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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Mar 27. 2022

사진 여행을 떠나보자

여름 휴가철인데도 코로나로 먼 곳으로의 여행이 어려워지고 거기에 긴 장마와 집중호우로 삶의 터전마저 잠긴 이재민의 모습을 보며 가까운 곳이라도 콧노래 부르며 떠나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그렇다고 우울 모드에만 빠지다 보면 생활이 무기력해지기 십상. 그래서 후드득 장대비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지난 기억의 서랍들을 하나씩 열어보며 언택트(Untact)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싶다. 전 국민 일 인, 일 스마트폰 시대가 주는 혜택을 백분 누릴 수 있는 기회. 사진을 보며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해도 사진 속 추억과 만날 수 있기에 애틋하면서도 그리운 이들, 늘 곁에 있지만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과거를 통해 현재의 행복을 비춰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거울 하나를 얻는 것이리라.

명예퇴직 후 템플스테이에서 마치 고승처럼 탑돌이 하던 남편을 보며 자신의 소원을 들어 줬다며 흐뭇하게 웃는 아내, 수목장 소나무에 매달 사진을 고르며 아빠의 인생을 일기처럼 보다가 “아빠, 브라보!”를 외쳐보는 할머니가 된 맏딸, 나라의 부름을 받아 당당하게 떠난 박 일병의 하루를 사진으로 전송받으며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그때 그 시절을 재방하는 아버지, 90년생이 온다는 시트콤을 찍었던 동아리 MT에서 친구들의 호기로운 모습을 떠올리며 다시 용기를 얻은 취준생 김 군, 아파봤으니 중년이라는 모토로 뭉쳐 꽃보다 할매를 찍으며 추억 사진을 보따리로 들고 온 5학년 1반 줌마델라들, 결혼을 앞두고 마냥 즐거운 딸의 성장 사진첩을 보며 기쁜 마음 보다 서운함이 더 큰 딸바보 아빠,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요염한 자태의 초코의 모습을 보며 지금도 눈물을 쏟는 반려견 초코의 엄마, 농촌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줄만 알았는데 구슬땀을 흘리며 하우스에서 토마토 따는 농촌 봉사활동 사진을 보며 스마트 농업으로 진로를 정한 것이 스스로 대견한 이 군, 꿈나무 키우는 것이 천직인 듯 담임을 했던 아이들의 졸업사진을 보며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권 선생님, 엄마표 음식이 그리울 때면 엄마가 만든 맛깔스러운 요리 사진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백 주부까지.

누구든지 어떤 곳이든지 사진 속 이야기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 이야기가 기쁜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혹여 힘든 기억이었더라도 이제는 담담하게 혹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소확행이리라. 그래서 소확행의 삶은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지나친 욕심을 내지 않는 소욕(少欲)과 이미 얻은 것에 대해 불평하거나 후회하지 않는 지족(知足)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리라.

내 기억 서랍 ‘여름’의 첫 번째 칸에는 둥지냉면이 덩그렇게 놓여 있다. 정체인즉 몇 년 전 남편과 떠났던 미국 횡단 여행 중 40도가 넘는 데스벨리 사막 캐빈에서 먹었던 냉면. 그것은 단순한 물냉면이 아닌 내게 미각을 통해 소욕과 지족을 알게 해 준 스승 냉면이었다. 무모했지만 용감하게 다녀온 여행 사진을 들춰볼 때마다 그것이 전하는 메시지는 위로와 격려였다. 가끔 지칠 때면 소확행 거울을 보며 말한다. “거울아, 거울아, 오늘은 어디로 사진 여행을 떠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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