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이 없었다. 어릴 때를 떠올려 가장 힘든 순간을 기억해보라하면 장래희망칸을 채워 넣을 때이다. 그 칸에 채울 때만큼은 손이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주변의 친구들이 쉽게쉽게 쓰는 것이 부러웠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대통령이나 부자 등 재미로 쓰는 경우도 있었고 과학자, 의사, 판사, 선생님 등 특정한 직업을 쓰는 경우도 있었다. 대개 그런 경우는 부모님의 직업이나 의지에 따라 썼으리라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민하다 회사원을 쓰거나 빈 칸을 부모님에게 가져다 주었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방목하듯 키웠다.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두 분 다 환경에서 공부할 환경이 좋지 못했고, 그 영향인지 나에게도 그렇게 압박하며 공부를 시키지 않으셨다. 그런 영향인지 아니면 운이 좋은건지 나와 형은 공부를 제법 했다. 집에서는 컴퓨터밖에 하는 모습을 보여서 부모님은 기대를 안하셨었던 듯 하다. 한참 후에 이야기를 해보니 내가 성적을 잘 받아오는 것도 모르셨고 내가 수시 넣는 대학교 이야기를 듣고 그제야 좋은 줄 아셨다고 했다. 아무튼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전교권이었기에 나름 학교에서 선망받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그 때도 물론 내 의지로 장래희망을 적지 못했다. 고3, 이제는 진짜 무언가 정해야 했다. 학교를 떠나 과를 정해야 한다. 그 때의 선택은 컴퓨터공학과였고, 이유는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만진 물건이 컴퓨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 10년의 시간이 흘러 지금 컴퓨터로 밥벌어 먹는 개발자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생의 나이에 꿈을 적으라는 게 쉽게 생각해도 될 일이었다. 나는 그 쉬움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거기에 무언가 적으면 내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야만 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오히려 지금보다 그 때가 인생의 무거움을 짊어지고 있었다. 남들과 다르단 건 알았지만 받아들이지 못했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지금이 홀가분하다. 가벼워도 될 것과 무거워야 할 것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어졌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꿈이 뭐냐 묻는다면 대답은 두 가지 정도로 나뉜다. 하나는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고 싶다", 다른 하나는 "서재를 갖고 싶다". 전자는 그냥 편하게 만나는 친구 혹은 지인들에게 하는 대답이고, 후자는 내가 책을 좋아하는 걸 아는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도 직업적으로 꿈, 장래희망을 물으면 아무 대답을 할 수 없다. "그냥 행복하게 살고싶다"라고 둘러서 말하거나 별 거 없다"고 넘겨버린다
어쩌면 그 때도 지금도 변하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게 나라면 그걸 받아들이고 산다면 좋은 거겠지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