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서울 8년
아주 오래전에 읽은 동화책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데 도시를 떠난 시골 쥐는 잘살고 있을까?
맘 같지 않던 인생과 팍팍한 서울 생활에 지쳐가던 8년 전 어느 날, 나는 답답한 마음에 고개 들어 하늘을 봤어. 그런데 사방을 둘러봐도 하늘을 가린 높은 건물이 끊임없이 줄지어 있었고 금방이라도 머리 위로 쏟아질 것만 같아서 가슴이 탁 막히는 기분이 들었어. 15년 가까이 서울에 살며 잘 적응했다고 착각했던 시골 쥐에게 알 수 없는 공포감이 생긴 날이었지. 그 기분은 꽤 강렬했고 한동안 벗어날 수 없었어. 나는 서울을 떠나고 싶었어!
‘20, 30대를 보낸 서울을 어떻게 떠나지?’
‘서울을 떠난다는 건 내가 낙오자가 된다는 뜻인가?’
‘남편을 설득할 수 있을까?’
몽테뉴가 그랬지. 생각은 두 발로 하는 거라고. 나는 집 근처 산책로를 매일 걸었어. 불현듯 떠오른 ‘탈 서울’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는 동안, 나는 그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떨쳐내든지 아니면 실행으로 옮기든지 어느 쪽으로든 결정해야 했어. 밤낮 가리지 않고 산책하며 떠오르는 온갖 생각을 흘려보낸 뒤 나에게 남은 질문.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거지?’ 그래,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 살 수 있는 자유가 필요했어. 어쩌면 서울이든 지방이든 상관없었는지도 몰라. 다만 그동안 나의 서울 생활을 돌아보면 적어도 서울에서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고 결론 내렸어.
우리는 원하는 곳에 살 수 있는 자유가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 여러 이유로 우리에게는 제약이 있어. 꿈, 직장, 돈, 관계 등등 아주 다양하지.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대부분 무언가 얻기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게 있기 마련이야, 그것도 포기하기 아주 어려운 것들을. 그런데 이미 양손에 가득 쥔 채로 어떻게 새로운 걸 잡을 수 있겠어? 양손을 비울 무모함이 없다면 적어도 한 손을 비울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는 어떤 걸 포기해야 했을까? 그동안 쌓아왔던 인간관계가 멀어질 테고 각종 문화 혜택과 기회도 그만큼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어. 실제로는 어땠을까? 멀어진 물리적 거리로 자연스럽게 정리된 관계가 있는데 그건 오히려 괜찮았어. 그런 식으로 정리되는 관계는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 정리될 관계였다고 생각해. 다만 프리랜서로 일하는 남편은 협업하던 곳과 점점 소원해지다가 나중에는 아예 정리됐는데 우리가 지방에 살고 있던 게 발단이 됐었지. 서울을 떠나기 전에 가장 우려하던 일이 정말로 일어난 거야. 우리 부부는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새로운 기회가 왔고 지금 남편은 예전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하고 있어. 그러니 무언가 얻으려면 한 손을 비워야 한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어. 아니, 서울살이를 포기하며 우리가 얻은 것들은 훨씬 더 많아.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을 떠난 후 남편의 일은 점점 안정적으로 변했고 우리는 서울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삶을 누리게 됐어.
지방 살이 8년 동안 우리 부부는 청주를 거쳐 천안으로 이사했고, 작지만 대출을 끼고 내 집을 마련했어. 주거환경이 안정된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지긋지긋한 이사를 등 떠밀려하지 않아서 정말 기뻤어. 그사이 고양이 두 녀석을 가족으로 들이며 웃는 날이 많아졌고, 시간이 날 때면 간단하게 도시락을 싸서 산으로 들로 소풍을 다니기도 했어. 예전보다 계절의 변화를 더 잘 누리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게 됐지. 정말 바라던 삶이었어! 그리고 우리 부부는 운동과 취미를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여유도 생겼어. 나는 서울에서 살 때보다 행복하다며 웃는 일이 더 많아졌고 남편도 그런 아내를 보며 만족해했어.
다만, 남편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잃어버린 기회도 많아. 남편이 재택근무하는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탈 서울 할 수 있었지만, 일거리는 여전히 서울에서 찾아야 하거든. 그런데 지방에 살고 있으니 인맥을 넓히고 유지하는 일이 어려워. 업무로 서울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 천안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놀라. 어떤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쉽게 또 자주 만나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소외되는 느낌이랄까? 그럴 때면 더 늦기 전에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할까 고민하기도 해. 그런데 이제는 소유한 것들이 많아져서 포기하기가 쉽지 않아.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데, 지금 누리는 현실의 편안함과 만족감을 어떻게 버려야 할지 모르겠어. 막상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니 갖지 못한 것으로 내 시선이 옮겨가는 건 욕심이 많아서일까?
막 지방으로 이사했을 때는 한 달이 멀다 하고 가던 서울을 이제는 특별한 일이 있어야 가. 그리고 서울 나들이가 즐겁긴 하지만 한 번 다녀오면 한동안 서울에 간다는 말은 꺼내지도 않고. 서울 살 때는 얇은 지갑 사정에 문화생활을 못 누렸으면서 지금은 지방이라 누릴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며 불평하기도 해. 그렇다고 다시 서울에 살자니 비싼 집값과 물가를 감당하려면 지금 누리는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
나는 여전히 거주의 자유가 있길 바라. 그게 어디든 살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나에게 있길 바라지. 그런데 편안한 현실이 주는 안정감이 생각보다 강력해서 오히려 그런 자유를 향한 갈망을 포기하게 돼. 다시는 서울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지. 어느 쪽을 선택하든 분명 포기해야 할 것이 있는데 어느 쪽을 더 원하는지, 그리고 어느 쪽에 버릴 게 더 많은지를 이리저리 저울질하고 있어. 모르겠어. 이러다 저울이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날, 훌쩍 떠날 수도 있겠지?
동화책의 그 시골 쥐는 정말 일말의 미련도 남지 않았을까? 난 아쉬움이 조금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남기 마련이니까. 혹시 알아? 자신이 잠시 머물던 도시의 화려함을 영웅담처럼 두고두고 자랑하며 가끔 옛 추억에 젖어 도시로 놀러 갔을지? 그렇게 도시의 화려함을 잠시 즐긴 후 돌아오는 길에는 ‘역시 내가 있는 시골이 좋아’라며 여행의 피곤함으로 가끔 자신을 괴롭히는 어떤 미련이나 현실 안주에 대한 불안감과 실망감 같은 걸 잊어버리려 애쓰고 있는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