동료 중 결혼을 하지 않고도 아이를 키우며 십여 년을 함께 보냈다는 사람도 보았고, 전남편만 세명인 중년의 여성, 두 번째로 가정을 꾸리는 거지만 결혼은 처음 하는 남성도 보았다. 내 또래의 커플들이 오랜 기간 동거를 하다 이제 아이를 갖기로 했다고 하면 그게 우리나라식 사실혼으로 여겨진다. 결혼식은 안 하고 혼인 신고만 하는 커플들과도 다른 얘기다. 그들의 부모가 되는 것을 증명해주는 수단은 태어난 아이의 출생신고서다. 그곳에 생부와 생모로 이름을 올리게 되고, 양육권 등 부모의 책임을 갖게 된다.
스웨덴과 같이 성평등지수가 높은 나라에서는 이렇게 사실혼처럼 지내는 커플을 삼보라고 부른다. 결혼비자 말고도 이 삼보와 같은 관계로도 받을 수 있는 파트너 비자가 따로 있기도 하다. 남편의 성을 따르도록 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많은 유럽 나라의 여성들은 결혼 자체를 가부장제의 잔재로 보고 거부하기도 한다. 결혼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별로 해야만 할 이유가 없어서 이기도 하다. 절세 혜택은 보통 아이를 기준으로 주어지기도 하고 결혼을 하지 않아도 육아를 위한 혜택은 똑같이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문화적인 이유는 좀 더 여러 가지인데, 한 사람과 평생을 약속하는 건 무모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단순히 속박받기 싫어서 그렇다는 사람도 있고, 우리나라와 달리 이혼 시 강력한 양육비 청구를 받게 되는 남성들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안 한다는 얘기도 들어봤다. 결혼을 하든 말든, 사회적 압력은 적고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이렇다 보니 헤어지고 만나는 빈도가 확실히 높고, 이혼이나 이전 연애 경력에 대해서 관대하다. 내가 놀랐던 것은 이런 사회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가족의 형태였다. 전 애인과도 연락을 삼가라는 사회에서 전 남편 혹은 그들의 친척과도 서슴없이 관계를 유지하거나 배다른 형제임에도 구별 없이 두터운 우애를 유지하고 있는 걸 보고 굉장히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전 연애는 꽤 길었으나 애인의 부모님을 뵙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어느 어른을 뵙든 생각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고 긴장을 해야 될 것들이 많으니까. 애인 친구도 마찬가지. 이건 미국이나 아시아 국가 사람들이 많이 하는 심사(judging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문화가 너무 싫어서 애초에 피했던 것도 있지만, 한국 문화 특유의 엄격함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친척이나 지인들이 결혼을 하면서 생겨난 새로운 사람들을 어떻게 불러야 하며 또 어떻게 대해야 할지, 용어부터 갖춰야 할 예의까지 알아두어야 할 것이 많다. 그들에게 나는 내 이름 석자가 아닌 딸, 손녀, 아가씨, 동서, 형님 등등 대명사로 기억되고, 나 또한 그렇게 남들을 대한다. 그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는 이곳에 와서 깨달았다.
나의 애인의 부모님에 대해 말하고 나면 내 친구들은 헉 소리를 내며 놀라워 한다. 어떻게 그렇게 자주 만날 수 있는지,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등등. 정치, 문화, 사회, 어제 먹은 밥, 새로 본 넷플릭스 쇼 등등 별의별 것을 다 얘기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내게 '어머님'이나 '아버님' 혹은 '시어머니' 혹은 '시아버지'가 아니다. Maria와 Mike처럼 그저 한 사람이다. 나처럼 넷플릭스 미니시리즈를 좋아하고, 다른 나라의 다양한 요리 문화에 관심이 많으며, 왕년에 히피였고 파리에서도 살아보고 여행도 많이 다녀본, 그런 다채로운 면을 많이 가진 사람.
나는 1:1의 이 단순 명료한 관계성에 굉장히 편안함을 느꼈다. 그냥 편견 없이 적응해보니 나는 왠지 지금 애인과 헤어져도 이들과 연락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러고 있는 친구도 보았다! 전 애인이랑은 연락두절인데 그 애인 부모님과는 연락을 유지하는 기이한 현상! 나이를 떠나 친구로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의 유연성에는 다양한 장점이 있다. 결혼의 압박 없이 다양한 사람과 언제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고, 결혼이라는 제도가 없어도 똑같이 법적인 보호를 받는다. 싱글맘이어도 손가락질 받지 않으며, 육아를 위한 지원을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다. 무책임하게 자신을 버린 부모에게 자식이 직접 양육비를 청구할 수도 있다. 나이와 성별, 관계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나이가 들어도 다양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서 그런지, 이곳에서 만난 중년의 사람들은 훨씬 열려있었고, 그들과 나눈 대화는 생각보다 훨씬 편하고 흥미로웠다. (물론 은은한 인종차별자도 많았지만...) 그리고 새롭게 생긴 가족들도, 그저 가족이지 다른 의미는 없다. 평생 단 하나의 가족만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도와줄 가족이 더 늘어날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개인주의의 서양에서 유럽은 가족중심이라고 해야될 나라가 많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직급 대신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호칭 이상으로 사람대 사람으로 누군가를 부르고, 만나고, 상부상조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 굳이 남을 배척하려고 안달이 나야 할까? 사실 알고 보면 다들 그냥 애쓰며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인데. 누군가가 나를 기꺼이 자신의 사람으로 여겨준다면, 그저 지나가는 행인이 아니라 평생의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이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는 내게 많은 위안이 되었다. 나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긴 것 같아서.
한국의 명절처럼 이곳에서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 나는 그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고, 그들도 나를 위해 선물을 준비할 것이며, 함께 샴페인을 나눌 것이다. 생일마다 받는 직접 만든 케이크도, 생일마다 내가 직접 만든 케이크를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영영 만날 일 없었을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는 사소하지만 작은 행복이고, 어떨 때는 너무나 성가시고 귀찮지만 그래도 또 하고 나면 뿌듯한 일처럼, 우당탕탕 돌아가는 가족 코미디 영화처럼, 한 번쯤은 눈 딱 감고 즐겨볼 만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