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앨리스 : 부디 가르쳐주시겠어요? 제가 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채셔 고양이 : 그건 네가 어디에 도착하고 싶은가에 달려 있지
앨리스: 어디든 상관이 없는데.....
채셔 고양이: 그럼 어느 길로 가든 상관없지
앨리스: ...어디든 도착하기만 한다면야
채셔 고양이: 분명 그렇게 될 거야. 오래 걷기만 한다면 말이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중에서
책을 읽다보면 이렇게 책 속 문장에 꽂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감정묘사에서 머리 뒷통수를 맞은 듯 뭔가가 쿵하고 두드린다.
요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일까? '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읽는 게 멈춰진다. 그리고 나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본다.
앨리스와 채셔 고양이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때까지 나는 스스로 뭔가를 정한 적이 없었다. 성적에 맞춰 대학교를 가고 부모님이 가라는 학과를 지원했다. 내가 스스로 뭔가를 정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2학년때 시작한 아르바이트때부터였다.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에 매번 부모님께 용돈을 달라고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학교앞 복사집! 문서 편집과 서류 복사를 주로 하고 가끔 학생들의 논문 워드 작업도 했었다. 내 손으로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고,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한다는 것도 처음이었다. 힘은 들었지만 덕분에 사회생활이라는 걸 경험할 수 있었고 많이 배우고 많이 성장한 시기였다.
부모님들은 우리가 뭔가 할 때 '해라, 마라' 하시지는 않으셨다. 크게 위험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잘생각해 봤나?, 힘들지 않겠나?, 기왕 결정한거 잘해라!' 이렇게 말씀하시면 내 의견을 존종해주셨다. 매번 내가 알아보고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힘이 들기도 했고, 나를 이끌어 줄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렇게 내가 결정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나 빨리 변하는 세상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소짐해지기도했다. 주변 지인들은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는데,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간다는 생각도 들었고, 다른 사람은 뭘해도 잘 되는데 나는 왜 뭘해도 이렇게 힘들까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었다. 삶에 정답은 없다는 말을 많이 했지만 나 자신에게는 결승점을 정해놓고 그 목표를 향해서만 달려왔던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독서를 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조금씩 변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삶들이 있으며, 모두가 옳다고 여기는 삶이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저렇게 '느림' '천천히' 라는 단어를 보면 나는 왜 그렇게 달려왔을까 조금씩 후회가 된다. 물론 그렇게 달려오면서 얻은 것도 있지만, 정말 소중한 것은 놓쳐버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본다. 그러면서 이제는 쉬엄쉬엄 가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렇게 가다보면 결국 어디든 도착할테고 그 종착지가 비록 처음에 내가 원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 나름대로 멋질거라고 말이다.
'나비효과'처럼 가끔 의도치 않은 나의 행동이 미래의 많은 것들에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직선으로 결승점까지 간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이렇게 하나둘 꾸준히 하다보면 내가 기대하지 않은 어디가로 나를 데리고 갈지도 모른다. 그러면 거기에 있는 많은 것들이 또다시 전혀 의도하지 않은 곳으로 나를 이끌고 갈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가는 나에게 오늘도 말해준다. 괜찮아, 지금도 잘 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