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보다 30분 먼저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빈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아침밥. 나는 또 꾸역꾸역 국을 데우고, 밥을 챙긴다. 깨우러 가는 길이 천근만근 무겁기만 한데, 왜 멈추지 못할까.
내 어린 시절 부모는 늘 바빴다. 아빠는 새벽부터 출근해서 밤늦게 집에 와도 박봉이었고, 네 명이 단칸방에 모여 살아 비좁은 집엔 가난도 함께였다.
엄마는 정해진 직장이 없었던 터라, 일손이 필요한 곳엔 어디든 달려갔다. 일당을 받은 날은 장판을 들어 올려 쿰쿰한 곰팡이내가 더해진 돈냄새를 맡으며 슬그머니 웃으셨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새벽 4시에 밭으로 품앗이를 가야 할 때는, 3시 반에 일어나 아침밥을 차려놓고 갔을 정도로 아침밥에 정성을 쏟았다. 고봉밥으로 아침을 먹여둬야 엄마 마음도 편했으리라. 하루 종일 간식도 없이 빈 집을 지킬 아들딸을 위한 최선이었다.
살갑게 표현한 적 없는 부모의 정을 밥상이 대신한 셈. 엄마도 사람인지라 어쩌다 늦잠을 잔 새벽에 아침밥을 차려놓지 못하고 출근한 날이면, 철없는 나는 그게 또 얼마나 서럽던지. 꼬르륵 거리는 배고픔보다 엄마의 사랑이 고파 눈물이 났다.
그래서였을까. 삼시세끼 중에 그렇게 아침밥이 신경 쓰였다.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이 나에겐 사랑으로 해석되었듯, 내 아이에게도 아침밥을 차려줘야 사랑을 증명할 수 있을 것처럼.
가장 오래된 기억 속 아침밥은 나에겐 사랑이었지만, 내 아이들은 달콤한 잠을 빼앗은 빌런 같은 존재였다. 오히려 아이들이 나를 미워할 이유를 만드는 게 아침밥이라니. 내 생각만 강요하느라 정작,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배 고프면 밥 달라고 할게요."
"차라리 과일 주세요. 밥 말고."
아이들의 요구대로 약간의 변화를 준 후로 아침밥을 차리는 나도 수월해졌고, 아이들의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차려낸 아침밥보다 귀한 대접받는 계란 프라이다. 응답하라 1988처럼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으니 2024년을 사는 아이들은 답답했으리라.
그래도 쌀 한 톨 들어가지 않은 단출한 아침밥이 못마땅한 건 어쩔 수 없는 꼰대 마인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