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와 (3일 차 숙박) - 뱀부 –도반 – 히말라야 (점심) – 데우랄리 (4일 차 숙박)
역시 새벽에 잠을 깨게 된다. 4시.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일찍 잠들었으니 잠이 부족한 것은 아니겠으나 어두운 시간에 일어나 할 일이 없다.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나마 같이 깨어 있는 것을 느끼니 고맙다.
보조 배터리에 문제가 생겼는지 충전이 잘 되지를 않는다. 1시간 36분 있다가 충전 완료 된다고 나오는데 어제 보다 1%나 충전이 된 걸까? 전기도 나간 상태인데~.
휴대폰도 사용하기 어려우니 참 할 일이 없다. 5시 정도까지 뒹굴거리다 잠시 일어나 롯지 위 뷰 포인트로 올라가 마차푸차레 흰머리를 확인한다. 온몸의 긴장된 근육들을 풀어주기 위해 스트레칭을 길게 하고 있자니 부엌에서 인기척이 난다. 나마스테 인사를 하고 밀크티를 한잔 주문한다. 밀크티를 건네주는 주인아주머니의 순박한 미소가 아침을 다 환하게 한다.
아침을 먹고 출발해서 눈앞에 보이는 어퍼 시누와 까지 걷는데 초반부터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니 숨이 차 온다. 오르막을 올라 잠시 쉬는데 어퍼 시누와에서 묵고 출발을 준비하던 한국 단체팀으로 산행 중인 아저씨가 옆으로 다가와 자신도 혼자서 오는 게 로망이라며 어려운 것은 없는지, 어떻게 준비를 하고 오는지 등을 진지하게 묻는다. 나이가 들면서 언어적인 장벽을 느끼는 것이 가장 어렵다. 나도 영어가 서툴다는 것과 그래도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는 것과 네히트(네팔히말라야트레킹 카페)라는 카페에 들어가 보면 많은 도움과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꼭 시도해 보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다시 출발을 한다.
뱀부 가는 길은 뱀부라는 이름처럼 대나무가 많아 대나무 숲길을 많이 지나가게 되고, 다시 랄리구라스 꽃들이 활짝 피어 있는 숲 길도 걷게 되어 기분 좋게 걸을 수가 있었다. 이어지는 도반은 두 물이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가이드가 알려주는데, 여러 번 계곡 물을 건너게 된다. 우리나라 산의 계곡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을 지나면서 입수의 욕망이 생겨났다. 혹시 실례되는 행동은 아닐까 하여 가이드 시바에게 물에 들어가도 되는 지를 물어보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햇볕 잘 들고 평평하게 안전한 계곡을 만나자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신발을 벗고 히말라야 계곡물에 발을 담가본다. 가능하다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다. 물에 들어가자마자 발끝으로 차가운 기가 전기처럼 타고 오른다. 시원하다 차갑다 이런 정도보다는 조금 더 한, 얼음물에서 오는 한기가 쫙 타고 온다. 견딘다고 견뎌 보다가 2~3분도 못 돼 얼른 밖으로 나오니, 나오고 나서도 발이 저릿저릿한데, 마음은 날아갈 듯이 뿌듯하게 기분이 좋다.
도반을 지나자 계곡 너머 오른쪽 산에서 떨어지는 엄청 멋진 폭포를 만나게 된다. 커다란 물줄기가 하나로 쏟아져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갈래갈래 나뉜 물줄기들이 절벽을 타고 부딪히며 절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멍하니 감탄하며 보다가, 폭포 이름을 물으니 이름이 없는 그냥 폭포라고 하는데~~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108 Chahara’라는 이름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통용되지는 않는가 보다.)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웅장한 산들이 이름도 없는 그냥 흔한 동네 뒷산이고, 저런 폭포가 이름도 없는 그냥 폭포일 뿐인 히말라야의 웅대한 규모에 오늘도 의문의 일 패를 당하며, 그냥 거대한 자연에 몸을 맡기고 작은 발걸음으로 한 발씩 걸어갈 뿐이다.
날씨 걱정에 아침 일찍 출발하니 점심을 먹는 게 항상 애매해진다. 원래 도반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너무 일러 히말라야 롯지까지 왔는데, 아직도 시간이 이르다. 그래도 여기에서 점심을 먹어야 맥주라도 한 잔 할 수 있을 것 같아 (데우랄리부터는 고소의 위험이 있어 음주는 하지 말라는 경험자들의 강력한 경고가 있었기에) 스파게티에 맥주 한잔을 시켜 먹는다.
시원함에 이제 며칠은 못 접하게 될 것이라는 아쉬움이 섞여 맥주는 더할 수 없는 감칠맛을 보여준다.
인도 단체팀의 활기찬 여성들이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촬영하며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햇살 가득한 롯지의 마당이 야외 스튜디오가 된 듯이 환하고 즐거워졌다. 마지막을 발리우드 영화처럼 노래를 부르며 마무리하니 모두의 박수를 받는다.
흥겨움은 묘한 전파력이 있어 다음 길을 걷는 모두의 발걸음이 씩씩해진 듯하다.
강물과 가까이 걷게 되니 계곡을 따라 찬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하면서 온도가 차가워지는 게 느껴진다.
데우랄리에 오니 이제 높게 왔다는 것이 조금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살짝 차가워진 공기도 그렇고, 주변으로 가까이 느껴지는 설산 풍경이 나타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시작이 좋은 새해 첫날(네팔달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