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소모하는 게임
방학이 되어 미뤄두었던 인기 드라마를 정주행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정주행하게된 오징어게임은 한국의 놀이들, 가령 숨바꼭질, 비석치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을 보려 가볍게 즐기려 했던 애초의 의도를 무색하게 만들만큼 직관적인 게임의 단순성에 심오한 철학이 깊게 배어있는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민주주의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계속하게 한다. 매번 게임이 끝나고 나면 다음 개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가 아닌 다수의 합의를 통한 공존의 방식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방향성을 잃을 때, 다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횡포는 곧 폭력으로 이어진다. 『오징어 게임』은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그림자, 그리고 자본주의의 천박한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극 중 참가자들은 대부분 자본주의 사회에서 낙오된 이들, 즉 ‘패배자’로 분류되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가장, 조국에서 밀려난 노동자, 사기꾼, 도망자, 탈북자까지… 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짊어진 채, 마지막 기회를 좇아 죽음의 게임에 뛰어든다. 흥미로운 것은 이 게임 안에서도 자본주의의 속성이 그대로 복제된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외부 사회보다 더 잔인하고 더 노골적으로. 절박한 이들은 단합이나 연대를 통해 살아남기보다는, ‘1등만이 살아남는다’는 전제를 내면화한 채, 서로를 경쟁자이자 제거 대상으로 인식한다.
이처럼 『오징어 게임』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성을 갉아먹는지를 보여주는 알레고리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구조적 피해자에서 자발적 가해자로 전환되는 과정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현실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돈을 위한 게임’이라는 설정은 자본주의가 인간의 생존과 윤리, 심지어 생명까지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전락시킨다는 사실을 비극적으로 상기시킨다.
이 가운데 주인공 성기훈의 행보는 더욱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그는 처음에는 자기 이익을 위해 게임에 참여한 평범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게임이 진행될수록 그는 점차 인간성과 연대를 되살리고, 돈이 아닌 사람의 가치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그의 모습은 능력주의의 정점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성기훈은 그 ‘승리’를 결코 승리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은 능력으로 쟁취한 결과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 위에 놓인 피 묻은 트로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자본주의와 능력주의 사이의 기만적인 결탁이다. 우리는 흔히 ‘능력 있는 자가 성공한다’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성기훈이 얻은 막대한 상금은 그의 능력을 증명하는 증표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가 어떻게 인간으로서의 윤리를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짐이다. 오직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주어진 보상은, 게임을 통해 인간이 인간을 소비하는 시스템의 잔혹함을 드러낸다.
결국 성기훈은 그 돈을 손에 쥐고도 결코 소비하지 못한다. 그에게 돈은 해방이 아닌 족쇄이며, 승리는 구원이 아닌 비극의 시작일 뿐이다. 그는 게임 밖 현실에서도 여전히 자본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득권을 향한 저항을 결심한다. 이 순간, 그는 단순한 생존자를 넘어, 자본주의의 구조적 폭력에 맞서는 ‘주체적 인간’으로 거듭난다.
『오징어 게임』은 단지 충격적인 서바이벌 드라마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과 권력, 인간의 윤리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다. 그리고 성기훈의 서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이 사회의 어떤 게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 끝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