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도 Feb 25. 2024

첫 번째 인생 목표는 애 다섯 명 낳기

두 번째 인생 목표는?

내 스무 살 때의 인생 계획표를 공개한다.

대학 졸업하면 23살.
바로 결혼해서 줄줄이 애를 낳자.
30살 전에 아이 다섯을 낳고 30대엔 애를 키우자.
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돈 벌러 다니는 것보다 내가 집에서 키우는 게 돈 버는 일이다.
임신해서 막달까진 일하고, 아기 낳을 때쯤엔 퇴사하자.

그러니까,  자녀가 다섯 명이 되는 게 내 인생 목표였다.



"내가 애를 다섯이나 낳는다 했다고?"
"그래. 니가 그랬다니까."
철없을 적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친정부모님이 재밌어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말도 안 된다며 기억나지 않는 척 해보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표정이다. 나조차도!!!


나에겐 남동생이 하나 있다.
두 살 터울에 둘 다 고집이 세서 엄청 싸우며 컸다. 절대 사이좋은 남매 사이었다고는 말 못 하겠다.
고등학교를 마치고는 곧바로 취업을 나가버린 동생.
가족관계는 분명 부모님과 1남 1녀의 자녀로 명시되어 있지만 1남은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채로 산지 수년이었다.
그리곤 또다시 군대를 갔다. 그땐 2년 2개월의 긴 군복무를 채워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언니, 오빠가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여동생과 옷 하나로 싸우는 친구가 보기 좋았다.
지지고 볶는 말다툼도 없고, 추억팔이할 다정함은 없었지만 그래도 옆에서 늘 내 편 해주던 남동생의 빈자리가 컸다.



호르몬의 변화로 예민해졌던 사춘기 때, 우리는 서로의 영역에서 으르렁거리며 발톱 세우던 사이였다.
그런데도 떨어져 사는 몇 년 동안 왜 그리 보고 싶었는지.
엄마가 내 마음도 몰라준다 느껴지는 날이면 내 옆에 와서 "괜찮아?"라고 해주던 동생. 다 말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이해해 주고 내 편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든든한 마음이라 엄마한테 혼나도 덜 서러웠다.
하지만 괜찮냐고 물어줄 남동생이 없는 동안엔 엄마의 잔소리는 서러움을 폭발시켰다.

감수성 풍부했던 여린 마음에 그런 인생 계획표를 세웠을 거라 추측해 본다.
나는 내 자식들이 이런 외로움을 안 느끼길 바랐다.
한 아이가 없어도 남은 아이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한편으로 지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스무 살 철없던 나는 동네방네 소문내는 엄마의 입을 단속하지 못했고, 나를 만나는 어른들마다 꼭 입을 댔다.

"애를 다섯이나 낳는다고? 아이고... 가 아직 세상을 덜 살아서 그래."
"니가 애를 다섯이나 낳는다고? 다섯 낳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이게 철없는 계획이었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다. 그래도 크면서 느꼈던 외로움이 내 마음엔 너무 크게 자리 잡았던 모양이다.
기독교에서 표현하는 "신은 모든 걸 계획하셨다"라고 말하는 문구를 볼 때마다 소름 돋곤 한다.
내 인생 계획을 비웃지 않는 철없는 남자를 만나고 보니 '정말 계획하셨나?' 하는 웃기는 상상도 하게 됐다. 후훗.

무교인데도 불구하고 없던 신앙심이 샘솟는 순간이었달까?





우리는 결혼했고, 내 나이 서른 살에 첫애를 출산했다. 2008년 11월 첫애를 낳고 행복에 겨워했던 우리는 꼭 다섯을 낳자고 다짐했다.
조리원을 퇴소한 후 집에서 아이를 처음 돌본 날 밤, 난 울부짖었다.

"다 취소야. 애는 더 이상 안 낳을 거야."라고 울었던 나는 2016년 이쁜 막내딸을 품에 안았다.
내 나이 38살, 남편 나이 39살 때 우리는 넷째를 만났다.
남편에게 부탁했다.

"우리 이제 곧 마흔이야. 이제 공장문 좀 닫자!!"


여전히 헬육아 중이지만, 마흔이 되고서야 일상에서 여유를 찾게 됐다.

어느 정도 아이들이 자라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 안절부절마음이 내려지는 시간이 오고서야 내 인생에서 '나'를 위한 시간과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공허를 느끼곤 했다.

늘 채워지지 않는 마음 한 구석이 날 또 외롭게 했다. 나만 제자리 걸음하는 기분이 드는 날이면 울적한 기분이 그 공간을 매우기도 했다.


그랬던 나에게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정신없는 일상에서 틈틈이 읽던 책과 생각을 정리하던 메모들이 모여 나를 채워갔다.

빈 틈을 느낄 새도 없이 꽉꽉 채워지는 마음.

나는 이제껏 아이들을 키우느라 크지 못하고 살았나 보다.

언제부터 멈춰 섰는지 모를 인생의 시간이 다시 흘러가는 기분이다.



첫 번째 인생 계획이 비록 원하는 대로 진행되진 않았지만, 비슷하게라도 나아갈 수 있었던 건 흔들리지 않는 목표 때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철없는 계획이라도 나는 목표를 늘 생각했다.

"크는 동안 외롭지 않을 나의 아이들."

경제적 문제, 독박 육아에도 용기 낼 수 있었던 이유다.


내 두 번째 인생 계획은 바로 '공모전 도전하기'다.

이제 시작이다!!!



작가의 이전글 6. 주제 : 이어 쓰기 (장르:소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