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배가 아프다고??
어린 시절 내가 생각났다.
띠디디 띠디디
큰 애가 학교 마치고 올 시간에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나 또 배가 아파서 저녁 먹은 거 다 올렸어요."
아이의 목소리는 기운이 하나도 없다. 아이가 먹을 약을 챙기면서 어디서 들어본 말이라는 기시감이 스쳤다.
'엄마, 나 배가 아파서 아까 화장실에서 올렸어요.'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때였다. 처음으로 학원을 다니기 시작할 때라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중학교 때처럼 놀기만 하던 아이가 중간고사 이후 학원 이야기를 꺼냈다.
"이젠 혼자 공부하기 힘들 거 같아요."
그래서 시작된 학원 공부. 처음 하는 학원 생활이라 아이는 무척 흥분했다.
"엄마, 나 숙제하고 잘 거니까, 먼저 주무세요."
어찌나 기특하던지. 아이가 스스로 한다고 할 때가 오다니. 애간장이 다 녹았던 지난날이여. 안녕.
2주 뒤면 기말고사였다. 갑자기 학원에 있을 아이가 집에 오고 있단다. 저녁에 먹은 걸 다 올렸다며,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중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는 하얗게 질린 표정이었고, 손을 잡아보니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학원 시간에 맞춘다고 급하게 먹다 체했나 싶어서 소화제를 먹이고 일찍 쉬게 하는 수밖에.
하루나 이틀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기말고사가 끝나는 날까지 배는 아팠다. 아이는 살이 8킬로나 빠졌다. 워낙 잘 먹는 아이라 덩치가 있었는데, 3주 만에 8킬로가 빠지니 바지 허리 사이즈가 2인치나 줄다니. 교복 바지를 접어 입어야 했다.
기말고사 2주 전부터 기말고사를 치는 주까지 꼬박 배가 아팠던 아이. 성적은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랬던 아이가, 2학기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지금. 또다시 배가 아프다고 그랬다. 뭔가 이상하다.
내가 그렇게 틈틈이 아팠다. 학교에서 시험 친다고 그러면 밤새 끙끙 앓았다. 운동회를 한다고 하면 배가 아팠다. 소풍을 가는 날조차도 배탈이 났다.
안 그래도 7살에 입학을 해서 다른 애들보다 한참 작은 애가 자꾸 아프다고 하니 걱정이 컸다. 엄마는 한동안 내가 아프다 하면 병원으로 달렸다.
검사 결과는 '이상 소견 없음'
나는 꾀병 부리는 아이가 됐다. 분명 너무 아팠는데.
학교를 다니는 12년 동안 아팠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엄마도. 선생님도.
"쟤, 또 그러네."라며 수군대는 소리도 들었다.
그때가 생각나면서, 혹시 큰애도 그런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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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아. 배는 좀 어때?
아직도 답답하고 소화 안 돼??
엄마가 어릴 때, 학교에서 뭐만 하려고 하면 아팠대.
소풍 가려고 하면 아프고
운동회 하려고 해도 아팠어.
ㅇㅇ이가 혹시 시험기간 앞두고
신경을 너무 쓰고 있는 건 아닌가 염려 돼.
저번 기말고사 때도 배 아파서 고생했잖아.
"혹시 성적이 생각보다 안 나올까 봐 걱정되니?"
네가 노력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도,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해.
엄마는 너한테 그런 일로 부담 주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엄마의 행동이나 말투에서 네가 느낀 건 그게 아니었나 봐.
물론 아쉽지. 너만큼 아쉬울까.
너의 재능이 아깝지. 너만큼 아까울까.
누구보다 네가 지금 힘들다는 건 엄마도 잘 알아.
"너는 충분히 지금도 멋지게 잘하고 있어."
그래도 네가 노력할 수 있게, 포기하지 않게,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게.
응원하는 엄마의 말이 부담스러웠을까?
네가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네가 포기하지 않은 지금이 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어.
엄마도 너처럼 말하다 보면 눈물부터 나는 사람이다 보니 이렇게 글로 마음을 전해.
너에게 늘 해주고 싶은 말이었어.
타이밍을 놓치고. 언제 말해야 하나 생각만 하다 기회를 놓치고.
네가 배 아프다는 말에 엄마가 더는 미룰 수 없단 마음에 문자를 보내.
ㅇㅇ아. 성적이 잘 나올 때만 너를 사랑하는 게 아냐.
성적이 안 나와도 넌 내 새끼고, 사랑해.
쪼끔 아쉬웠던 마음이 내 표정이나 행동으로 느껴졌다면 그건 너무 미안해.
속 편한 음식을 생각해 봐도 죽만 생각나네.
혹시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해 줘. 엄마가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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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최근에 보낸 문자였다.
한참을 읽지 않음이었는데 어느 순간 읽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이는 그냥 아무거나 상관없다는 짧은 답변을 보내고 집으로 왔고, 우리는 짜뽁이를 해 먹었다.
숟가락으로 양념까지 벅벅 긁어먹으며 야무지게 먹더니 시원하게 아이스크림까지 먹는 아이.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배가 아파 아무것도 못 먹겠다고 했던 아이였는데 잘 먹는 아이를 보니 한시름 놨다.
"엄마, 학원 다녀올게요."
학원 갈 시간이라고 재촉하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이다니, 합리적인 의심은 정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저녁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사는 건 아이도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다. 큰애와 나의 사이를 좁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과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그 말을, 내 아이에게 마음껏 해야겠다.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