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소설가, 하루키

- 《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by 조카사랑

무라카미 하루키는 나에게 그야말로 ‘넘사벽’ 같은 작가였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문학사상, 2016)》는 내가 처음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책이다. 작가의 책 《상실의 시대》를 읽어보고자 했지만 글자가 빼곡한 500페이지가 넘는 책은 무협지와 판타지, 자기계발서만 읽던 당시 나에겐 넘사벽의 활자량이었다. 무엇보다 약간 오래된 듯한 표지디자인은 고등학교 반편성고사를 앞두고 공부했던 '한국단편소설전집'과 너무 비슷해서 시험교재를 보는 것 같았다.(책을 안 읽은 핑계치곤 너무 얄팍했을까) 이 때문일까? <상실의 시대>는 여전히 내 책장에서 긴 잠에 빠져 있다.


당시에는 하루키의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지만, 몇 년 뒤 독서모임을 통해 다시 그의 글을 마주하게 되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페이지를 넘길 수록 마치 내 일기장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루키와 같은 대작가의 고민과 감정이, 당시 나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동질감마저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책의 모든 부분이 좋았다.


인생에 있어서 문제의 태반이 그렇듯이 이 통증은 아무 징조도 없이 돌연히 찾아왔다.

10월 17일 아침에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오른쪽 무릎이 갑자기 뜨끔했다.- p194


이 대목에서 문득, 내가 운동에 바져 있던 시절이 떠올랐다. 작가가 마라톤에 쏟은 열정만큼 나도 배드민턴에 열정을 쏟았었다. 10년! 내가 죽자살자 배드민턴을 한 기간이다. 마라톤을 하면서 느끼는 작가의 많은 생각들이 그때의 나에게 이입되어 '맞아! 나도 그랬었는데!'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가령, 마라톤 대회전 무릎부상으로 대회를 불참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나역시 대회전 근육 파열로 대회를 기권한 적이 있다), 트라이애슬론 레이스에서 과호흡으로 수영에서 기권해야 했을 때(나는 기권까진 하지 않았지만 대회 전 긴장으로 실력 발휘를 못한 적은 있다), 일정 거리를 달린 후 몰입 상태에 빠져들 때(이는 운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겪는다) 처럼 말이다.


달리기뿐 아니라, 작가는 이 책에서 소설을 쓰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소설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재능이며, 재능 다음으로 소설가에게 중요한 자질은 집중력이다. 집중력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지속력이다. 집중력과 지속력은 고맙게도 재능의 경우와 달라서, 트레이닝에 따라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 있고, 그 자질을 향상시켜 나갈 수도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재능이 없다면 끊임없는 훈련으로 집중력을 기르고 지속력을 증진시켜가라고 조언한다. - p120~122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때마다 부지런히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 p116


이는 달리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항상 안되는 이유부터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애초에 시작을 망설인다. 하루키와 같은 대작가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대형 트럭만큼 가지고 있었다. 단지 그는 그럼에도 빈틈없이 단련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단련하지 못는 걸까?


외국작가의 책을 읽을 때 종종 드는 생각이 있다. 특히 내가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을 때는 "과연 원어로 읽어도 이렇게 재미있을까?" 항상 궁금해진다. 한국 번역가의 번역솜씨가 탁월해서 이런 감동을 받는것은 아닐까 하고! 내가 영어공부 때문에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언젠가는 영어원서로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싶어서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궁금해졌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느낀 이 감정도 번역 만들어낸 기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읽다 보니 사람들이 왜 하루키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세계적인 대작가의 이런 진솔한 얘기에 어느 누가 감동하지 않겠는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나타난 그의 가치관은 그가 쓴 다른 책에서도 엿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 책은 달리기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끝까지 걷지 않기 위해, 나 역시 오늘도 내 방식대로 한 걸음씩 달려보기로 한다. 작가가 묘비명에 넣고 싶다는 문구는 나태해지려는 나를 채찍질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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