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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Mar 27. 2022

노두길이 열어 준 생각의 길

코로나로 집콕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오히려 여름휴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래서 신안의 대기점도를 여행의 베이스캠프로 결정했는데 이유인즉 주변의 섬들을 연결해서 여행할 수 있다는 ‘노두길’의 정체가 궁금했기 때문. 배에서 내려 길을 따라오면 바닷길이 나오니 그 길로 들어오라는 민박집 사장님 말씀을 충실히 따르며 가니까 정말 모세의 기적처럼 우리를 마중 나온 것은 바로 그 노두길. 물이 빠질 때 육지나 인근 섬으로 오갈 수 있는 통로였던 노두길 덕분에 우리는 오랜만에 햇볕과 바람을 친구 삼아 걷고 또 걸었다. 이때 만난 것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바다, 갯벌에서 무슨 볼일이 많은 지 부지런히 기어 다니는 게와 짱뚱어 그리고 온갖 야생화, 그 위를 떼 지어 다니는 잠자리와 가끔 나타나는 개와 고양이들뿐이었다. 이 노두길을 이용해 다섯 개의 섬을 다니다 보니 똑같은 상황에서도 생각의 차이가 삶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노두길에 물이 차면 갇힌다고 생각하지만 섬사람들은 노두길에 물이 빠지면 열린다고 생각한다. 결국 같은 말이지만 약간의 생각 차이가 부정적 혹은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육교나 지하차도로 언제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는 도시인들에게 노두길은 불편한 존재이지만 섬사람들에게는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편리한 존재이다. 그래서 도시인들은 편리를 위해 자연을 개발하거나 파괴도 서슴지 않지만 섬사람들에게 자연은 함께 살아가는 친구이자 고마운 존재이기에 개발이나 파괴가 아니라 더불어 살며 순응하게 되는 것이리라. 새벽과 오후에 두 번 생기는 노두길만으로도 일상생활이 충분한 곳, 편의점이나 식당이 없지만 끼니때마다 밭에 나가 상추며 오이며 호박을 따다가 만든 음식이기에 그 맛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건강한 자연 식재료에 아주머니 손맛까지 더한 민박집 백반을 먹다 보면 두 공기는 기본. 갯벌도 도시인에게는 신발을 더럽히는 진흙땅에 불과하지만 섬사람들에게는 짱뚱어탕과 연포탕 그리고 낙지볶음을 가져다주는 천연 식재료 공장인 고마운 존재이리라. 처음 먹어 본 짱뚱어탕과 많이 먹었던 낙지볶음이 이리도 새롭고 맛깔스럽게 느껴지는지. 그 이유를 물으니 “뻘이 주는 거니께 뭐시든 다 맛있지 않것소.”라고 말하는 아주머니의 말속에 자연을 대하는 겸손과 감사의 마음이 배어있다, 우리에게 내준 음식 맛처럼.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도 처음 노두길을 봤을 때는 신기한 충격에 이어 물이 차서 숙소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자연이 알려준 시계에 일정을 맞추고 걷다 보니 걱정은커녕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자연이 알려준 시계의 태엽을 멋대로 감고 풀다가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제철 과일과 못생긴 노지 채소 그리고 노을빛 하늘과 시원한 바람,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을. 누군가는 일 년 내내 맘껏 과일을 먹고 하우스에서 재배한 깔끔한 채소, 자연풍 에어컨이 있는데 잃은 게 뭐냐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잃은 것을 모를 때가 편할 수도 있으리. 4박 5일 동안 자연 선탠으로 검게 탄 모습과 밭에서 딴 노란 수박의 신선한 맛, 살아 꿈틀거리는 낙지의 에너지에서 인공이 아닌 자연이 주는 삶을 받아들일 때 살아가는 행복은 배가 된다는 깨달음을 열어 준 노두길. 그 길의 끝은 후끈한 도시로의 귀환이지만 얼려온 깨달음을 녹여 먹으며 지내는 올여름의 행복지수는 노두길 만나기 전후로 나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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