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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창작모임 쫌 May 10. 2023

5월, 탄성에 탄성하다

아파트에서 즐기는 봄 ㅣby 천둥

내복러(내복을 꼬박꼬박 챙겨 입는 이들)들은 흔히 10월 3일 개천절에 내복을 꺼내 입고 5월 5일 어린이날에 내복을 벗는다고 한다. 5월 4일까지 춥다가도 5월 5일이 되면 거짓말처럼 반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더워지는데 올해는 어린이날 더 추웠고 심지어 연휴 내내 비가 왔다. 평소답지 않게 4월 말에 내복을 벗었던 나는 부리나케 다시 내복을 꺼내 입어야만 했다.

비가 온 덕분에 남도지방의 가뭄음 해소되었다 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른 개화를 한 이팝꽃은 노랗게 스러져버렸다. 518 때, 전남도청에서 하얀 이팝꽃을 내다봤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 5월 초에 떨어져 버린 이팝꽃을 보며 마음이 쓰라렸다.  



그래도 계절은 봄. 스프링.

중학교 때 봄이 영어로 스프링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과외금지세대를 살아서 미리 공부해 가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중학교 입학하고 나서야 처음 알파벳을 배우고 one, two, three와 계절을 배웠다. 봄 spring이 움츠러들었던 스프링이 튀어 오르는 형상에 빗댄 표현이라는 말에 입춘에 비해 얼마나 운치 있나, 감동했었다.

과연 지금 생각해도 정말로 그러하지 않은가. 3월부터 시작된 봄은 매일매일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고, 두 달이 꼬박 지나 5월이 된 지금도 여전히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탄성을 보여주고, 또 탄성을 자아낸다.     

우리 아파트에는 내가 겨울에 특히나 좋아하는 가시나무가 있다. 아마도 탱자나무일 것인데, 나는 꿋꿋하게도 가시나무라고 칭한다. 어쨌든 가시나무에도 봄이 오면서 잎이 오르고 열매가 맺혔다. 가시는 여전히 뾰족하지만, 스프링이라는 말이 아니고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폭발, 존재론적 변이를 떠오르게 한다.  



그 탄성의 힘은 걸음걸음마다 꽃들을 터져 오르게 했다. 색깔도 가지가지, 그 이름과 크기와 모양도 가지가지인 꽃들이 스프링처럼 튀어올라 여기저기서 흔들리고 있다. 가끔 저것은 생화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말도 안 되는 오묘한 색을 가진 꽃들도 있는데, 그게 바로 수레국화다. 마치 한지로 접어 만든 것처럼 우리가 흔히 아는 꽃의 빛깔과 모양이 아니다. 사실 수레국화는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피는 꽃이라 작년 가을에도 유심히 보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스프링, 봄이지 않은가. 더구나 기후변화의 시대. 그러니 꽃들은 예전처럼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한 번에, 과감하게도 그 응축된 에너지를 폭발시켜 버린다.  



온몸으로 에너지를 느끼며 아파트를 돌다 보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꽃과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꽃들이 나란히 같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아파트 화단만의 특별함이다.

주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화단에서는 보기 힘든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다육이종들이 많다. 아마도 작은 화분에 선물 받은 것들을 화단에 심어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꽃인지 아닌지 분간하기도 힘든 독특한 꽃들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반대로 관리사무소에서 심었을 팬지를 보면 언제나 내 곁을 지키고 있을 것만 같은 편안함이 있다.

물론 팬지보다 흔한 꽃도 있다. 바로 들꽃. 특히 냉이꽃을 볼 때마다 어떤 쾌감이 있는데, 이른 봄에 사람들 손을 용케도 피했구나 하는 기특함과 안도감 같은 거다. 게다가 얼마 전 화단 제초작업에도 살아남지 않았는가.  

물론 이 모든 것은 그저 보는 나의 느낌일 뿐이다. 냉이꽃이나 팬지는 그런 나의 마음에 아무 관심도 없다. 그 무심함이 나로 하여금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게 한다.   



계절별로 언제나 꽃을 볼 수 있게 꾸민 화단이 있는데, 당연히도 5월의 꽃 장미가 피어있다. 예전에는 장미가 너무 화려해서 눈길이 안 갔었는데 이제는 화려한 건 화려한 대로 좋다. 가끔은 나도 화려하게 꾸미고 싶을 때가 있다. 하루쯤은 안 입던 옷을 떨쳐입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게 잘 안된다. 꾸며봤자 평소에 꾸미지 않았던 티가 너무 나서 오히려 촌스럽기만 할 뿐이다. 타고나기를 장미로 타고나지 않은 것 같다. 하긴 언감생심 장미나 양귀비 같은 꽃은 바라지도 않지만, 은근히 탐이 나는 꽃이 있긴 있다. 바로 모란. 나이 들수록 모란의 기품을 품은 사람이고 싶다.   



화려한 꽃들도 좋지만, 우리 아파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놀이터 앞이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고 핸드폰에 메모한다. 그건 동화작가가 되면서 갖게 된 습성이다. 아, 동화작가가 되었다는 표현은 좀 과할지도 모르겠다. 오늘 내 첫 동화책이 나온 날이니까. 어쨌든 동화를 쓰게 되면서 놀이터 앞을 서성인다. 누가 보면 수상하다고 여길 정도로 그네와 시소 앞에서 왔다 갔다 한다.

게다가 바로 옆에는 무성한 나무숲이 있다. 숲이라는 말도 어쩌면 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무가 스무 그루 이상 모여있으니 숲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더구나 대부분 높이가 10층 가까이 된다. 어떤 나무는 10층을 넘는다. 그 앞에 있으면 온갖 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아이들 소리가 묻혀버릴 정도다. 그래도 뒤로는 새소리와 앞으로는 아이들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나는 그 자리를 고수하게 된다.




삶의 바운더리가 좁다 보니 아파트가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안에서 계절마다 손으로 짚으며 느끼고 싶었다. 나도 안다. 아파트보다 주택이 훨씬 계절을 느끼기 좋다는 거. 그렇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도 충분히 계절을 만끽하고 싶었다. 삶의 순간을 만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로 기록을 남기는 것. 내가 아는 것은 그것뿐이다.

그 어느 때보다 계절 속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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