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아니고 사람이었어?
이문영 님의 노랑의 미로가 '가난해서 무능하고 무능해서 가난하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밝고 사치스러운 노랑으로 진짜 가난의 궤적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김하영 님의 '뭐든 다 배달합니다'는 빈곤 앞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기술사회에서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떤 식으로 지워지는지를 깨닫게 한다. 기술시대의 최전선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주요 업무 전략이 '좋은 오토바이'라는 웃기고도 슬픈 이야기를 저자는 직접 체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상세하게 표현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생겨난다. 마차꾼은 운전수로, 운전수는 택시기사로, 택시기사는 대리기사로 직업은 변했지만 종사하는 사람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대리기사, 배달 라이더, 택배기사, 새벽 배송이라는 필수 노동 분야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쳇바퀴처럼 꾸역꾸역 살아가는 노무제공자들은 분명히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필수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은 현관 앞 택배 상자로, 기계인지 사람인지 구분도 가지 않는 스마트폰 속의 배송 완료 문자 메시지로만 노동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노동은 남고 노동자는 지워진다.
'기술의 발전은 황새인데, 제도는 뱁새'라서 길바닥에서 몸을 쓰며 돈을 버는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 노동을 노동으로 존중하지 못하는 사용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제 직업은 배달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장애인이 그늘로 숨고 외국인 노동자가 차별 앞에서 속수무책인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배달은 사람의 일인데 제도를 관장하는 국가의 일은 무엇이고 관성에 젖어있는 사회의 일은 무엇인가.
아파트 엘리베이터로 택배 옮기지 마세요.
지하주차장으로 못 들어가니 아파트 입구에 정차하고 배달하세요.
면이 불어 터지지 않게 빨리 갖다 주세요.
식기 전에 갖다 주세요.
오토바이 시끄러우니 소리 내지 마세요.
비 오고 바람 불고 삭신이 쑤셔서 주문을 하면서도 배달하는 노동자에겐 가차 없는 현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억대 연봉을 받는 플랫폼 노동자의 이야기,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달리는 몰상식한 라이더를 비난하는 말을 들어본 적 있다. 교통 법규를 지켜도 시급을 보장해주는 사회라면 분명 목숨을 담보로 도로를 질주하는 라이더가 지금보다는 줄어들 텐데 라이더만 비난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1푼도 안 되는 억대 연봉 라이더 이야기로 9할 9푼의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바른 행동일까.
지난 9월 28일 여의도에서는 플랫폼 노동자 단체들이 노동제도 개선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쳤다. 쉴 권리 보장, 적정임금, 최저임금을 보장해 달라는 그들의 목소리가 억대 연봉자들의 요구조건 치고는 꽤 소박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권과 경력 그리고 연봉은 비례하지 않으니 경력과 돈이 늘 제자리를 맴도는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불합리한 현실에 맞서 대응할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분석한 완벽한 알고리즘이 아닌 일을 하는 사람의 오류로 취급해버리는 억울함을 기계는 몰라줘도 같은 사람은 알아줘야 하는데 그게 이렇게 어렵고 힘들 일인가 싶다. 하물며 기계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일만 시키면 고장이 나거나 부서진다. 사람은 오죽할까.
사회가 규정한 '제대로 된 일'의 범위를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직업을 일로 받아들이고 존중했을 때 소요되는 비용이 무서운 걸까. 그렇다면 노동자들을 기계 부속품처럼 대체 가능한 집단으로 만드는 비윤리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 것일까.
2020년 10월 쿠팡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던 28살 장덕준 씨가 사망했다. 사망원인은 과중한 업무로 인한 심근경색이었다. 그는 주당 평균 58시간, 사망 직전엔 62시간 일했다.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 / 박미숙, 희정, 이승훈, 줄리, 한인임 / 민중의 소리 / 2022) 고작 2년 만에 노동 착취가 일상인 산업 현장에 문제를 제기하는 책이 또 나왔다. 사회는 여전히 '목숨이라는 대가를 치르고서야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뭐든 다 배달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의 배달 신화는
과로로 죽거나 다친 노동자들의 삶으로 쓰여졌다.
그들에게 인권을 돌려주고
휴식과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보장한 다음에도
우리는 배달의 민족으로 불릴 수 있을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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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울고 싶은 건 영세 자영업자뿐만이 아니다. 편의점 사장님들은 모여서 시위라도 하지만, 최저임금 받는 408만 명 노동자들이 모여서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지키라"고 시위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나. 편의점 알바들이 "교통비와 식대를 보장하라"며 단체행동에 나서는 것을 본 적이 있나. 내가 쿠팡에서 일을 하다 너무 힘들어 "시급 1만 원은 받아야겠다"고 주장하면 받아줄까? 하루마다 새로 계약하는 내게 쿠팡은 그저 "죄송합니다. 공정 모집이 마감됐습니다"라고 문자 한 통 보내면 그만이다. 나는 쿠팡에 얼씬도 할 수 없다. (중략) 이들은 그저 매년 여름 열리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다. 일부 대규모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임단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대다수의 최저임금 일자리 종사자들에게 최저임금위원회는 자신을 대신해 임금 협상을 해주는 '임단협 테이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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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잡 열풍 배경에 '부업' 시장의 성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돈 많이 받고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는 점점 줄어드는 데 비해, 최저임금 수준이면서 불안한 비정규직 일자리만 늘고 있다. 하나의 직장만으로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 평일 새벽에는 녹즙 배달을, 낮에는 콜센터를, 저녁에는 배민 커넥터를,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다가 주말에는 쿠팡 물류센터에 나간다. 비자발적 'N잡러'다. 어릴 때부터 아침 7시에 학교에 가 밤11시까지 학원을 도는 빽빽한 스케줄 관리에 익숙하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배우며 커왔다. 안타깝게도 워라밸이니 소확행은 투정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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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재산이 2,000억 달러(약 237조 원)을 돌파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100여 명의 시위대가 워싱턴DC의 제프 베조스 집 앞에 몰려가 아마존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인상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베조스는 1초에 4,000달러를 버는데, 왜 우리는 1시간에 15달러를 받아야 하느냐"고 항의하며 "임금을 시간당 30달러로 올릴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베조스의 집 앞에 단두대를 설치했다. 18세기 프랑스 파리처럼. "코로나 사태로 얻은 부를 환수해야 한다"는 버니 샌더스의 주장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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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해서 '소득 감소'를 증빙하면 월 50만 원씩 최대 3개월(150만 원) 지급하는 지원책을 내놨다. 그런데 지원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다. (중략) 특수고용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지원금 규모 자체가 적은데다 소득 감소를 증명하기도 어려웠다. 서류를 긁어모아 제출하는 것도 1-2일 일당을 날릴 것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복잡하고 오래 걸렸다. 서류를 낸 뒤에도 심사를 하는데 한 달 넘게 걸렸다. 실업급여는 언감생심. '회사'에 소속돼 있지 못한 설움이 그 어느 때보다 컸다. 우리 사회, 내 삶 속에서 회사가 어떤 의미인지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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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논쟁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프리라이더' 논란이다. 기본소득을 주면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중략) 사람들이 과연 30만 원, 50만 원 받으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고? 200만 원쯤 주면 모를까. 150만 원만 줘도 집에 가만 못 있을 것이다. 지금도 돈을 벌기 위해 투잡, 쓰리잡, 포잡을 뛰는 시대다. 휴가를 받아 여행을 가도 1시간 단위로 스케줄을 짜서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돌아보고 인증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어느 정책이든 완벽할 수도 100%를 만족시킬 수도 없다. 1보 전진을 위해서는 반 보 후퇴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항상 1%의 프리라이더, 블랙컨슈머, 좀도둑이 생기는 꼴을 못 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99%를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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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변화와 혁신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저항에도 불구하고 변화와 혁신이 이기고 만다. 그런 점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기계 문명의 진화를 막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미약하더라도 저항이 진화 속도를 늦추며 대안을 찾는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중략) 똑똑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지능도 똑똑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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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비대면이니 인공지능이니 로봇이니 해도 결국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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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대리기사와 라이더와 택배기사들은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사는 5,200만 명의 사람들 중에 음식 배달과 택배 한 번 쓰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비율은 배달이나 택배보다야 덜하겠지만 음주운전을 줄이고 자영업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회적, 산업적 순기능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업종 종사자들은 이 질문에 숨이 턱 막히고 만다. "직업이 뭡니까?"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직업적 숙련도가 쌓이고 실력이 좋아져도 대중은 그저 이들을 '알바'취급하고 말 뿐이다.
래퍼 쌈디가 읊조리는 유명한 광고 카피라이트가 떠오른다.
"왜 알바를 직업이 아니라고 생각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서? 그럼 다들 해보세요. 알바를 RESPECT!"
무엇이든 배달하는 세상. 우리는 배달을 우리 삶에 필수적인 영역이자 전문적인 직업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