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종말? 빛좋은 개살구

사회적 양극화와 노동의 종말, 그리고 행복의 기준

by 시종여일
노동의 종말을 고할 수 있을까?

작년 한 해 동안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의 수는 1만 4439명. 하루 평균 4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어두운 통계가 발표되었다. 특히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를 뜻하는자살률은 28.3명(잠정치)으로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주하는 미디어 속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유튜브, SNS, 각종 매체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의 화려한 일상이 끊임없이 소비된다. 슈퍼카, 럭셔리 주택, 해외여행, 수십억 원의 수익을 올리는 투자 비법—이 모든 것이 하나의 콘텐츠가 되어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문제는, 이를 시청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작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계층이라는 점이다.
상대적 박탈감은 극단적으로 커지고 있다. 돈 많은 사람들의 삶을 동경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 사회에서 자본과 정보력이 있는 기득권층은 노동의 종말을 선언하며 더 이상 ‘일’이라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대신 불로소득을 창출한다. 주식, 부동산, NFT, 유튜브 광고 수익, 각종 플랫폼에서 쌓아둔 지적 재산권 등, 그들은 자신의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돈을 번다. 반면, 다수의 빈곤한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갈아 넣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불로소득의 시대와 노동자의 착취


오늘날의 경제 구조는 과거의 ‘노동 대가 지불’이라는 개념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는 줄곧 ‘노동을 제공하면 임금을 지급한다’는 방식으로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 노동 없이도 돈을 버는 방법이 기득권층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주식 배당금, 부동산 임대 수익, 저작권료 등으로 돈이 자동으로 들어오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특히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은 한 번 만든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일부 창작자들은 한 번의 노력으로 평생 수익을 얻는다.
그러나 이런 구조 속에서, 다수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하루하루를 생계를 위해 고되게 살아간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 노력은 기본값이 되었고, 그 노력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든 시대가 되었다. 최저임금 노동자는 하루 8시간을 일해도 월세 내기도 벅차고, 사회적 보호망 없이 살아가며, 유튜브 속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다.


기득권의 생존 전략: 불평등을 학습하는 사회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사회가 누구도 자본의 불평등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득권층은 노동의 종말을 선언하면서도, ‘노력하면 된다’는 오래된 신화를 계속 주입한다. 교육과 미디어는 이를 강화하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구조를 받아들인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듣지만, 정작 성공의 문턱은 기득권층이 장악한 자본과 정보력의 문제로 변질된 지 오래다.
문제는 단순한 경제적 양극화가 아니다. 이는 인간의 가치관과 존재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은 점점 더 돈을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하게 되고, 돈이 많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러나 정작 돈 많은 사람들도 만족을 모른다. 자본은 끝없는 탐욕을 부르고, 한 번 시작된 비교 경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려 하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우울해진다.


SNS와 미디어가 부추기는 허상


이러한 문제를 더욱 부추기는 것이 바로 SNS와 미디어다. SNS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을 기록한다. 비싼 음식을 먹고, 해외여행을 떠나고, 값비싼 자동차를 타는 모습이 연출된다. 하지만 그 화려한 삶 뒤에는 빚을 내서라도 남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는 욕망이 숨겨져 있다. SNS 속 화려한 삶을 보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만 이렇게 초라한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튜브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이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는 콘텐츠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 방법은 이미 자본과 정보력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유리한 구조다. 일반적인 노동자는 따라 하기 힘들거나, 이미 기득권층에 의해 장악된 시장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고문을 당하며 노력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큰 좌절을 맛보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행복의 기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결국 중요한 것은 ‘행복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더 많은 소비와 더 높은 경제적 성공을 부추기지만, 우리는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 돈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행복의 기준을 명확히 세우는 것이야말로,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첫 번째 방법이다.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단순한 소비의 즐거움이 아니라, 인간관계, 삶의 의미, 정신적 만족감 등 본질적인 가치를 찾아야 한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나만의 행복 기준을 확립하는 것이, 이 불평등한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이다.
자본은 우리를 지배하려 하지만, 우리의 행복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유튜브 속 부자들의 삶을 보며 박탈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우리의 행복은, 우리가 결정한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외부에서 주어진 행복의 기준을 따라가지 않는 것. 돈, 명성, 권력이 아니라, 나만의 철학과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돈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행복을 돈으로 측정하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한다. 더 많은 소비, 더 많은 부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나에게 진정한 만족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능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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