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많은 데미안들을 생각하며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데미안, 헤르만 헤세
여러 시간을 보내며 여러 지역을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을 만나며 조금씩 변했다.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지나갔거나 머물러 있다.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혼자일 수 없다. 관계를 맺으며 각자의 세계가 부딪히고 깎여나간다. 깎여나가다 보면 한 세계, 알의 껍질을 깨뜨릴 수 있게 된다.
매번 데미안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마다 생각을 한다.
'내 인생에서 데미안은 누구였을까?'
머릿속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럴 때면 내 인생은 참 재미없는 영화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 와중에 순간순간 길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아 초등학교 때의 그 친구, 고등학교 때, 또 성인 돼서 만난 몇몇 인물들이 머릿속에 남는다. 사람들한테 말도 못 걸던, 한 학년에 1명의 친구밖에 못 사귀던 내가 점점 달라지고 지금까지 오는 과정에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데미안처럼 직접적으로, 베아트리체처럼 멀리서 존재만으로, 피스토리우스처럼 반면교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도움을 받았다.
생각은 꼬리를 물어 떠오른다.
'나는 누군가의 데미안이었을까?'
지금까지 "나"라는 인간은 달라지지 않았다. 소심하고 말주변이 없다. 다만 달라진 점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나라는 존재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풀어내는데 자그마치 20년이 걸렸다. 아직도 그 과정 중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이 성격에 장점이라면 남의 속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다. 왠지 모르게 주변에 나를 상담사느낌으로 조언을 요청하거나 편히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상황에 내가 취하는 행동은 아무 말도 안 하기이다. 정말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중간에 끼어들거나 잠깐의 정적에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는다. 한 친구에게 들은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렇게 반응해 주는 사람이 처음이다". 온전히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 준 사람이 처음이라며. 사실 남의 가족사 이야기에 내가 무슨 말을 덧붙히겠는가. 울컥이는 눈물을 참으며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데미안 같은 사람이었을까. 나에 대해선 말할 수 있지만 남에 대해선 말할 수 없으니. 내가 도움을 받았던 만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많은 세계를 만났고 많은 알을 깨뜨렸다. 결국 내가 깨뜨렸으니 나의 선택이긴 하나 다른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생만큼 더 살아갈 테니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지금의 내 주변의 사람들 중 후에 데미안으로 기억될 이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를 분간할 능력은 현재에 없기에 그를 위해서 노력할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인복이 좋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좋진 않았지만 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우연이 겹쳐져 만나게 된 인연들이다. 깊고 넓은 시공간에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었다. 쉽지 않음을 알기에 매번 노력한다. 헛수고도 있었겠지만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이 많았으니 그에 만족할 따름이다.
쉽게 놓고 싶지 않다. 그게 나만의 마음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