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시작된 미국의 인종차별 시위를 보면서 어릴 때 크레파스 색깔 중 ‘살색’이 떠올랐다. 그 당시엔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오히려 어른이 된 뒤 그것이 ‘살구색’으로 바뀐 게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사우스다코타 주 안에서 그것도 27Km라는 가까운 거리에 흑과 백이라는 대척점으로 선 두 곳의 조각상이 연상되었다. 한 곳은 인디언을 내쫓고 위대한 미국을 건설한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새긴 마운틴 러시모어(Mount Rushmore), 또 한 곳은 백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투쟁하다 죽은 인디언 추장인 크레이지 호스 기념물(Crazy Horse Memorial). 그런데 이 두 조각상 모두 인디언들이 신성시 여기던 블랙힐스에 있다는 것 또한 가슴 아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러시모어를 보았을 때 느낌은 위압감과 장엄함이었다. 관광객에게는 위압감으로, 미국인들에게는 장엄함으로 다가와서인지 그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미국인들의 어깨에는 자부심이 견장처럼 올라앉아 있었다. 이곳을 떠나서 만난 크레이지 호스는 멀리서 보아야만 전체 모습이 보일 정도로 규모 면에서는 러시모어를 이긴 것 같았다.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의 조형물 높이가 171m이고 말의 얼굴만 해도 22층 빌딩 높이와 같을 정도로 거대하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크레이지 호스는 얼굴만 완성되었기에 조각상 전체가 완성되려면 앞으로 100년 정도가 더 걸린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미국 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기부와 입장료만으로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인디언들이 비록 자신의 영토는 잃었지만 그 정신을 형상화하고자 하는 거대한 꿈을 향한 도전은 현재 진행형임을 알았다. 두 조각상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이 ‘차이’와 ‘차별’은 한 글자 차이지만 그 간극을 극복하려면 한 세기가 더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크레이지 호스의 성난 모습이 말해주듯이. 만약 얼굴색이나 외모, 혹은 지식이나 부의 차이가 차별로 이어진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무간지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세상 만물의 본성은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기에 모두 평등하다는 이치를 깨닫는 사람이 늘어나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차별을 걷어차는 순간 이 세상은 극락이나 천국까지는 아니어도 무간지옥에서만큼은 벗어날 수 있으리라.
‘살색’을 ‘살구색’으로 바꿔 불렀다고 평등한 세상이 찾아오는 건 아니다. 왜 바꾸어 불러야 하는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작은 울림들이 하나, 둘씩 모여 큰 울림으로 퍼질 때, 우리 주변에 숨어 있던 차별의 지뢰가 사라지고 평등의 숲이 펼쳐질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흑형’ ‘지잡대’ ‘명품 몸매’ ‘절름발이 정책’ ‘결정 장애’ 등의 표현을 무심코 사용했던 나 자신에게 ‘내 안에 숨어있는 차별’을 소환했다. 그리고 8분 46초 동안 꼼꼼하게 따져 물었다,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침묵시위에 동조하는 마음과 ‘내 안의 차별’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이번 기회에 차이를 인정하고 차별에서 벗어나는 ‘차별 독립기념일’을 제정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