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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rkingmom B Jun 27. 2022

직장인의 발

뚜벅이의 운전과 출퇴근에 대한 단상


뚜벅이와 운전


 유퀴즈에서 나온 퀴즈, '눈이 녹으면?'이라는 질문에 문과생은 '봄이 온다.', '따뜻해진다.' 등 감성적인 대답을 하는 반면 이과생은 '물이 된다.'는 팩트로 답변한다고 한다. '출퇴근길이 질퍽거린다.'는 답변을 생각했던 나는 대체 문과생인가, 이과생인가? 나는 이과생도 문과생도 아닌 뚜벅이 직장인이로소이다.


 나는 차가 없다. 걸음마를 한 이후 쭈욱 뚜벅이 신세다. 면허증은 신분증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고 운전 기능은 거의 없는 상태다. 차를 살 돈이 있으면 아껴서 여행을 가겠다는 것과 판교를 가면 차가 더 필요없을 것이라는 말은 사실 비겁한 변명이고 그저 운전이 무서워 미루던 것이 오늘날까지 왔다.


 뉴스를 보니 장마가 시작이란다. 뚜벅이들이 힘든 시즌이다. 온 몸이 젖은 채로 출근해 찝찝함에 몸부림치다가 겨우 극복할 즈음이면 어김없이 퇴근 시간. 다시 밖으로 나가 비를 맞을 생각을 하면 벌써 지친다. 삼보일차(三步一車)를 실천하시는 분들은 이해가 안될 수도 있겠다. 비가 올때면 나도 드라이버를 꿈꾼다. 지하주차장 to 지하주차장으로 옮겨가며 비 한 방울 맞지 않은 꿈을.


  직주근접(職住近接)을 실천해온 나로서는 종종 퇴근길 집에 걸어가는 길이 좋다. 도시에 살며 계절을 옷차림으로 느끼다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계절이 변할 때 마다 다른 바람이 분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는 꽃과 푸른 새잎이 돋아나게 하는 바람이 인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 후끈한 열기와 가을 냄새나는 서늘한 기운, 겨울의 칼바람은 차 안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한다. 그 정취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낭만 뚜벅이의 삶은 나쁘지 않다.


  

당신의 출퇴근길


 시골에 살아서 서울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대학 신입생 시절, 친구들의 등하교길은 듣기만 해도 어드벤쳐였다. 편도 1시간 30분에서 2시간 걸리는 친구도 많았고 그래서 수업을 주 3~4일만 잡는 친구들도 있었다. 30분 정도 걸리는 출퇴근 시간은 가깝다고 생각하는 수도권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길에 다가 왜 시간을 뿌리고 살까. 지내면 지낼수록 사람들은 길에 시간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출퇴근 시간에도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대중교통 안에서 그들의 능력은 날로 발전하고 있었던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은 출근형 직장인으로서 어디까지 진화했는가?


1) 입문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고 잠을 자는 능력부터 발휘한다. 부족한 잠을 버스와 지하철에서 채운다. 지하철 반대편에 앉아서 조는 사람들을 본 적 있는가? 자면서 헤드뱅잉을 해서 부딪힐까 아슬아슬해 보여도 절대 옆사람에게 기대지 않는 긴장감을 유지한다.

 핸드폰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낸다. OTT, You Tube 등을 통해 다양한 볼거리를 즐기거나 SNS으로 사람들을 소환해 대화를 나눈다. 소리만 없을 뿐이지 수만가지 말들이 눈으로 오가고 있다.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이 소리가 된다면 버스와 지하철은 소리로 터져버릴 것이다.


2) 중급

 독서와 공부는 기본이다. 책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버스와 지하철에서 해낼 수 있다.

 책은 앉아서도 서서도 읽을 수 있다. 책을 펼칠 공간만 있으면 된다. 출퇴근 만원 지하철에서는 조금 힘들다면 오디오북을 활용할 수도 있다.

 공부는 특히 암기과목이 제 격이다. 영단어를 외운다든지, 단순 암기 과목 필기 메모장을 꺼내 염불 외듯 중얼중얼하다 보면 주변 눈총이 조금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느새 도착지가 다가온다.

 

3) 고급

 버스와 지하철에서 화장이 가능한 여자들의 시간은 대중교통을 타기 전과 타기 후로 나뉜다. 흔들리는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도 정확하게 아이라인과 아이브로우를 그려낸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양쪽 똑같이 그려내는 능력에 박수를 칠뻔한 적도 있다. 지하철 타기 전 밋밋했던 얼굴에서 내릴 때는 차가운 도시녀로 변신한 그녀들의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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