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글쓰기는 마음의 욕조다
『재생의 욕조』는 상처 입은 영혼의 재생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재생의 과정은 글쓰기, 그림, 만남을 통해 서서히 이루어집니다. 작가는 스스로 경험해온 치유의 과정을 80여 점의 아름다운 수채화 그림과 함께 작품에 담아두었습니다.
재생의 길은 함께 가는 길입니다. 작가는 가족, 어린아이, 글쓰기 동료와 함께 길을 갑니다. 나아가 성직자, 예술가, 철학자, 작가, 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들과 함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재생의 길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나의 재생의 과정 속에는 글쓰기라는 빛이 있었다.”
- ‘1부 벗음’ 은 물로 시작하여 불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신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친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향긋하고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급니다. 욕조, 목욕탕, 온천, 물, 엄마의 자궁처럼 태초부터 이어져 온 물이라는 쉼의 공간 속에서 작가는 불로써 상징되는 상처와 마주하며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합니다.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삶의 빛을 발견합니다.
“나는 글쓰기를 정신을 바로 세우는 재생의 욕조라 정(定)한다.”
- ‘2부 재생’ 은 등대로 시작하여 다시 욕조로 향합니다. 글쓰기라는 물을 통해 상처의 불에 직면하고 내면을 탐구할 수 있었던 작가는 이제 본격적인 재생의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삶은 독서, 글쓰기, 걷기, 숫자, 그림 통해 삶에 질서를 가지기 시작합니다. 삶이 견고해지고 명료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기 결정적 존재가 된다.”
- ‘3부 창조’ 는 어린이로 시작하여 창조의 욕조로 마무리됩니다. 어린이를 보며 어린 시절의 예술성과 용기를 돌아봅니다. 촛불을 통해 기쁨과 소망의 빛을 발견하고 누군가의 어둠을 밝혀줄 굵은 초가 되길 기도합니다. 기억이라는 약국과 실험실로 모험을 떠납니다. 동료들과 함께 쓰고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나아가 강해집니다. 창조의 욕조에 이르러 글쓰기를 통해 자신, 세계, 꿈, 정신의 깊은 근원을 인식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기 결정적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창조적인 삶, 투쟁하는 삶, 빛과 어둠을 모두 끌어안은 성숙한 삶, 작가는 그러한 삶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이 작은 아기는 누구인가.”
- ‘작품의 마지막 부분’ 은 신에 대한 찬양이 담긴 나옴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작은 아기는 누구인가? 에 대한 대답과 부록을 통해, 불로 상징된 작가의 상처에 대한 자전적 설명과 미처 다하지 못했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끝으로 작가에 대한 소개와 이 작품의 탄생에 함께해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로 마지막 장을 채우고 있습니다. 책의 표지를 장식한 물 속에 잠긴 작은 아기 그림은 작가 자신, 자매, 상처의 불에서 부활하신 어머니, 그리고 나아가 모든 어머니의 자궁안에서 숨 쉬고 있던 우리의 모두의 태곳적 생명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존재적 질문은 독자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생의 골짜기에서 채굴해낸 물과 불의 글쓰기, 상처입은 영혼의 재생의 과정, 예정옥 작가님의 『재생의 욕조』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저자(글, 그림) 예정옥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프리랜서 작가이자 애니메이터 ‘길모퉁이 글쓰기 카페’에서 읽고 쓰고 그리면서 함께 꿈꾸고 연대하는 창작의 지형을 만들고 있다.
들어감
1부 벗음
1. 욕조
2. 목욕탕
3. 온천
4. 물
5. 불
2부 재생
1. 등대
2. 걷기
3. 숫자
4. 그림
5. 재생의 욕조
3부 창조
1. 어린이
2. 촛불
3. 기억
4. 쓰기
5. 창조의 욕조
나옴
첨언
이 작은 아기는 누구인가?
1. 대추공주
2. 빅빅걸
3.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하지만
부록 1. 필명 오렌의 비하인드 스토리
부록 2. 가벼움 훔치기
부록 3. 휴식 같은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작가소개
상큼한 시트러스 향 입욕제로 거품을 낸 따끈한 욕조에 들어앉으면 W. 의 노래 Lemon이 절로 흥얼거려진다. 흙으로 빚은 램프에 불을 밝히고 티 트리 오일을 두어 방울 떨어뜨린다. 노랑노랑하게 번져나가는 작은 불빛 하나 더해졌을 뿐인데 마음이 한결 온화해진다. 여기에 수고한 나를 위해 준비한 달콤 쌉싸름한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왕비가 된 것 같다. 온수와 향기와 알코올의 따스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 전신이 노곤해진다
….
줄줄이 매달린 사탕처럼, 감정이 담긴 기억이 다음 기억에 그 감정을 데리고 온다. 기억의 기차놀이 기억은 경험과는 다르다. 경험은 그곳에 있지만 경험을 기억하는 감정은 지금 이 순간, 그 경험을 떠올릴 때마다 달라진다. 그러므로 기억은 언제나 새롭게 편집될 수 있는 재료이고 자산이다. 영원한 현재다. 기억의 기차는 한량 한량 분리되어 있어서 레고처럼 쌓아 올렸다가 새로운 조합으로 다시 만들 수 있다.
…
목욕을 마치고 도톰한 수건으로 머리카락과 얼굴과 발을 소중하게 닦는다. 희미한 향이 있는 베이비오일을 온몸에 골고루 발라준다. 하얀 성에가 낀 유리를 손바닥으로 닦아내고 뽀얀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씨익 웃는다.
…
유일한 실체인 현재를 보다 온전하게 살기 위해 펜을 든다. 오색의 베일 속 백팔번뇌를 글로 풀 수 있다면 자유인이 될 수 있다.「욕조, p24-28」
“투명하고 따뜻한 물…욕조 안에 담그면…세상의 때가 벗겨지고, 세상의 소음이 고요하게 잠긴다…나에게 욕조는 모성의 상징이자 자아의 상징…모든 것을 품었던 태초의 사랑의 욕조는 탄생과 함께 박탈의 경험이 된다.” 「재생의 욕조, p104-105」
책을 열어 작가를 만난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한 자아가 격동하는 음성이 다소곳이 담긴 활자를 읽는다. 상처입고 분열되었던 한 예술가의 영혼의 부활의 순간을 함께한다. 페이지를 넘기면, 쪽마다 영혼의 색 묽게 풀어진 수채화 색체들이 향연을 펼친다. 맑은 물이 흐르는 소리, 흥겨운 콧노래, 물에 잠긴 영혼의 온도, 향기를 느낀다. 작가의 영혼은 독자의 영혼과 함께 물 속으로 들어가 쉼을 얻고, 고락의 먼지를 닦아내고, 상처를 치유하고, 태어난 모습 그대로의 아기, 우리 자신의 자아를 만나고자 한다.
치유를 너머 정신은 대지를 향한다. 치유된 마음은 육체의 활력, 정확한 숫자, 견고한 존재들로 형이상학적 정신을 단단한 대지 위로 굳세게 뿌리내린다.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싸워내며 이긴다. 작가는 작품과 부록을 통해 서서히 자신의 실제 삶과 상처를 드러내며, 글과 그림과 춤으로 승화시켜온 예술가의 걸음을 서술한다. 책 속에서 작가가 경험한 처절한 현실의 고통은 아름답고 부드러운 아기의 색과 맑은 물의 옷을 입고 형상화되며, 예술가의 자아는 자기 자신의 정신과 심리를 분석하는 가운데 글, 그림, 꿈, 춤을 통해 단정하게 정돈되고 중심을 잡고 창작활동에 온전히 몰입해 나간다.
예술가의 자아는 나로부터 타인으로 더 나아가 세계로 확장된다. 세계로 확장된 자아의 음성은 이렇게 책이 되어 더 넓은 세상에 말을 건넨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용감하게 죽어간 동료를 추모했다. 삶과 죽음이 합쳐진 모두가 아름다움이었다.” 「들어감, p14」
재생의 욕조, 한 영혼의 불이 담긴, 아름다운 물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