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계시나요.
인생은 힘겹지만,
사진들엔 고통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순간의 평온이 담기어 있지요.
감사히 지내고 있습니다.
아내가 생겼습니다. 오웰에게 모로코가 마라케시였다면 제게 모로코는 아가디르입니다.
작년 코맥 매카시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작
두 권은 제게 의미를 지닙니다.
모로코인 아내를 둔 르 클레지오의 사막은 아름다웠습니다. 아시아 제바르의 프랑스어 실종은 뜨거웠습니다. 북아프리카, 사막, 바다, 모로코, 아랍어, 베르베르, 저의 아내의 세계를 사랑해갑니다.
본질은 쌓일수록 진해집니다. 흐트러진 날들을 추스립니다. 추수린 날들을 이어 추구한 본질 끝에 마침내 자유를 만나길 소원합니다.
Agadir 아가디르
흐르는 센 위로 파리의 황금 불빛이 윤슬했다. 센 강변에 앉아 마지막이 될지 모를 물처럼 맑은 적포도주를 머금었다. 하얗게 마른 카망베르 치즈 껍질과 말랑한 속살이 혀 위로 녹았다. 포도와 우유, 프랑스 대지가 낳은 두 영혼이 피 속에 흘러 파리의 황홀로 유혹했다. 클로시 레 로이, 센 강변에 위치한 레 리우 레스토랑은 야외 테이블까지 수 많은 연인들과 가족들로 북적이며 노곤한 금요일 저녁을 환하게 밝혔다.
나와 리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어두운 거리를 바라보았다. 온 몸에 힘이 넘쳐 흐르는 프랑스 십대 아이들은 모로코 민트 티처럼 향긋한 저녁 공기를 맹수처럼 할퀴며 거리를 가로질렀다. 후드 입은 사납고 거대한 그들은 금발 머리를 흔들다 멈추어 새파란 눈으로 동양인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리곤 무심히 고개를 돌려 공을 차 텅 빈 어둔 거리로 사라졌다.
레스토랑엔 대지가 잉태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의 색이 앉아 있었다. 파리의 밤은, 슬픈 세상의 모든 색을 담고 있는, 곱게 늙은 귀족의 서늘한 칼이었다.
정신은 신의 피를 마시곤 세상이 점점 늦어짐을 느꼈다. 그녀의 어리고 달콤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 했다. 느린 세계로부터 운명이 내게 손을 흔드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