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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은 Aug 18. 2022

최은창의 '가짜뉴스의 고고학'

가짜와 허위의 세상에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펼쳐진 가짜 뉴스의 역사를 실제 사례를 통해 꼼꼼하게 전달하는 책을 보며 도대체 이 예시는 언제 끝날 지를 생각하니 갑갑해졌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가진 교묘한 가짜 뉴스를 판별하고 통제하는 것을 지극히 개인적인 역량에만 기대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길 바라며 읽었지만 결말을 예상할 수 있는 통속소설처럼 책은 '너의 비판적 수용이 중요하고 플랫폼 회사들의 역할이 중요한 거야'로 끝을 맺는다. 완전한 거짓말보다 더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것은 어느 정도의 사실이 포함된 허위를 담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고전적인 미디어의 경계가 무너지고 뉴스 생산자를 신뢰할 수 없는 세상에서 비판적인 사고만으로 허위와 진실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은 개인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을 추구가 최우선의 목적인 회사에게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합당한 방식일까. 개인의 리터러시가 향상되고 도의적 책임이 불러일으킨 자정작용에 플랫폼 회사들이 적극적으로 임하면 우리는 가짜 뉴스를 박멸할 수 있을까?


지극히 작은 개인에 불과한 나의 관점으로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본다. 의도를 가지고 작정하고 속이는 것에 넘어가지 않을 기술을 키우는 것밖에는 답이 없어 보이는데 역사가 긴 가짜 뉴스와 소셜미디어를 타고 범람하는 허위 정보 속에서 어떤 것이 옳은 가치를 담고 있는지 나는 제대로 구분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이익을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의 이기심을 정당화하는 허위 정보를 담은 가짜 뉴스에 매혹되지 않고 나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반성할 수 있는 뉴스를 더 가치 있게 바라볼 용기가 내게 있을까.


중국, 터키, 러시아 등의 권위주의 국가의 허위정보와 가짜뉴스 대응 방법이 보여주는 위축 효과를 생각해본다. 허위 정보의 확대로 인한 사회적 문제와 규제정책으로 인한 닫힌 사회의 문제 중 어떤 것이 더 큰 문제일까. 그렇다면 글로벌 플랫폼 회사들의 사용자들의 자유를 존중하는 듯한 태도는 올바른 태도라 볼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서 많은 이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튜브를 인생에서 거의 삭제하다시피 한 나의 결정은 앞으로도 변함없을까, 아니면 달라질 수 있을까. 드라마나 예능에 등장하는 미묘한 편견과 갈등 조장이 불편해서 거의 보지 않는 생활 방식은 내가 선택하는 뉴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나는 어떤 뉴스에 더 크게 반응하고 어떤 것들을 진실로 믿고 따르고 있을까. 여전히 골치 아픈 일은 사양하지만 꼭 알아야 한다면 책에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유념하며 살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결론 없는 464쪽이 보여준 가짜 뉴스의 역사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정량이 불가능한 비판적 수용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선일 테니까.  


기사가 보여주는 내용의 사실 유무를 판단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합리적인 가공을 한 데이터를 사용했는지, 데이터를 보여주는 방식은 문제가 없는지, 주제에 맞는 통계를 사용했는지, 그리고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이런 기사를 작성한 것인지,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집단은 어떤 집단이고 피해자를 특정하지 않는 방식의 가짜 뉴스로 피해를 보는 집단은 또 어떤 집단인지, 허위 정보를 기정사실처럼 유포하는 사람들이 떨쳐내고 싶어 하는 두려움과 유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책은 주장한다.


학창 시절에 풀었던 단순한 연산 문제처럼 명쾌한 답을 얻고 생각 없이 따라 하고 싶은데 책은 머리 아프게 자꾸만 답도 없는 질문을 던진다.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최은창 / 동아시아 / 2020


가짜뉴스의 고고학에서 발췌


[31]

가짜뉴스에 대한 책임을 비언론인과 온라인 미디어로 떠넘기는 주류 언론의 모습은 수건돌리기 놀이와 비슷하다. 국내에서도 보수, 진보 언론은 팩트체킹을 두고 옥신각신하고,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를 떠다니는 거짓 정보를 문제의 몸통으로 여기는 듯하다.


[103]

'거짓은 빠르지만 진실은 절름발이라서 늦게 도착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속지 않으려고 해도 깨닫기에는 이미 너무 늦다. 거짓말 장난이 끝나도 그 효과는 남게 된다.' 조너선 스위프트, 이그제미너 The Examiner에 쓴 글, 1710 중에서


[169]

최근 국내에서 유행한 허위정보와 가짜뉴스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 전형적 수법은 부분적으로 사실은 맞지만 다른 부분을 왜곡하여 전달하고, 통계를 왜곡하여 평가하고, 이미 알려진 사실의 전후사정을 왜곡하는 논평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272]

언론사들은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의 소문이나 정치인의 발언, 주장이 맞는지 팩트체크에 나선다. 그런데 오류나 허위로 여겨지는 뉴스나 소문들을 택할 때도 가치판단이 개입된다. 검증 대상을 고르는 언론사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며 주관적 요소가 개입된다. 팩트체킹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우 노동집약적 절차이고 그 결과는 가능한 한 신속하게 제공해야 하므로, 인력이 한정된 언론사로서는 가장 논란거리가 되는 이슈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팩트체크 과정을 거친다고 뉴스의 불확실성이 언제나 해결되지는 않는다.


[373]

소셜미디어로 개인적 경험은 쉽게 공유되지만 다수가 공감을 표현했다고 해서 치료법의 과학적 안전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문가의 판단보다는 경험을 들려주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더 믿는 경향이 있다.


[418]

정보 비대칭이 심한 분야에서는 기자들마저 전문가들의 과장된 예측에 속아 넘어갈 수 있다. 대다수의 언론사들이 과학적 위험을 기정사실화하고 충격적 기사 제목을 뽑는다면 대중의 인식 속에 '사실'로 자리 잡게 된다. 정부로서는 언론이 강조하는 과학적 위험과 우려가 턱없이 과장되어 있더라도 무시하기 어렵게 된다.


[448]

플랫폼이 방치하는 선동적인 허위정보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일까, 아니면 고의적으로 확산되는 잘못된 정보들의 차단과 제거를 요청하는 플랫폼 책임론이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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