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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기 Jul 10. 2024

기준년개편 소회

 많은 일이 있었다. 기준년 작업을 시작한 김에 이걸 끝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인사이동 시기임에도 잔류를 결심한 2년 차 조사역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했다. 새벽 3시에 퇴근하고 다음날 정시에 출근한다느니, 수개월 걸리는 작업을 하루 만에 끝내야 한다느니 하는 전설들이 아직은 와닿지 않았기에 어리석은 조사역은 기준년개편 완수를 목표로 삼아 3년 차를 맞이했다. 상반기가 지나간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그 모든 문제들이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고 지나갔다는 것. 인고와 고통, 피로로 점철되었더라도 시간은 지나가 이제는 그것들이 확실히 내 자산이 되리라는 것이다. 비로소 3년 차로 진화했다.


 기준년개편은 5년에 한 번씩 있는 큰 프로젝트다. 매년 상반기에는 3월부터 6월까지 연간 확정 작업과 분기 추계를 병행하느라 업무 강도가 상당히 올라가지만, 기준년개편은 업무량이 몇 배나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규모의 작업이다. 보통 연간 확정 작업은 2개년과 1개 분기를 작업하지만 이번 상반기에는 2000년 이후 시계열을 전부 작업하므로 대충 12배의 작업량이 되는 것처럼 보이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 정도까진 아니다. 다만 체감상 3배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조사역은 2년마다 부서이동을 한다. 하지만 난 제 때 이동하지 않은 잔류자였으므로, 자연스럽게 팀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조사역이 되었다. 통계국은 조사역의 역할이 명확하게 존재하는 부서다. 숫자가 만들어지는 파일의 구조와 프로세스는 같은 계에 있더라도 담당 조사역이 가장 잘 알고, 책임자 선에서 모종의 의사결정이 이뤄지더라도 결국 숫자를 구현하는 것은 조사역의 역할이다. 결국 조사역들 중에 가장 오래 근무한 나는 그 전문성을 인정받아(?) 기준년개편에도 총괄 조사역을 맡게 되었다.


 총괄 조사역으로서 가장 먼저 한 것은 과거의 기준년개편들에 대한 공부였다. 이는 기준년개편의 계획을 세우기 위함이었는데, 지난 기준년개편들에는 무슨 계획을 세웠고 어떤 결과가 만들어졌는지를 파악함으로써 이번 기준년개편의 틀을 잡아가는 과정이었다. 과거 기준년개편을 공부하는 한편, 추계 담당자로서 내가 담당하는 부문의 추계방법 개선점에 대해서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각 부문마다 추계 과정 상의 개선점이나 기초자료 보완 등 기준년개편에 할 수 있는 여러 변경계획을 취합하여 이를 기준년개편 계획에 반영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맡은 산업도 입수되는 기초자료의 여건이 달라지면서 추계방법을 일부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준년개편 계획 수립과 동시에 새로운 기준년이 될 2020년 추계를 진행했다. 개편 계획이 완성되기 한참 전부터 기준년개편을 함께 진행하는 다른 팀과 협의하며 기준년 레벨을 확정해 나갔다. 팀 간의 입장차이가 커서 협의가 정말 어려웠다. 특히 나는 '제조업' 담당이지만, 상대 팀은 제조업의 여러 하위부문으로 담당업무가 세분되어 있어서 여러 담당자들과 협의를 진행해야 했다. 대면 설명회도 하고, 비대면으로도 자주 연락하면서 긴밀한 협의를 거쳐 차이를 줄여나갔다. 이 과정에만 수개월이 걸렸다.


 새로운 기준년인 2020년을 확정한 이후에는 2019년 이전과 2021년 이후로 나뉘어 업무가 진행됐다. 나는 2021년 이후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원래 계획대로라면 24년 4월까지 2022년 숫자까지 확정되어야 했으나 기준년 협의가 쉽게 끝나지 않은 탓에 4월 초가 되어서야 2020년 숫자가 정해졌다. 공표일이 정해져 있으면서 일정이 미뤄진다는 건 갈수록 업무 강도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업무시간을 평탄화하기 위해 새해가 되자마자 야근을 시작했으나, 그럼에도 공표일이 다가올수록 퇴근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2020년 숫자에 대한 합의가 미뤄지는 동안, 나는 파일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던 담당 산업 추계파일을 쌓아 올리고, 총괄 업무에 필요한 파일들도 틈틈이 만들었다. 담당 산업 추계파일을 만드는 데에만 꼬박 두 달이 걸렸고, 총괄 파일들도 만만치 않아서 공표 직전까지도 나는 엑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난 2년여의 기간 동안 훈련한 엑셀 실력을 이용하여 향후의 담당자들이 조금이나마 편하게 파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자동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나름 열심히 만들었으니 부디 이 파일들이 오래오래 쓰일 수 있으면 좋겠다.


 기준년 숫자 확정 이후, 2019년 이전의 과거 계열은 다른 팀원들이 도맡았고, 나는 2021년 이후 계열의 총괄을 맡았다. 기준점을 잡아두면 나머지 비교년들은 전부 증감률을 이용하여 계산되므로, 2019년 이전과 2021년 이후로 담당을 분리하는 것이 가능했다. 2021년과 2022년은 작년까지 상반기에 해왔던 연간 확정 작업이어서 그나마 익숙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물론 기준년개편과 얽혀있는 만큼 추계 파일 정리를 병행해야 했다. 일정이 한껏 미뤄져서 마음이 좀 급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누더기가 되어버린 파일을 내 손으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게 좋았고, 작업을 마쳤을 때는 아주 뿌듯했다.


 큰 틀이 맞춰진 이후에는 팀 간 정합성을 맞추는 정교한 작업이 길게 이어진다. 기준년개편과 함께 부문분류나 세부적인 추계 프로세스에 많은 변화가 생겼으나, 삼면등가의 법칙이라는 큰 원칙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부문 간 정합성을 맞추는 과정이 필요했다. 미세한 작업이고, 모든 숫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 보니 상당한 끈기와 인내가 요구되는 시간이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추계에 사용되는 파일이 복잡하고 규모가 크다 보니 계속해서 수정할 부분이 발견되었는데, 정합성을 맞추다가 오류 수정으로 인해 조금 큰 변동이 생기면 정합성 작업을 처음부터 해야 하는 식이었다. 크게 티 나지 않지만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막바지에는 많은 일들이 정신없이 휘리릭 지나갔다. 내가 하염없이 정합성을 맞추고 있을 때 한쪽에서는 보고서와 보도자료를 쓰는 일이 진행되었고, 또 다른 쪽에서는 만들어진 데이터를 공표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었다. 공표와 관련한 일은 숫자가 딱 정해진 후에 진행되는 게 좋은데, 일정이 빠듯해서 숫자가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는 중에 후속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이 괜히 나를 더 급하게 만들었으나, 나는 이미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므로 미안할 마음을 갖는 것 외에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공표일까지도 정신없었다. 모든 시계열이 바뀌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숱한 문의와 자료요청에 응대하느라 퇴근도 살짝 늦게 했다. 물론 공표 당일에는 해가 떠 있을 때 회사를 나올 수 있었으므로 한창 바쁘던 추계기간에 비하면 감지덕지였다. 아마 외부로부터의 문의나 자료요청은 6월 한 달 동안 계속되었을 텐데, 나는 공표 직후에 밀린 휴가를 떠나서 회사로부터 거리 두기를 한 덕분에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올해 상반기만큼 바쁜 시기를 또 겪을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 팀에 돌아와서 또 기준년개편을 하는 게 아니라면 수개월에 걸쳐 폭발적인 업무량을 감당할 일은 다시 없을 것 같다. 이렇게까지 일을 해도 살아진다는 걸 저 연차에 알게 된 덕분에, 다음에 어느 부서에 가더라도 체력적으로는 버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돌아보면 정신없는 틈에도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팀원들과 실없는 소리를 하며 웃거나, 가끔 숫자가 정말 깔끔하게 나왔을 때 느꼈던 희열이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동안 빼앗겨있었던 평일 저녁을 되찾으면서,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감격스럽다. 개편 전에 나를 겁줬던 전설처럼 새벽 3시에 퇴근하고 아침에 정시출근하는 일도 없었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쉴 수 있었다(몇몇 팀원들은 쉬는 날에도 출근했던 것 같긴 하다.). 아프지 않고 나름 무사히 기준년개편을 완주할 수 있어서 뿌듯하고, 스스로도 굉장히 자랑스럽다. 가히 내 인생 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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