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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라희 May 10. 2024

그 시절의 기억, 마음에 품다

<소라의성 시민 북카페>

- 건축가 김중업, 제주 서귀포, 1969년

     


제주 서귀포시 정방폭포 일대를 걷다보면 올레길 6코스 자락에 소라 고둥을 닮아 시선을 사로잡는 건축물이 있다. 아찔한 절벽 위에 우뚝 서서 제주 바다를 고요하게 내려다본다. 실제 규모는 작지만 그 위세는 당당하다. 한국 현대 건축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의 작품, 옛 소라의 성이다. 도면이나 서류 등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추정하지만, 60년대 후반에 그와 같은 건축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는 이는 대한민국 1세대 건축가 김중업이 유일하기에 건축계 전반에서는 사실상 그의 작품으로 여긴다.


소라의 성을 돌아본다. 하얗고 둥근 기둥부는 오돌돌한 돌기가 있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연결되었다. 자세히 보면 자갈을 총총히 박아 돌기를 표현했다. 몸체는 제주의 검은 돌 현무암을 편편히 갈아 조각조각 붙였다. 이 검은 돌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듯 미세하게 반짝인다. 어쩌면 절벽 틈에서 모진 풍파를 겪어내고 끝내 살아남은 생물처럼 느껴진다. 제주 바다를 향해 빼꼼히 내밀어보듯 돌출된 창문부가 귀엽다. 이곳은 예전에 고급 식당이었다. 현재 1층은 올레길을 걷는 이들을 위한 관광안내소로, 2층은 제주 바다를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북카페로 이용되고 있다.


건축가 김중업을 잘 알고 싶다면 안양에 위치한 ‘김중업건축박물관’에 가보길 추천한다. 건축 모형과 사진으로 남은 그의 작품을 보면 놀라운 창의력과 선구적인 건축 디자인에 감탄한다. 그는 거장 르 코르뷔지에 사무실에서 건축가로 일한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대표작인 인도 찬디가르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폐허나 다름없는 찬디가르에 하나의 도시를 건설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얻고 스승이자 사수인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인정도 받았다.


그렇게 화려한 경력을 쌓고 고국인 한국의 척박한 땅에 새롭고 창의적인 건축 양식을 도입하고픈 의욕이 넘쳤던 그였다. 그러나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적인 건축가였다. 1960년대부터 70년대는 독재정권이 위력을 떨치던 때였고 건축 또한 그들의 치적을 쌓는 도구로써 봉사하고 희생하는 대상이었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건축을 해야 한다는 쓴소리를 한 건축가 김중업은 그들에게 눈엣가시였다.


김중업의 건축 작품 중 제주에 남아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제주대학교 본관 건물이다. 대형 크루즈의 외형을 건축 디자인에 도입한 수작이다. 대학생들에게 제주 바다로 넘어 세계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건축물에 담았다. 둥근 계단부가 인상적인 건축물은 이제 모델로만 남아 있다. 건축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채 노후된 건물이라고 섣불리 철거해버린 판단력이 아쉽다.


서귀포시청이 매입하지 않았다면 이곳 소라의 성 또한 철거될 운명이었다. 뒤늦게서야 건축물의 사회적 가치를 일아본 이들이 이곳만은 복원을 해보자고 나선 덕에 겨우 살아남았다. 이곳은 근대건축물로 지정되어 다시금 생기를 얻고 있다.


서귀포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북카페 창가석에 앉아 소라의 성이 많은 이에게 사랑받았던 그 시절을 상상한다. 이곳은 당대 혁신적인 건축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을 것이고, 사용된 건축 자재도 제법 값나가는 것들로 채워져 질투어린 시선도 받았을 터다. 소라의 성의 전성기는 그렇게 화려했을 테다. 


건축가 김중업도 인생의 가장 화려한 시절에 이곳과 함께했다. 인간의 굴곡 어린 인생사와 닮은 건축물은 존폐 위기를 넘기고 제 나름의 서사를 써나가고 있다. 건축물도 인간처럼 자신만의 시간과 사연을 머금는다.


          




제주 서귀포시 칠십리로 214번길 17-17

운영 시간 : 화~일 09:00~18:00, 매주 월요일 휴무, 점심시간 12:00~13:00

전화번호 : 064-732-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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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미지는 아래 링크에 올려두었습니다)






서귀중앙여자중학교

- 건축가 김중업, 제주 서귀포, 1964     


제주에 건축가 김중업의 흔적이 다행히 하나 더 남아있다. 지금은 서귀여자중학교 건물로 쓰이는 옛 제주대학교 수산학부 본관이다. 당시 제주대학교 본관(1967)과 서귀포에 이농학부 본관(1964)도 설계했지만 모두 사라지고 이곳만 겨우 남았다.


한 바퀴 돌아보면 김중업 건축의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돌출된 수직 루버(louver, 블라인드 종류)가 눈에 띤다. 층마다 세워진 차양이 햇빛을 만나 그림자를 들리우면 건물 외벽에 또 다른 인상을 만들어낸다. 이는 태양의 입사각을 철저히 계산해 남향의 햇빛을 받아들이면서도 서향의 빛은 막아내는 기능을 한다. 또한 수평적으로 연속되는 창문에 기둥과는 별개인 수직적인 선을 더해 디자인적으로 풀어낸 면도 엿보인다. 내부 계단 뒤편에 자리한 V자형 구조의 기둥도 구조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김중업 건축의 표현이다.


용도 변경에 따라 증축과 개축이 이루어지면서 원형이 변형된 가운데, 안간힘을 다해 건축가 김중업의 흔적을 찾으려는 노력이 안타깝기도 하다. 그건 어쩌면 김중업의 건축과 그가 살아낸 시간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식일 수 있겠다.     



SEOGWI JUNGANG GIRLS MIDDLE SCHOOL

서귀중앙여자중학교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앙로 120

대표전화: 064-73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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