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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의 서재 Jan 22. 2022

공부보다 운동을 먼저

체력이 약하면 역량도 뛰어나기 어렵거든.

(책상 밑을 가리키며) “자기야 이거 뭐야?”


“아 그거? 새로 산 노트북 전원 어댑터야”


“정말? 무슨 냉장고 연결하는데 쓰는 줄 알았어. 뭐가 이렇게 커?”


“노트북이 고성능이라서 그렇지 뭐. CPU, 메모리, 그래픽카드, 용량 같은 성능이 올라가니까 전원 어댑터도 같이 커지더라고. 나도 간과했었는데, 컴퓨터 고를 때 사람들이 전원 어댑터 생각을 잘 안 한다고 하더라고? 성능이 좋으면 어댑터도 크고 무거워질 거라 생각 안 하는 거지.”


(전원 케이블을 들어 올리며) “와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그냥 집 안에서야 몰라도, 이거 완전 데스크톱이나 다름없는데? 오우... 우리 가끔 카페 가서 같이 작업할 때도 있는데, 이거 들고 갈 수 있겠어?”


(웃으며) “그렇긴 하지? 근데 사진 편집 프로그램 돌릴 만큼 성능은 그런 어댑터 써야 하더라고. 자기 남편 체력 좋잖아. 자기랑 운동해도 버티는 남자! 자기 결혼 상대 조건 1번이 체력인데, 그걸 통과한 사람이 이거 들고 어디 못 가겠어?”


“하긴 자기가 나 만나고 운동 주기적으로 해서 체력이 많이 올라오기는 했지. 운동하니까 어때? 삶의 질이 높아지지 않아?”


“월화수목금토 각기 다른 근육이 아파서 다른 병치레가 낄 자리가 없는 게 삶의 질이 높아진 거라면... 그렇지. 삶의 질이 많이 높아졌지.”



운동한 다음날은 너무 힘들어서 잉크 흘리고 그러지.


(손뼉을 치면서 웃으며) “아 너무 좋아! 자기 운동 시작하고 감기 한번 안 걸렸잖아. 얼마나 좋아.”


“그렇기는 하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아프면 발휘할 기회조차 없는데, 몸이 튼튼해지니까 이제 능력만 더 쌓으면 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그건 반만 맞는 이야기인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도 아프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맞는데, 사실 체력이 약한 사람은 역량도 뛰어나기 어렵다고 생각해. 아무리 악으로 깡으로 버텨도 그건 한두 번이고, 금방 무너져. 컴퓨터는 배터리가 다 소진되면 꺼지고, 충전만 하면 되잖아? 다시 켰을 때 성능이 떨어지지는 않지. 근데 사람은 그렇지 않아. 체력이 저하되면 역량도 점점 떨어지고, 회복하기도 어려워. 하지만 컴퓨터와 달리 체력을 키우면 업그레이드도 된다? 기억력, 판단력, 집중력, 절제력 이런 거 사실 체력이 없으면 점점 없어지거든. 그래서 나는 뭔가 나 스스로가 성장하고 싶을 때, 체력이나 운동 능력부터 끌어올려.”



“근데 운동이라는 게 결과적으로는 체력이 늘지만, 사실 되게 힘든 거잖아? 너무 힘들어서 운동한 날은 다른 거 아무것도 못하기도 하고.”


“맞아 과정은 고통스러워. 숨이 차고, 근육이 막 찢어질 것 같고. 즐겁게 운동하는 것도 진짜 좋은 습관이기는 한데, 성장한다는 건 지금의 나를 뛰어넘는 거잖아. 더 무거운 무게를 들고, 더 멀리 뛰고, 더 높이 점프하려면, 피곤하고 아픈 과정을 겪어야 해. 운동만 그런 게 아니잖아? 어떤 일이든 현재 수준을 넘어서려면 엄청 힘들어. y=ax 그래프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실력이 죽 늘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 실제로는 실력이 느는 과정은 불규칙한 계단처럼 늘어. 죽어라 해도 전혀 늘지 않을 때도 있어. 근데 멈추면 진짜 안 늘고, 그 노력을 지속해야 또 조금씩 늘고 그래. 수준이 올라가기 전까지는 항상 제자리인 것 같고, 힘들기만 하지. 자기 처음 운동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 있잖아.”


“일단 들어요. 일단 버텨요.”


“맞아, 지금은 이해하지?”


“응. 웨이트 처음 시작했을 때 트레이너가 하던 말이 인상적이었어 -  ‘일단 해요. 그래야 근육이 아 이거 해야 하는구나라고 자극을 받고 하게 되는 거예요. 자세, 무게 이런 거는 그다음이에요. 버티지 못하면 다른 것들은 시도조차 못해요'. 근데 그렇다고 무식하게 계속 노력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


“맞아. 운동도 자극, 휴식, 영양이 균형을 맞춰야 되잖아. 공부나 일도 마찬가지로 문제를 직면하고, 관련된 정보를 습득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시간을 골고루 투입해야 느는 것 같아.”


“그래서 자기가 우리 아들 운동은 꼭 시킨다고 하는 거야?”


“응 운동은 꼭 시킬 거야.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운동하는 습관은 꼭 만들어주고 싶어. 공부보다도 삶의 바탕으로서."


“나도 사실 그건 동의해. 운동은 꼭 했으면 좋겠어.”


“자기가 웬일이야?”


“나는 결혼하기 전에는 자기처럼 운동이 내 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이제는 확신하는 게, 운동이 진짜 중요해. 어쩌면 공부보다도 더. 언제나 우리 품속에 있을게 아니잖아. 언젠가는 우리 아들이 자립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문제 해결 능력이 밑거름이 되어야 해. 그리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려면 운동을 해야 해.”


“음? 그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문제라는 건 어떻게 보면 스트레스잖아. 문제 해결에 탁월한 사람은 그런 자극 요소에 직면하면 그걸 일단 버티고, 과부하 오기 전에 스스로 조절하고, 그리고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는 연습이 잘 되어있더라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문제 해결 방법을 생각해내고 결정을 내려."


“운동과 문제 해결이 비슷하네. 좋은 비유인 것 같은데, 운동이 직접적으로 문제 해결 능력에 도움이 될까?”


“난 운동이 사실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해. 컴퓨터나 몸과 달리 뇌는 정지 버튼이 없어. 컴퓨터는 프로그램을 종료하면 되고, 몸은 근육통이 심하면 멈추면 돼. 근데 생각을 멈추는 건 어려워. 기발한 아이디어가 요구되거나, 난해한 문제를 풀어야 하거나, 관계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극복할 때, 운동을 해야 하는 것 같아. 하물며 산책이라도. 생각이 많을 때 몸을 움직이면, 몸에는 자극으로 작용하지만 뇌는 휴식할 수 있거든. 우리도 온 힘을 다해 웨이트를 하거나,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뛰면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운 순간을 누릴 수 있듯이 말이야.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사실 이렇게 몸을 자극해서 뇌를 잠시 절전상태로 놓았을 때 더 잘 떠오르는 것 같아.”


“하긴 운동 끝나고 샤워할 때  뭔가 번득 떠오르는 경우가 진짜 많아.”


“그렇지? 그래서 난 우리 아들 키울 때 공부보다는 운동하는 습관을 먼저 키워주고 싶어. 공부를 잘하려면 필요한 바탕이 있잖아. 놀고 싶은 마음을 참고, 해야 하는 것을 하는 자제력, 무언가에 몰입하는 집중력, 장기적 계획력 같은 능력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공부도 할 수 있어. 부모의 역할은 이 바탕을 깔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우리 아들이 학교 다닐 때는 공부 못하는 거야 사실 난 괜찮아. 하지만 이런 능력을 배양시켜 주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대학교 입시에서 너무 공부만 중시한다고 생각해. 이건 사실 굉장히 예외적이야. 다른 나라들도 좋은 대학 가려면 성적이 당연히 좋아야 하지만, 체육이나 예술 등 활동도 했는지 꼭 보거든. 내가 살았던 미국이랑 프랑스가 특히 그랬어. 엘리트 학교일수록 체육 활동도 엄청 중요하게 보더라고. 필수야. 졸업을 안 시켜. 문제 해결 능력에 운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교육 제도에 반영한 것 아닐까? 난 한국에서 여학생들이 성적이 좋은 경우가 많은 이유가 이거라고 생각해. 남자애들은 움직여야 머리도 돌아가는데, 그냥 가만히 앉아있으라고만 하니까 그게 되냐고. 생물학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도전하라는 호르몬이 계속 나오는데.”


“자기 말에 굉장히 많이 공감해. 특히 우리 아들이 살아갈 시대는 다양한 문제 해결 능력이 굉장히 자주 요구되는 시대일 것 같아. 인공지능이 이 정도 속도로 발달하면, 인간의 역할이 바뀔 것 같거든. 학습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건 기계에 맡기고,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면서 일을 추진하는 거지. 이런 세상에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이 요구되는지는 사실 모르겠어.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이디어를 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극도의 스트레스라는 거야. 그렇다면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서라도 운동이 중요해.”


“듣고 보니 정말 그러네. 우리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정도면,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기술은 발달하고, 훨씬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우리 몸뚱이는 그대로 일 테니까.”


“맞아 맞아! 근데 자기 서둘러야겠다.”


“갑자기 왜?”


“자기 PT 갈 시간이야. 어서 가. 아빠가 운동하는 모범을 보여야지.”


“나 오늘 수업 없는데?”


“그럼 개인 운동해야지.”


“노트북이랑 어댑터 메고 산책하면 운동되지 않을까?"


"그냥 가."


"네..."




덧.


아들에게,


아빠가 엄마에게 반한 순간이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같은 회사에 다니며 사무실에서만 서로 보던 사이였는데, 언젠가부터 점심시간에 같이 운동을 하기로 했다. 땀을 줄줄 흐를 정도의 고강도의 운동을 한 후, 씩 웃는데 그 모습이 참 새롭게 다가오면서 설레더라. 엄마를 만나기 전 아빠는 운동이란 적당히 해야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엄마는 적당히라는 말을 운동부족의 동의어로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랜 시간보다 보니 아빠도 느낀 바가 있었다. 이 사람은 운동을 통해 스스로에게 도전 과제를 던지고, 성장하는구나. 아빠가 엄마에게 반했던 이유는 이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결혼하고 보니,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안 되는 사람이라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 특징을 네가 온전히 물려받았구나...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지치지 않는 우리 아들. 지금 보니, 네가 이 에너지를 어딘가로 발산하지 않고, 그냥 책상에만 앉아있으라고 하면 절대 안 될 것 같다. 아빠가 다른 건 못해줘도, 우리 아들 운동은 꼭 시켜줄게. 돌아와서 그냥 잠들어도 된단다. 너의 그릇을 더 크게 만드는데 집중하렴. 그 안에 무엇을 담을지는 너의 몫이란다.


운동으로 맺어진 사이라, 신혼여행 가서도, 결혼하고 나서도 함께 운동했단다. 이런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운동을 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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