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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환 Mar 04. 2024

바튼 아카데미, 나의 아버지

바튼 아카데미, The Holdovers


원제로는 The holdovers, 남겨진 자들 정도로 해석될 듯하다.

크리스마스 전 기숙학교 바튼 아카데미에서 남겨진 선생과 교직원, 그리고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대부분은 부모와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밖으로 나가지만 독신인 선생과 요리를 해줄 교직원 그리고 몇 명의 학생들이 학교에 남겨진다. 그 와중에 부유한 부모님을 둔 학생의 헬기로 몇 학생들이 탈출을 하게 되고 마침내 부모님과 척을 진 한 학생만 남게 된다. 그렇게 선생 폴 허넘, 주방장 메리 그리고 앵거스 털리 3명의 몇일 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폴과 앵거스 둘은 닮았다. 표현에 서툴고 표현의 정도가 0-100이 있다면, 0과 100만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메리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각자의 속내를 서로에게 전달해주며 그 중간을 조금씩 알려주는 인물이다. 학교 내에서 또 다른 도시로 떠나면서 폴과 앵거스는 서로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Barton Men”이라던 폴이 친구 앞에서 자존심을 부리는 모습과 기어코 선생을 속여서까지 아버지를 찾아가는 앵거스의 모습까지 둘은 숨기고 싶던 것까지 공유하게 된다. 끝에 가서는 둘은 마치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메리와 함께 보낸 몇일 간의 기록은 그들을 한 가족으로 만들어주었다. 끝은 아름답게 또 씁쓸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폴을 보며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누군가 떠올랐다. 아버지이다. 미디어에 나오는 딱딱한 경상도 남자, 그 이상의 성격을 가진게 나의 아버지다. 일례로 나와 아버지는 똑같이 비염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약을 먹지 않고 아버지는 약을 먹는다. 내가 약을 안먹고 있을 때면 내가 아닌 어머니에게 욕을 섞으며 “저 XX 약 좀 쳐먹어라해라!”라고 소리를 지른다. 기분이 나빠 방에 들어가도 나에게 들리게 똑같이 소리를 지른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면 괜시리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게 아버지에게는 걱정의 표현이고, 그렇게밖에 못하는 게 아닐까하고 말이다. 이어서 따라오는 생각은 '나도 똑같다'이다. 밖에서는 사람들에게 맞춰주고 살면서 가족에게는 곧죽어도 못하는 나도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떠오르는 순간 폴과 앵거스에게서  나와 아버지를 봤다. 그리고 드는 감정은 부러움. 그래도 그 둘에게는 다툼이긴 해도 대화가 있었다. 그런 과정이 있기에 서서히 서로를 이해해가기 시작했다. 결국 가족도 남이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서로를 잘 모른다. 전에 한 방송에서 부모의 임종 앞에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아는 가족이 드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핑계로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무시해버린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에게 먼저 노력하고 편하게 대하듯 가족에게도 그렇게 해야된다고 느낀다.


영화 자체는 잔잔하다. 감정선이 올라올 때 쯤 누군가의 호통이 들리고 농담을 한다. 끝에서 선생 폴이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에서는 극장의 모든 사람들이 웃기도 했다. 그당시의 학교 모습과 주변 환경을 옛날 비디오 느낌으로 표현한 것도 너무 좋았다. 나름의 정취와 낭만과 함께 사람의 마음을 알게 해준 따듯한 영화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떠오르는 작품은 [죽은 시인의 사회]이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많이 달랐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작품이 이런 느낌이라면 다른 영화를 한 번쯤은 더 찾아보고 싶어진다.


사실 우리 모두 holdovers이다. 혼자이기도 또 함께하기도 하며 살아간다. 누군가에게 버림받았다고 그게 전부가 아니고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해서 영원한 것도 아니다. 폴과 앵거스처럼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모든 관계에 필요하다. 어쩌면 이 과정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설 연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혼자 서울에서 보낸 긴 연휴였다. 되돌아보니 명절에 서울에 남겨진 두 명이서 이 영화를 본 것도 잘 연결된 우연들인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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