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Workingmom B
Feb 19. 2024
출산휴가만 쓰고 복직을 했다. 아이가 백일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이는 아직 새벽 수유가 필요했고 잠귀가 밝아 잘 깨는 아이었다. 그런 아이를 돌보고 출근하는 길은 퇴근길 같았다. 그렇게 아이를 돌보다 새벽에 쓰러져 세면대에 부딪힌 적이 있다. 이마에는 멍이 들었다. 머리가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주말부부인 탓에 평일 밤엔 아이 돌봄을 신랑에게 미룰수도 없었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자 불면증이 찾아왔다. 잠들기도 어려웠지만 잠들어도 금방 깨곤 했다. 아이의 작은 부스럭거림에도 반응했고 아이도 엄마의 불면증을 눈치챈 듯 잘 자지 못했다. 그때부터 아이의 잠도, 나의 잠도 참 어려운 숙제처럼 여겨졌다.
세 돌이 지나도 아이는 낮잠을 푸지게 잤다. 어린이집 하원을 하고나서는 말 그대로 저녁잠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러나 아이의 눈꺼풀보다 무거운 것은 없었다. 잠이 늘 이겼다. 아이가 11시쯤 잠드는 날이 가장 행복했다. 그 때쯤 잠들면 아침까지는 잘 자주었다. 문제는 아이가 잠을 참고 참고 참다가 8시쯤 잠이 들었다가 11시쯤 깨서 놀아달라고 하는 날이었다. 엄마와의 놀이 시간을 확보라도 하겠다는 듯 졸린 내 눈꺼풀을 들어올리던 아이의 손가락에 놀라서 깬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렇게 1시, 2시가 되어서 아이가 잠이 들면 나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그렇게 마음도 몸도 축이 났다. 한계에 다다를 즈음에 회사 이전으로 휴직을 하게 되었고 휴직을 하고 나서도 낮잠과의 싸움에서는 항상 내가 패자였다.
이사를 오고 유치원에 다니면 좀 나아질까 했지만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신랑이 복직을 하기 전에 낮잠을 재워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아이의 짜증만 늘어갔다. 5월 즈음 신랑은 복직을 하고 시터이모님이 오셨다. 저녁이 되면 아이의 잠투정은 점점 심해졌고 그런 아이의 짜증을 알기에 재우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쉽사리 하지 못했다. 나도 못하는 일을 생판 남인 시터이모님께 부탁하는 것은 무리하다고 생각해서 차마 입밖에 꺼내질 못했다.
그랬더니니 이상한 루틴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아이는 하원 후 놀이터에서 돌아오면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밥도 먹지도 않고 씻지도 않은 채로. 집에 설치해둔 캠으로 상황을 종종 지켜보곤 했는데 아이가 자면 이모님은 밥을 차린 후에는 우아하게 책을 보고 계셨다. 내가 집에 8시에 도착하면 그때서야 아이는 눈을 떴다. 그때부터 먹이고 씻기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두번째 출근이었다.
두번째 출근은 첫번째 출근보다 힘들었다. 이미 회사에서 에너지는 쏟고 온 다음이라 힘들기도 했고 잠에서 깬 아이는 내게 더 매달리고 응석을 부려 힘들기도 했다. 스스로도 잘 할 수 있는 일들도 '엄마가 해줘.'하며 졸졸 쫓아다니는 아이를 매정하게 뿌리칠 수 없었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엄마의 죄책감 버튼을 잘 알고 있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는데 하루 종일 참았다는 투정을 하면 엄마는 너그러워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이는 본능적으로 터득하게 된 걸까. 유치원에서 혼자서 밥을 제일 잘 먹는다는 아이는 집에만 오면 엄마에게 밥을 먹여 달라고 했다.
씻기 싫어하는 아이를 목욕탕까지 끌고 들어가는 일도 힘든 일과 중 하나였다. 좋아하는 간식으로 어르고 달래며 겨우겨우 씻겨서 내보내고 나면 10시 정도였다. 남은 에너지를 탈탈 털어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누군가 나도 좀 씼겨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아이가 11시에 자주면 그 것도 너무 고마운 나날이었다.
체력은 점점 고갈되어 갔다. 이대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두번째 출근을 하지 않을 돌파구가 필요했다.
정답은 하나. 아이의 낮잠을 재우지 않는 것.
정답을 알면서도 답안지에 정답을 적지 못하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