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반 일리치의 죽음》를 읽고
책장 한구석에 박혀 있던 작은 책. 언제 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읽겠다고 마음만 먹은 채, 몇 번의 이사와 정리 속에서도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책의 제목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었다.
톨스토이의 작품이라는 건 알았지만, 제목이 주는 무게가 부담스러워 자꾸만 눈을 피했다. 죽음을 다룬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 책을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독서모임의 ‘이달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마침내 꺼내 들었다. 얇은 책이라 금방 읽을 줄 알았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사람 이름부터 적응이 안된다. 한자한자, 또박또박 읽다보니 진도가 안나간다. 러시아 사람들은 이 이름을 어떻게 매일 부르지? 우리나라에서도 '영희'라는 이름을 '희야'라고 부르듯이 애칭으로 부르나 보다 지레짐작할 뿐이다.
열심히 읽었다. 대부분의 회원들을 완독을 했기에 나또한 한참전에 마무리 했어야 하는 책이었다. 용케 끝까지 읽었다. 타이머도 사용하고, 쏟아지는 잠을 거부하며 읽었다. 책에 부록으로 있는 작품 해설이 본문보다 더 어려웠다.
작품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는 2002년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병원에서도 포기할 정도로 치매가 심하셨던 할머니! 당시는 치매 어른을 집에서 모시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였고, 요양원 말만 꺼내도 세상 둘도 없는 불효자가 되던 때였다. 시도때도 없이 사라지는 할머니 때문에 일반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자해를 하셔서 부엌 씽크대에 잠금 장치를 달기도 했다. 조카가 컴퓨터 하고 있는 방의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려고도 하셨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았지 싶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는 동안 이반의 심적 변화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던 당시 내 기분이 그대로 대입되었다.
주인공 이반은 자신이 중병에 걸린 것을 알고 처음에는 의심을 한다. '내가 그런 병에 걸릴리가 없다!' 그 다음은 죽음을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내가 왜?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마지막! 임종의 순간이 오면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가족들에게 미안해한다.
게라심이 옆방으로 물러나기를 기다렸다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없는 무력감과 끔찍한 고독이, 사람들과 하느님의 냉혹함이, 그리고 하느님의 부재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 p100
할머니의 치매 진단을 받고 처음 든 생각이 '그래도?!'였다. 남한테 헤코지 한번 하지 않고, 세상 사람 좋은 우리 부모님! 절에도 열심히 다니시는데 부처님이 도와주시겠지!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할머니의 경과를 지켜봤다. 하지만 병원에서조차 이렇게 심한 치매는 처음 봤다고 할 정도로 할머니의 증세가 심해지자 이젠 세상 모든 것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기억 못하는 전생에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길래 우리집이 이런 고통을 겪어야하지?' 라는 생각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하루종일 할머니 옆에 있어야 하는 엄마는 무슨 죄일까? 엄마가 너무 불쌍해 외면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난 정해진 대로 그대로 다 했는데 어떻게 잘못될 수가 있단 말인가?' - p103
그렇게 1년이 지나고 기력이 다하셨을까, 할머니는 거동을 못하시고 자리에 몸져 누우셨다. 가만히 누워만 계신 할머니를 보면서 차라리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실 때가 더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가끔 힘겹게 눈을 뜨고 가족들을 보는 할머니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했다.
12월의 어느 날, 자식 욕심 많은 할머니는 당신 자식들,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까지 정말 온 식구들이 다 모였을 때 눈을 감으셨다.
돌연 모든 것이 환해지며 지금까지 그를 괴롭히며 마음속에 갇혀 있던 것이 일순간 밖으로, 두 방향으로, 열 방향으로, 온갖 방향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가족들이 모두 안쓰럽게 여겨지고 모두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신도 벗어나고 가족들도 다 벗어나게 해주어야 했다. -p118
돌아가시는 순간 할머니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흐린 정신으로 생을 마감하셨는지, 아니면 잠깐이지만 맑은 정신으로 가족들의 얼굴을 다 훑어보고 가셨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이반 일리치가 죽음을 직면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아마 돌아가신 할머니도 느끼지 않으셨을까?
죽음의 순간, 자신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는 글을 어디서 본 적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한번씩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 삶이 후회가 될지, 만족이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이 정도면 잘 살았다'라고 느낄 수 있다면 잘 산 것이 아닐까? 삶에 정답은 없지만, 오답으로 끝나는 삶도 없다. 내가 끝내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내 몫의 삶을 살아낸다. 지금의 내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내가 후회하지 않으면 그건 잘 산 삶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계속 노력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