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7.15일 독서 감상문)
1.열녀의 탄생 (강명관)
인간은 너무 많은 것들을 쉽게 싫어한다. 인간은 타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온갖 증오들이 넘쳐난다.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다. 어떤 혐오는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다. 그건 내가 머리로 인식하기도 전에 직관적으로 느끼는 거부감이다. 이유를 붙이기 전에 싫은 감정이 앞서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혐오는 그렇지 않다. 어떤 혐오는 아주 체계적이고 계획적이며 조직적이다.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의식적으로 목적을 가지고 혐오한다. 그들은 아주 잘 짜인 조직이다. 냉정한 머리로 한 집단을 짓밟을 구체적인 계획을 짠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조직된 혐오에 대한 이야기다. 한 집단이 다른 한 집단을 아주 오랫동안 아주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짓밟은 역사를 다룬다. 그 계획과 과정은 아주 성공적이어서 누군가의 정신을 장악하고 신체를 빼앗는다. 한 집단의 욕망이 사회의 윤리가 되어가는 과정, 그 윤리가 어떻게 개인의 대뇌에 장착되어 내면화되는 단계를 거처 자발적으로 재생산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묻지 않을 수 없는 단 하나의 질문이 떠오르게 되는데 그건 바로 인간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다. 읽는 내내 역겹고, 화가 나다가 종래에는 나에게도 어떤 새로운 혐오의 감정이 하나 싹트게 된 것 같다. 들어는 봤나 바로 조상님 혐오. 가끔 사람들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두고 뭐 저런 인간들이 다 있나 궁금해하던데, 뭘 먼 데서 찾는지 모르겠다. 그저 우리의 핏속을 살펴보면 되는 것을.
2.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필립로스)
필립로스는 알까. 내가 사랑한다는 걸.
에브리맨을 보고 생각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조영남 같은 할배의 스토리를 이렇게나 감동적으로 쓰다니. 그 책 하나가 너무 강렬해서 필립로스의 책들을 다 찾아 읽게 되었는데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미국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그 시대를 살았던 것 같은 흡인력이 있다. 역사가 길고 짧고는 개인의 인생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어떤 역사든 개인과 무관하지 않고, 길든 짧든 그 시대의 역사는 그 시대를 사는 모두의 역사이다. 역사와 무관한 개인은 없다. 개인사는 역사와 얽혀 언제나 그 나름의 독특한 비극을 만들어낸다. 이 책에 나오는, 사실 필립로스가 쓰는 모든 인물들은 읽다 보면 기시감이 느껴진다. 내가 아는 사람, 내가 아는 시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 삶에서 혹은 내 시대에서 내가 아는 역사에서 봤던 사람이 떠오르게 된다. 주인공은 결코 평범하지 않고,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임에도 결국은 전형적이고 부족한 한 인간으로 읽어진다. ‘아이라’도 ‘이브’도 그 외의 모든 소설 속 명사들과 평범한 단역들 조차 다 내가 아는 인간이다.
게다가 그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 그 인간에 대해 서술하는 방식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철학적 깊이가 느껴진다.
[여보게 , 이건 끝이 없다네. 내가 살아오면서 노력했듯 종교, 이데올로기, 공산주의 같은 명백한 망상에서 자신을 해방시켜도, 여전히 자신의 선량함이라는 신화는 족쇄처럼 남는다네. 그게 최후의 망상이지]
3.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토카르추크)
[하지만 왜 우리는 꼭 유용한 존재여야만 하는가, 대체 누군가에게 또 무엇에 유용해야 하는가? 세상을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나누는 것은 과연 누구의 생각이며 대체 무슨 권리로 그렇게 하는가?]
책의 3분의 2 지점을 읽을 때까지 쭈욱, 범인이 사슴일 거라 생각했다. 나는 영화든 책이든 스릴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 그건 내가 너무나 작가의 의도에 잘 속기 때문이다. 내 상상력과 창의력은 아마 일곱 살 때 즈음 다 소진되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뭐랄까 기상이변도 심하고 지구도 위태로운 것 같고, 인간이 진짜 인간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걸 매일 깨닫게 되는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저주는 소설이다. 다만 동물을 사랑해라 육식을 지양하자 이런 단순한 메시지로만 바라보는 책이 아니다. 뭐랄까 그 문장의 짜임. 점성술에 미쳐있는 할매의 다소 비이성적으로 느껴지는 주장저변에 역설적으로 흐르는 논리와 지성이 진짜 미쳤다. (아 이렇게 진짜 미쳤다로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나의 짧은 언어와 경박스러운 표현력이 싫다....)
묘하게 정치적이고 묘하게 철학적이면서 사회적이고 그리고 대놓고 문학적인 책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서 이렇게 많이도 나타나서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가.
4. 세상이 좋아졌다고 말한 적 없다. (오찬호)
이런 유의 책을 읽으면 언제나, 가슴속에서 천불이 난다. 아주 전투적인 마음이 되어 책을 덮지만, 전투적으로 책을 덮은 바로 그날, 남자니까 설거지를 면제해 주자는 주장을 듣게 되는 환경에 사는 나로서는 그 자리에서 바로 무력감을 느끼고 전투력을 상실해 버린다. 작가는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 같다. 다각도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차별에 대해 섬세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든다. 전반적으로 좋은 책이지만 개인적으로 약간 아쉽게 느껴지는 점이 있었다면 좀 단편적이었다는 것, 원래 형식이 그런 식으로 의도되어 출간된 건진 모르지만, 아주 가볍게 문제제기를 하고 문제들을 제시한 채로 끝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여러 개의 예시를 보는 것보다 하나의 예시를 아주 질릴 때까지 깊이 파버리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서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무슨 말도’ 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5 고요한 우연(김수빈)
따뜻하고 섬세한 책이다. 우리 아이가 나중에 중 고등학생이 된다면, 이런 고민을 이런 식으로 친구들과 나눌 수 있는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