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숙박, 직거래를 적극 노리자
두 달 남았다.
두 달 뒤 내 몸은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겠지.
그런데 숙소 예약을 아직 안 했다. 계속 미루다 가는 길거리에서 잠들겠는걸? 더운 나라라 입이 돌아가진 않겠지만, 길거리 개한테 물어 뜯기는 거 아냐..? 아내와 나란히 외국 길거리에 나앉으면 참으로 볼만하겠는걸.
경각심이 들어 구글맵을 켜고 숙박을 알아본다. 발리에 2번 정도 가봤기 때문에 머무르고 싶은 지역은 마음속에 있다. 관광객이 적은 다소 저렴한 지역. 이제 적당한 가격대의 숙소를 찾아내 예약을 확정 지어야 한다.
이리저리 둘러본 끝에 호텔 하나를 찾아냈다. 이름은 '○○○ Guest House'인데, 분류는 1성급 호텔로 되어 있다. 이름은 게스트하우스이지만, 여러 명이 방 하나를 공유하는 도미토리(다인실) 구조는 아니다. 손님별로 방을 한 개씩 준다.
근데 좀 이상하다. 분명히 더블룸 방 하나를 주는 건데 1명이 예약하면 18,000원 정도이고, 2명으로 예약하면 36,000원이다.
보통 호텔은 2인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하지 않나? 두 명이 한 방을 같이 쓰는 걸 디폴트로 하고 운영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면 두 명으로 예약을 하면 방 2개를 주는 건가?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두 명이 여행을 하면 각 방을 쓰는 문화인 건가?
나는 이걸 호텔 측에서 예약 사이트에 잘못 입력한 거라고 생각(하기로)했다. 그래서 그냥 1명으로 예약했다. 어차피 내가 필요한 건 방 하나니까.
조식이 포함된 옵션도 아니니, 방 하나를 두 명이 쓴다고 돈을 더 낼 이유는 없다고 (내 마음대로) 생각했다. 그렇게 일단 40박 41일을 680만 루피아(약 57만 원)에 예약했다. 1박당 14,000원꼴.
호텔 측에 연락을 해야 하나 고민도 잠시 했다. '우리는 사실 두 명인데, 방 하나만 쓸 거라서 한 명으로 예약했어. 그래도 괜찮지?'라고 물어볼까.
내심 불안했기 때문이다. 호텔 현장에서 체크인할 때 2명인 거 들키면 추가로 돈 더네라고 할까 봐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 나는 좀 겁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굳이 연락은 안 하기로 했다.
호텔 입장에서 '1명 가격으로 예약했지만 2명이 머무를 건데 괜찮냐'고 묻는 손님한테, 순순히 '괜찮으니 마음껏 즐겨라'라고 할 이유는 딱히 없지 않는가.
가격 책정하고 돈 받는 것은 호텔 주인 마음대로인데...
찜찜해하던 찰나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예 호텔 측에 가격 흥정을 시도해 볼까? 다른 사람들은 장기 거주할 때 그런 식으로 많이 한다던데..
좋아 나도 한 번 해보자.
찬찬히 보니 예약사이트에는 호텔 측의 전화번호와 이메일이 공개되어 있다. 인도네시아 번호라서 나와 문자를 주고받지는 못할 거 같으니 이메일로 연락을 시도했다.
근데 당황스럽다. 영어로 이런 메일을 써본 것이 거의 처음이었다. 일단 메일 본문에 인사말로 "Hi"라고 썼다. 그런데 "Hi"는 너무 친구들에게 말하는 느낌이 아닌가? 지우고 "Hello"로 바꿔 썼다.
그러고 3분 동안 고민했다. 뭐라고 쓰지? 좀 오래 머무를 테니 할인을 해달라는 건데... 가격은 어느 정도를 제시하지? 고민 끝에 40% 정도 할인된 가격을 제안하기로 했다. 4개월에 1,200만 루피아(약 102만 원). 그리고 이 내용을 챗지피티에 번역을 돌려 메일 본문에 붙여 넣고 전송했다.
하지만 보내놓고도 내심 불안하다.
메일을 확인하긴 하려나? 답장은 하려나? 답장이 오더라도 내가 이메일을 놓치면 또 어떡하지? 이메일 연락이 익숙지도 않고, 여행 일정이 다가오는 내 입장에서 느긋하게 기다리는 게 영 답답하다(그렇다, 나는 성격이 급하다)
그렇게 찜찜해하던 찰나, 스쳐 지나가는 생각.
이메일 말고 아니라 채팅을 해볼까?
지난번 발리 여행에서 투어 예약 시, 현지 여행사와 'Whatsapp' 어플로 연락을 주고받은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어플도 카톡처럼 전화번호를 저장하면 자동으로 친구로 추가되려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텔 측 전화번호를 휴대폰 연락처에 저장했다. "발리 숙소". 그리고 Whatsapp을 켰다.
오, 대박. "발리 숙소"가 내 친구 목록에 들어왔다. 이제는 카톡 대화하듯이 채팅이 가능해진 것이다
채팅창을 열어 대화 내용을 입력했다.
다소 비굴해 보이지만 말을 덧붙였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얌전히 잘 지내겠다(I will use the room cleanly, quietly, and without any issues)",
그리고 "내 가격이 마음에 안 들면 제안하길 부탁한다"
(나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받아줘~)
내가 보낸 메시지 옆에 'v표시'가 2개가 나왔다. 이 표시는 내가 보낸 메시지가 상대방에게 잘 전송되었다는 뜻이다. 적어도 없는 번호나 계정은 아닌 셈이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자 답장이 왔다!
앗, 그런데...
몇 명이 숙박하는지 물어본다.
역시 인원수 대로 돈을 받을 심산인 건가? 방을 하나 쓸건대?
이제는 솔직하게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 체념하고 대답했다.
"두 명이에요.(We are 2 people)"
대신 다시 비굴하게 사족을 붙였다.
"하지만 침대 하나도 충분히 괜찮습니다(but one bed will be perfectly fine)"
방 하나를 둘이서 쓸 테니 그냥 1명 가격만 받아달라는 간절한 의지의 표명이다.
일단 알겠다며, 확인 후 최대한 빠르게(as soon as possible) 연락을 준단다. 가격을 너무 낮게 부른 건 아닌가 싶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다.
그리고 5시간 정도가 지나 연락이 왔다.
가능하다고. 가격도 내가 제안한 대로 하자고.
와 신난다. 이제 나는 잘 곳이 있는 여행자로 한 단계 진화했다.
근데 인간이 참으로 간사하다.(그냥 내가 간사한 건가) 양가감정이 든다. 나의 가격 제안을 너무 흔쾌히 수락해서... 좀 더 할인을 요구할 걸 그랬나? 사실 4개월이나 되는 장기 숙박이니만큼 좀 더 낮은 가격을 제안했어도 됐으려나? (그만해 이 욕심쟁이야)
근데 결제는 어떻게 하지? 물어보니 인도네시아 계좌번호를 알려주면서 계좌 이체하면 된단다.
아, 근데 해외 송금은 너무 낯선 영역인데... 게다가 이 사람이 돈만 받고 도망가면 어떡하지? 괜히 불안하고 의심된다.
(김영하 작가가 쓴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자는 현지인에 신뢰를 보내고, 환대로 보답을 받는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나는 환대받기는 글렀다.)
불안한 마음에 도착 당일에 현장 결제를 해도 되는지 물어본 상황이다(이렇게 답정너 일 거면 결제 방법을 왜 물어봤냐).
결과적으로 숙소 예약은 나름 무난하게 진행된 것 같고, 결제 방식 조율만 남은 상황이다.
이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서도,
해외에 장기로 거주할 거라면(2주 이상), 예약사이트에서 덜컥 예약하지 말고 숙소 측에 직접 문의를 해보시길 바란다.
좀 번거롭긴 하지만 플랫폼 가격보다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예산을 아끼면 좋다. 아낀 만큼 며칠 더 놀 수 있다!)
그리고 왓츠앱을 쓰는 국가라면(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유럽 국가 등) 채팅 흥정을 적극 활용해 보자.
연락처를 저장하면 Whatsapp어플에도 자동 친구추가가 되니, 카톡 하듯이 연락을 남길 수 있다.
(번역은 챗지피티가 너무 잘해주니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