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학자는 지구의 가장 끝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다. 빙하가 녹지 않고 연속적으로 잘 형성되는 그린란드나 남극과 같은 극 지역이나, 히말라야와 같은 고산으로 빙하를 찾으러 다니니 말이다. 2022년 우리가 간 곳은 캐나다 로키산맥에 위치한 콜롬비아 아이스 필드. 겨울이 끝날 즈음, 우리는 빙하를 시추하러 로키산맥으로 향했다.
북극 다음으로 가장 큰 빙하지대인 콜롬비아 아이스 필드는 기후 변화로 급속하게 녹기 시작했다. 2100년이면 이 지역의 빙하가 2005년에 비해 70% 이상 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문제는 자연에서 분해되지 않는 반 휘발성유기 오염 물질이 이곳에 쌓여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물질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유기 염소 살충제인 DDT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인체나 생태계에 면역체계와 호르몬 교란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한 물질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빙하는 캐나다 서부지역의 식수 공급원이라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유기 오염물질이 함께 녹아 나올 것이고, 이는 캐나다인들의 식수와 그 주변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 그래서 그때를 대비해, 콜롬비아 아이스 필드의 빙하에 오염물질이 얼마나 축적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빙하가 연속적으로 잘 형성된 곳을 찾으러 헬리콥터를 타고 우리는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연구지역으로 가는 동안 나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는 산이 보였다. 겨울 동안 쉼 없이 쌓였을 숫눈이 바람에 산기슭 아래로 끊임없이 우르르 흩어져 내렸다. 논문을 읽을 때마다 빙하가 형성되는 과정을 상상해 보았는데 나는 드디어 그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었다.
연중 내내 눈이 내리는 이곳에 강한 바람에도 꿋꿋이 살아남은 눈송이가 계속 쌓여 빙하가 된다. 빙하가 되는 동안, 눈송이 사이에 떠돌던 불순물도 눈과 함께 쌓인다. 신기한 것은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이 높은 산에 유기 오염물도 함께 쌓여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온도와 바람 방향과 관련이 있다. 낮 동안 도시에서 형성된 반 휘발성인 유기 화합 물질이 높은 기온에 휘발하여 바람을 타고 고도가 높은 곳까지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해발 3,500m 높이에 위치한 스노 돔(snow dome)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10m 길이의 빙하 코어를 얻었다. 유기물 분석에 앞서, 빙하에 기록된 연도 별 오염물질의 농도를 알기 위해 10m 길이 빙하의 나이를 우선 알아야 했다. 빙하에 기록된 산소 동위원소를 이용해 이 지역의 온도 변화를 추정해 나이를 계산하기로 했다.
나는 산소 동위원소 자료를 훑어보았다. 빙하를 시추한 시기가 4월이니 0m는 4월일 것이다. 데이터값이 낮아졌다, 올라갔다 곡선을 그리며 왔다 갔다 하다 갑자기 4.2m부터 자로 그은 듯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정말 없었다. 변화가 없는 그래프의 선을 눈으로 따라가다 의학 드라마에서 본 심전도 모니터가 생각이 났다. 아래위로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다 띠- 하는 소리와 함께 일직선으로 그어진 심전도 모니터의 그래프 말이다.
심전도 모니터의 듣기 싫은 기계음이 내 그래프에도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변화가 보여야 할 데이터에 변화가 사라졌다는 것은 얼음 상태로 존재했어야 하는 빙하가 기온 상승으로 녹아, 데이터들이 혼합되어 균질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콜롬비아 아이스 필드 빙하의 나이를 셀 수 없게 되었다. 2100년이면 이 지역의 빙하가 대부분 사라진다는 논문을 읽었음에도 내 연구는 성공적으로 해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프를 함께 본, 내 상사는 ‘이것이 과학이지.’하며 과학자에겐 실패는 종종 있는 일이라며 실패한 연구를 보고도 당황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적으로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비정규직 연구자로서는 일종의 사망선고에 와도 다름없었다.
빙하가 따뜻한 계절에 한 번 녹았다 다시 얼었으니 이 빙하에 유기 오염물질의 농도를 측정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빙하가 녹으면서 빙하가 형성될 때 함께 퇴적된 유기 오염물질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래서 빙하가 형성될 당시 함께 쌓인 유기 오염물의 농도를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내 연구는 아주 크게 실패했다.
급속한 지구 가열로 지구에서 한 번도 녹지 않고 연속해서 잘 형성된 빙하를 찾으려면 이제는 더 높은 곳으로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과거 기후를 가장 직접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빙하가 기후변화로 사라지고 있다. 더 이상 지구상에 연구에 적합한 빙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빙하학자라는 직업도 빙하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기후 변화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