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났다. 달콤했던 휴식과 느슨한 시간표를 뒤로하고 다시 월요일이다.
이상하게도 월요일 출근이 아주 힘들지만은 않다. 전날 밤, 자기 전에 노트북으로 내일 할 일을 몇 줄 적어두면 아침에 뇌가 ‘멍’ 해지는 순간을 피할 수 있다. 미리 걸어 둔 작은 긴장감은 알람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한다. (아직은) '미생'인 내가 제법 완성하게된 월요일 출근 팁이다.
차를 몰고 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속도가 0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나는 대중교통을 탄다. 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창밖을 훑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몸이 먼저 출근 모드로 들어간다. 나의 출근 장소인 테헤란로는 여느 때처럼 분주하다. 이 거리에는 수많은 벤처캐피탈이 숨어 있고, 각 건물마다 서로 다른 투자 논리가 오고 간다.
평소라면 청소 아주머니보다 먼저 사무실 불을 켜는 사람이 나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프린터의 예열음, 컴퓨터의 가벼운 진동, 어두운 사무실을 먼저 밝히는 딸깍 소리. 그 사이에 잠깐의 호사를 누린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집에서의 분리수거가 나를 붙잡았다. 미처 주말에 버리지 못한 분리수거를 아침에 마저 정리하고 출근했다. 그래서 조금 늦었다. 문을 열자 부사장님이 먼저 와 계셨다. '오늘은 2등이네?' 가볍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는다. 시계를 보니 8시.
모니터에는 내가 한땀한땀 고쳐 쓰는 데일리 스케줄과 캘린더가 뜬다. 한때 ‘Notion으로 갈아탈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결국 내 손에는 엑셀이 남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습관은 생산성의 가장 저렴한 자동화고, 엑셀은 내 손이 먼저 기억하는 언어다. 행마다 시각을 정리하고 오늘의 할 일들을 예상 시간표로 작성한다. 하루가 완벽하게 딱딱 시각에 맞춰 출근 부터 퇴근까지 마친 적은 없다. 기준 시간표를 잡고 업무를 하다가 수정사항이 생기면 새로운 시간표를 적용 한다.
월요일 오전이면 회사에 주간업무보고가 있다. 1분 이내의 스피치다. 이 60초가 의외로 무겁다. ‘뭘 했고, 왜 했고, 다음은 뭔가.’ 엑셀 옆에 메모장을 열어 둔다. 말의 순서가 흐트러지지 않게, 숨 한번 고르고, 바로 쓴다.
9시가 되자 시장의 시작이 숫자로 보인다. 미·중 변수에 대한 해석이 차트 위에 번역되어 나타난다. 예상대로 주춤했다. 나는 비상장 투자자가 메인이다. 그래도 상장사의 호흡을 매일 체크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상장의 가치 평가는 결국 상장의 거울에서 비친다. 유사기업, 즉 피어 그룹이 오늘 어떤 가격을 받는지가 우리가 내일 써야 할 ‘밸류에이션’ 숫자에 그림자처럼 묻어난다. 더 멀리 보면, 우리가 투자한 회사가 상장 문턱을 넘을 때 주가의 첫 곡선도 이 거울 속에서 미리 연습된다.
연휴 뒤의 사후관리는 대체로 ‘쌓여 있다’는 동사로 표현된다. 3분기가 끝나 분기보고 준비를 시작한다. 포트폴리오 회사에는 필요한 자료를 요청한다. 반대로 포트사에서 경영사항 중 동의가 필요한 건은 우리한테 공문을 보낸다. 한 줄 한 줄 검토하고 품의를 올린다. 리스크가 스며 있을 법한 안건은 리스크관리위원회로 보낸다. 대부분의 유상증자는 ‘경영사항의 서면동의’로 무난히 지나간다. 다만 우리가 투자했던 단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다시 돈을 받는다면, 그건 다른 이야기가 된다. 투자자산이 낮아지는 영향이 있어 ‘왜 이 가격인가’, ‘대안은 없었나’. 등 검토 사항을 체크 한다. 포트사에는 조금 딱딱한 메일을 발송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사후관리 담당자로 해야할 나의 일이다.
달력을 넘기며 문득 계산해 본다. 이 업에 들어온 지도 곧 5년차다. 처음 업계에 왔을 때 선배가 말했다. “3년은 지나야 VC 심사역이라 할 수 있지.” 그 말이 허세가 아니라 최소한의 기본이었다는 걸 1,000일쯤 지나고 나서 깨달았다. 투자에 기록이 필요함도 알았다. 좋은 판단은 좋은 복기에서 나온다. 성공과 실패, 그 사이에 놓친 신호들, 미세한 타이밍의 차이를 문장으로 붙잡지 않으면 금방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투자 시계를 기록하기로 했다. 월요일의 루틴부터, 회의의 한 문장, 공문의 한 단어, 그리고 시장이 보였던 작은 떨림까지. 길게 달리려면 호흡을 적어 둬야 한다. 언젠가 다시 숨이 찰 때, 이 기록이 나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